자연을 닮은 학교

생명이 숨쉬는 ‘아름다운 학교’ 열전

2006-11-09     고양신문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에서 자연을 늘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교육이 어디 있을까. 고양시에서 조용히 학교 숲과 자연생태학습장을 일궈가고 있는 아름다운 학교들을 찾아봤다.

어려서부터 숲 속 자연의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자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 숲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을 자주 만날 수 있게 하는 움직임이 최근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명의 학교 숲 운동’과 ‘녹색 학교 만들기 운동’의 영향이 크다. ‘생명의 학교 숲 운동’은 한국홀리스틱실천학회에서 생명의 숲 가꾸기 운동본부와 함께 전국 교장 에코 워크숍으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녹색학교 만들기 운동’은 전국 교장, 관리자 시설환경 연수로 방향을 잡고 이어가고 있다.

고양시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의 영향으로 점차 많은 학교에서 학교 숲 가꾸기 운동을 펼치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연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가고 있다. 자연을 닮은 학교를 만들어 가는 학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주엽초

실개천이 흐르는 운동장

세상이 천지개벽하는 동안에도 가장 변하지 않는 모습중의 하나가 학교 운동장의 풍경일 것이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축구공 하나 가지고 흙먼지 일으키며 노는 학교 운동장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엽초등학교(교장 김명희)의 모습은 다르다. 실개천이 흐르고 다양한 나무와 수생식물, 예쁜 꽃이 피는 정원. 그리고 그곳에 각종 곤충들이 모여들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풍경이 주엽초등학교의 모습이다.

학교 운동장 한편에 자리한 이 생태 공원은 지난 2003년 고양시의회 박윤희 의원과 녹색소비자연대 김미영 사무국장이 건의하고 고양시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낸 시설이다.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을 수도 있는 376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이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 내는 그것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평소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쉽게 자연 생태계를 접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주엽초등학교 김남희 교장은 “주변에 이런 녹색 공간이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자연을 만지고 접하며 자연 생태계의 순환 원리를 이해 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곳에 흐르는 실개천은 학교 건물 옥상에 모이는 빗물과 수돗가에서 아이들이 손을 씻고 버려지는 물로 만들어졌다. 이 물들은 실개천을 따라 흐르는 동안 각종 수생식물들이 자라는 웅덩이와 실개천을 지나면서 자연 정화되어 깨끗한 물로 만들어진다.

“심겨진 나무와 식물들도 고봉산에서 직접 가져와 이 지역에서 서식하는 종(種)으로 꾸몄다”며 설명하는 김 교장은 “아이들이 지역의 자연 환경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직접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 공간을 무대로 아이들은 생태교실반을 만들어 직접 동식물을 관찰하고 생태계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서까지 노랑어리연, 비비추, 창포, 노루오줌, 황매화, 동자꽃, 인동덩굴, 엉겅퀴, 신갈나무, 조팝나무 등의 이름을 기억할지 모르지만 생태의 순환과 소중함만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고 김 교장은 교내 생태공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능곡초

생명의 숲이 된 자연학교

능곡초등학교(교장 박용범)는 고양시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생태학습환경을 훌륭하게 일궈가고 있는 학교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학교’ 생태환경 부문에 우수학교로 선정된 능곡초등학교는 들꽃이 활짝 핀 야생 화원이 있는데다가 전통 문양을 담은 벽화가 그려진 담 너머로 기차의 기적 소리가 산들바람에 실려와 운치를 한층 더해준다.

곳곳에 조성된 생태학습장에서 푸른 잎이 무성한 식물들을 관찰하는 아이들 마음은 어느새 자연을 사랑하는 넉넉함으로 가득 차 있다. 삭막한 도심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동심이 꾸밈없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척 신기하다.

능곡초등학교의 아이들은 깊은 산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꽃들을 직접 보고 자란다. 인동초, 비비추, 맥문동, 하늘매발톱 등 도시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법한 야생화들이 이곳 아이들에게는 친숙하다. 이는 자연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경기도 교육청 소속 생명과학 분야 신지식인으로 유명한 이영일(현재 무원초 재직)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 1999년부터 5년 동안 학교 유휴지인 정화조 위의 땅 150평과 쓰레기장을 메워 정원 잔디를 걷어내고 학교 숲과 생태 연못을 만들었다.

그 후에는 정화조 울타리에 덩굴식물 학습원을 만들었고 학교 담장 옹벽에 붙여 만든 수생식물원과 대형 어항과 옥기 등에 우리의 산야에 자라는 나무와 들꽃을 심었다. 또 물 생태학습을 위해 물에 잠겨 사는 식물에서부터 물고기, 수서 곤충에 이르기까지, 동·식물 500명종의 생명이 소곤거리는 생태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일들에 들어가는 비용은 도 교육청 <2002~2003 학교환경 공원화 모델학교>, 고양시청 <2002 주민과 함께하는 푸른고양 가꾸기> 당선 지원금과 경기도 지방 의제 <2000~2002 푸른경기21 학교실천사업>의 환경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속 3년 당선 지원금 등으로 충당했다. 또 농협중앙회 <1999~2003 꿈나무 벼사랑 농촌체험 학습장 운영> 공모에 연속 5년 선정돼 재배기술과 재료지원 등 다양한 도움으로 2천500명이 넘는 학생 모두가 한 종류 이상의 생물을 기르거나 가꿀 수 있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능곡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생명과학 분야의 탐구 활동과 자연의 감수성이 배인 글과 그림, 친구·가족들과 학교의 자연생태학습장에서 경험한 일들이 이야기꽃으로 피어났다. 어린이들은 그 자연 속에 숨겨있는 무한한 비밀들을 스스로 밝혀낸 것이다.

그 결과, 시 교육청주최 ‘자기 주도적 발표대회’에서 매년 한두 명 씩 참가해 교육장상 수상, 농협중앙회 주최 ‘전국 벼농사 관찰 기록대회’에서 첫해는 농협 경기도지부장 우수상, 다음해부터는 연 4년 연속 농협 중앙회장상과 농림부장관상 등을 휩쓸었다. 능곡초등학교에서 번식한 수생 생물을 비롯한 씨앗과 모종들은 그동안 연구된 자료와 함께 고양시의 전 초등학교와 선진학교 견학차 학교에 찾아오는 전국의 선생님과 학교에 제공되고 있다.


무원초

벼농사 짓고 들꽃 키우고

무원초등학교(교장 김점석)는 능곡초등학교의 생태환경 조성을 이끌어 온 이영일 선생님이 2004년 3월 부임해 오면서 자연생태학습장의 모습을 새로이 갖춰가고 있다. 무원초등학교는 능곡초등학교에 비해 넓은 터에 비해 학교 건물과 운동장만 있고 건물 앞에 조그만 학교 정원이 조성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영일 선생님은 8개월 동안 150여종의 들꽃들과 대형 어항, 플라스틱 박스에 수련과 창포를 비롯한 송사리와 수서 곤충 등의 수생식물을 옮겨왔고 고양시 지도농협의 지원으로 ‘벼농사 체험 학습’도 실천해 가고 있다.

이영일 선생님이 손수 만든 이름표를 꽂아 놓은 학교 건물 앞 작은 화단은 봄을 맞아 작지만 생동감 있는 변화가 일고 있다. 눈 속에서 꽃이 핀다는 복수초, 금낭화, 잎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는 노루귀, 단풍잎처럼 생긴 돌단풍, 잎이 지면 꽃이 피고 꽃이 피고 나면 잎이 나서 서로 만나지 못해 상사병을 연상케 한다는 상사화,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먹었던 마늘이 사실은 지금 현대인들이 즐겨먹은 마늘이 아니라 식물 산마늘이라는 사실을 신나게 알려주는 이영일 선생님은 어느새 수다쟁이가 돼버린다.

어느새 이런 이영일 선생님의 열정에 동화된 움직임이 무원초등학교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용히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 조용히 물음을 청하는 동료 선생님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까지 학교의 작은 생태교실에 관심을 표하고 있다.

도심 속 학교의 작은 풀꽃세상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교육을 이어가기 위해 이 선생님은 ‘사이버 생태 환경교실’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선생님이 모아 온 2만여 장의 풀꽃 식물 사진을 정리해 학교 네트워크에 공유하고 활용에 들어갔다. 선생님들은 학교 네트워크에 대해 교과학습과 재량활동 시간에 생동감이 있는 수업자료로 활용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