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최상의 대접을”
“친할머니를 모신다는 심정으로 모시고 있어요” 노인요양시설 ‘소망의 집’ 김 영가(59) 시설장에게 이곳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은 남이 아니다. 김 시설장을 길러준 친할머니를 대신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할머니 밑에서 컸어요. 할머니께서 고생이 많으셨죠. 그러다 제가 성인이 돼 서울에 올라온 후에는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찾아뵙지를 못했어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죄송했는지 몰라요.”
김 시설장은 친할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주변의 어려운 노인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실천했다. 처음에는 주변에 방광암을 앓고 있는 한 독거 할아버지를 모시는 것으로 시작했다. 병으로 고통받는 할아버지의 옆에서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돌보미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까지 옆에서 함께 하며 장례식까지 무사히 끝내고 난 후 김 시설장은 더 많은 노인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행신동에 사는 큰 시누이가 외국으로 나가며 잠시 집이 비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그곳에서 1999년 3월 노인요양시설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부모님을 맡기고도 경제적인 부담은 지지 않으려는 자녀들 때문에 12분의 할머니를 모시고 시작한 시설운영은 3년 만에 연립주택 한 채 가격을 다 쓰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에서 돌아온 시누이가 집을 빼달라고 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더군요. 그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어요.” 때마침 정부에서 전국의 복지시설들을 신고시설로 전환유도하면서 건물을 마련하는데 복권기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복권기금으로 2006년 9월 현재 위치로 소망의 집을 옮길 수 있었다. 김 시설장은 마당이 있는 가정집 구조의 현재 건물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한다. “음악치료를 도와주고 있는 심봉현 씨가 조금씩 시간을 들여 마당을 가꿨어요. 할머니들을 위해 디자인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날씨가 좋으면 할머니들이 나와서 꽃을 보고 몸이 불편한 분들은 휠체어를 타고 나와 마음의 여유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 심봉현 씨께 항상 고마움을 느껴요. 그리고 이곳으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망의 집을 살펴보면 구석구석 정성이 들어가 있다. 치매로 인해 길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높은 울타리를 친 마당 안에는 화사한 꽃밭이 가득하다.
그 옆에는 편안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 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방마다 예쁜 안내판을 달아 산뜻한 분위기를 냈다. 식사 때면 할머니 한 분 한 분마다 1인 식탁에 음식을 내 대접을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늘어난 업무량으로 직원들의 불만이 생길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시설장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누구나 깨끗한 장소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 받고 대접받고 싶어하잖아요? 제가 살고 싶은 곳 그대로를 어르신들에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이런 김 시설장의 마음이 전해져 이곳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은 김 시설장을 마치 딸처럼 대한다. 얼마 전 몸이 불편해 병원에 입원했던 최 모 할머니(80)는 김 시설장만 찾으며 그녀의 방문을 기다렸다고. 김 시설장이 시간을 내 병원을 찾아가자 반가워하며 손을 놓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더 많은 어르신을 모시려는 욕심을 내진 않아요. 지금 계신 어르신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모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죠.” 김 시설장은 오늘도 할머니 한 분 한 분을 친할머니를 대하듯 정성을 다해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