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공동체적 마을 풍속 정월대보름

성석동 진밭마을 대보름행사·송포 사줄놀이 전승

2008-02-14     김한담 기자

어릴 적 정월 대보름날 아침이면 마을의 어른들이 풍물을 치면서 인근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 이르면 베어 낼 나무 아래 단출하게 술잔을 올리는 제를 지내고 풍물을 울리는 가운데 쭉 뻗은 소나무를 베어서 통나무와 가지를 따로따로 새끼로 묶어 마을로 끌고 왔다. 마을 앞 매년 달집태우기를 하는 논에 통나무로 원추형의 달집 골격을 세우고 그 속에 불이 잘 붙는 나무를 넣어 생솔가지, 대나무, 볏짚을 쌓아 달집을 만들었다.

어렸던 우리는 소중하게 보관해 온 깡통에 구멍을 뚫고 철사 줄을 매달고 산에 가서 관솔이라고 부르는 송진이 붙어있는 마른 솔가지를 열심히 잘라 깡통에 채우고 여분을 비축하곤 했다. 어른들이 열심히 달집을 짓고 있는 동안 어린이들은 겨우내 날리던 연(鳶)에 주소와 이름, 생년월일을 쓴 액막이연을 날려보내기도 하고 콩과 땅콩을 볶아 먹기도 했다.
또한 친구들에게 더위도 팔고 논과 밭둑을 태우는 쥐불놀이도 즐기면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달집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추억이 남아있다. 보름달이 앞산에 오르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달집에 불을 지르고 풍물패는 주위를 돌면 신나게 풍물을 연주한다. 풍물 소리와 함성 그리고 생나무와 대나무가 타면서 터지는 소리들, 어린 우리들의 신나는 깡통돌리기가 함께 어울려 한바탕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이 때 촌로들은 달무리를 보고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할머니들은 달을 향해 손비빔을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달집 타는 연기가 될 수 있으면 높이 솟아올라 달을 그을리게 해야만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하여 마을마다 다투어 높이 짓고, 또 통대 터지는 소리가 커야만 마을 액운이 없어진다고 하여 참 많이도 생솔가지와 대나무를 한달음에 태워버리곤 했다.

‘달마중’과 ‘사줄놀이’ 전해와

가장 으뜸 되는 세시풍속, 정월 초하루의 설과 정월 대보름은 달의 차고 이지러지는 주기를 근거로 형성돼 왔다. 정월(正月)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운세를 점쳐보는 달이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인 것이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의하면 태양을 ‘양(陽)’ ‘설날’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 이에 반하여 달은 ‘음(陰)’ ‘대보름’이라 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이와 같이 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내려오는 다양한 풍습은 달의 삭망 주기에 따라 갖가지 풍속들이 집중돼 있으면서 삭망의 상징성에 따라서 서로 대립을 이룬 채 전승되고 있다. 이를테면 설에는 윷놀이와 같은 소규모의 놀이를 집안에서 즐기는 데 비해, 보름에는 줄다리기나 동채싸움과 같은 대규모의 놀이를 야외에서 즐기며, 설에는 조상에 대한 차례를 피붙이들끼리 모여 집안에서 지내면서 상하 혈연관계를 다지지만, 보름에는 동신에 대한 제사를 동민들끼리 모여 당산에서 지내며 지연(地緣)적인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이와 같은 대립적 양상은 달의 삭망이 상징하는 성격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정월대보름의 풍속은 세시풍속 중에 가장 많은 다양함을 자랑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도 볏짚을 팔목 두께만큼 가지런히 모아서 나이수대로 매듭을 만들어 보름달이 떠오르면 볏짚을 태우며 소원을 비는 ‘달마중’과 줄다리기의 하나인 ‘사줄놀이’와 당산제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었다.
당산제와 산신제는 이제 삼송 재개발로 인해 거의 사라졌지만 성석동 진밭마을에서는 달집태우기와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지신밟기를 하는데, 지신밟기는 정초부터 대보름 무렵에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흥겹게 놀아주고 축원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마을의 달집은 대나무가 자랄 수 없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수숫대나 옥수숫대, 그리고 소나무와 볏짚으로 달집을 짓고 있어 중북부 지역 달집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진밭두레패의 풍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보름 축제를 매년 마을에서 진행하고 있어 우리지역의 자연마을 전통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또한 이제는 민속놀이로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송포 사줄놀이가 우리지역의 대표적인 줄다리기로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그 의미를 전승하고 있다.

송액연 날려보내기는 정조의 꾀

전국 어디서나 정월이면 마을에서 아이들이 날리던 연이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것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진덕여왕 원년(서기 647년)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김유신장군이 연을 사용해 반란군을 토벌했다는 것이 유래다. 당시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진덕여왕이 패할 징조이며, 나라에 큰 화가 생길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이에 김유신장군은 꾀를 내어 큰 연을 만든 후, 밤에 남몰래 불을 붙여 공중에 높이 띄우고 백성들에게 전날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으니 여왕이 크게 승리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이로 인해 민심은 수습됐고 군사들은 사기가 높아져 마침내 싸움에 이겼다고 한다.
조선조에는 세종대왕 때 남이 장군이 강화도에서 연날리기를 즐겼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수단과 작전지시 도구로 연을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구비전승에 의하면 우리가 정월대보름에 연을 띄워 액을 날려보낸다고 믿는 송액연(送厄鳶)은 조선조 정조의 꾀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평소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하고 백성들에게 장려했던 왕이 정조다. 그런데 백성들이 연날리기를 너무 즐겨 정월대보름이 될 때까지도 농사 준비를 생각하지 않자, 정월대보름에 액을 모두 날려보내고 다시 일을 하자는 의미로 송액연을 날리는 풍습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씨를 연에 쓴 다음 높이 띄워 실을 끊어 날려보냈고 그 이후 농사일에 매진했다고 한다.

연날리기는 대보름 날로 그 대미를 장식하는데 겨우내 날리던 액막이연 날리기는 날린 연이 나뭇가지 등에 걸려 자연스럽게 소멸되기를 희망하는데 남의 집으로 떨어지면 우리집안의 액이 그 집으로 옮겨간다 해서 많이 꺼려했다. 이에 대한 기록을 보면 조선조 명종이 도성에서 백성들이 날린 연이 세자의 거처인 동궁에 떨어지자 정월대보름에 연을 날리지 못하게 하라는 우스운 전교를 내린 기록 조선왕조실록에 있고 김수장과 정철의 시조에도 액막이연을 날려보내며 집안의 액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 경도잡기 등 많은 고서에서 액막이연 풍습을 소개하고 있어 오랜 우리 전통으로 보인다.

닭울음점 등 풍흉 점치기도 성행

이밖에도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다양한 정월대보름 풍속을 살펴보면 개인적인 의례로서, 대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면 ‘부럼 깬다’하여 밤·호두·땅콩 등을 깨물며 일 년 열두 달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축원한다. 또 아침 식사 후에는 소에게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이 오곡밥과 나물을 키에 차려주는데, 소가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주부들은 제물을 장만하고 단골무당을 청하여 가신(家神)과 여러 잡신들에게 진설하여 가내의 평안을 기원하는데, 이를 안택(安宅)이라고 한다.

볏가릿대 세우기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장대 끝에 매달아 이를 집 곁에 세워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며, 복토훔치기는 부잣집의 아궁이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그 부잣집처럼 되도록 복을 기원하는 것이며, 용알뜨기는 대보름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물물을 길어와 부엌의 조왕신에게 올리고 가내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운수대통하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

다리밟기는 고창읍성 다리밟기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지만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인근에 있는 12다리를 밟으면 액을 면하고 다리 병을 앓지 않는다고 믿음과 풍속으로 전해왔다. 사발점은 대보름날 밤에 사발에 재를 담아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종자를 담아 지붕위에 올려놓은 다음, 이튿날 아침 종자들의 행방을 보아 남아 있으면 풍년이고 날아갔거나 떨어졌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달붙이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콩 12개에 12달의 표시를 하여 수수깡 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 속에 집어넣어 콩알이 붙는가 안 붙는가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닭울음점은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닭이 우는 소리를 기다려서 그 닭울음의 횟수로써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다.

/취재·사진 김한담 전문기자(전통예술문화원 하누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