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로스트 공연

2008-05-13     박수연
바람부는 5월에 만난 헝가리안 질다안드레아 로스트& 이정원 초청공연‘라 스칼라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는 세계 탑 클래스의 리릭 소프라노, 안드레아 로스트의 첫 내한공연이 개관 1주년을 맞은 아람누리 기념 예술제에서 개막공연으로 열렸다. 11일 저녁 고양 아람음악당에는 그녀의 데뷔작 ‘로미오와 줄리엣’중 ‘꿈속에 살고파라’를 시작으로 ‘라 트라비아타’의 ‘이상해 이상해’, 그리고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해준 ‘리골레토’의 ‘그리운 그 이름’ 등 주옥같은 오페라 명곡의 향연이 펼쳐졌다. 안드레아 로스트는 1994년 이탈리아 ‘라 스칼라’에서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 시대 최고의 소프라노 중 한 명이다. 물론 리릭 소프라노 배역에만 안주한다는 평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만큼 리릭 소프라노 배역에 어울리는 가수도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이번 공연에 그녀의 파트너로 나선 이정원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로 손꼽히는 성악가다. 안드레아 로스트의 첫 내한공연 파트너로, 국내 최초의 라 스칼라 테너인 이정원이 나섰다는 점 또한 참으로 재미있다.사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공연 초반에는 약간 불안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프로그램 1부에 그녀의 대표작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 스칼라의 질다’를 기대하던 이들에게 그녀의 노래는 너무도 평이하게 들렸다. 이정원의 경우도 곡에 따라 기복을 보이는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 곡인 ‘오델로’의 ‘밤의 정적 속에 소란은 사라지고’의 경우, 곡 중반까지 듀엣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아 테너의 목소리가 소프라노의 목소리에 눌리는 등 아쉬움과 착잡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하지만, 본 편은 2부에서 시작됐다. 인간의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안드레아 로스트는 다수의 평론가들이 리릭소프라노에 안주하는 그녀에겐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던 ‘나비부인’의 ‘어느 갠 날’을 감정이입의 극한까지 몰아가며 관객들에게 쏟아냈다. 돌아오지 않는 흑선(黑船)을 기다리는 애절한 눈망울의 초초, 이 이상 완벽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의 나비부인은 감동적이었다.이정원 역시 바로 이어진 ‘멕베드’의 ‘나의 아들들이여’에서, 앞서의 모습을 불식시키듯 절정의 수준을 보여줬다. 비탄에 잠겨 선혈을 토하는 듯한 심정을 표현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하지 않는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마지막 쐐기를 박는 곡은 오페레타 ‘박쥐’ 중 ‘고향의 노래’였다. 여기서 안드레아 로스트는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헝가리 무곡 스타일의 ‘고향의 노래’에서 경쾌함과 그 뒤에 숨겨진 오묘한 감정이 객석 전체에 넘쳐흘렀다. 스카프를 휘두르는 그 강렬한 몸짓과 스텝에서 화려한 보헤미안의 대명사 카르멘에 견줄만한 오오라를 발산하는 안드레아 로스트를 보았다면, 리릭 소프라노의 한계를 읊어대던 사람들은 그저 할 말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고향의 노래’는 이 날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곡이었다. 앙코르 곡은 안드레아 로스트가 ‘자니 스키키’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그리운 금강산’을, 이정원이 ‘오 솔레 미오’를, 그리고 마지막 듀엣 곡으로 ‘축배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 ‘그리운 금강산’은 안드레아 로스트가 한국어로 직접 불러 더욱 감동을 자아냈다. 꽤 많은 시간을 연습했는지, 그 완성도 또한 높았다.이번 공연은 안드레아 로스트의 첫 내한공연이자, 아람누리 1주년 기념 예술제의 개막공연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앞서 말한바 같이 아쉬운 부분이 여기저기 보인다. 공연의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 가수들의 모습에서, 서로 조율하고 입을 맞출 리허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꽤 많은 프로그램의 변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공지가 없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모든 관람객이 클래식 전문가가 아닌 만큼, 프로그램의 변경이 있을 경우, 홈페이지에 내용을 갱신해주는 최소한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춘풍오월야에 만난 질다는 생각과 많이 달랐다. 그러나 그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의 선입견에 의한 것이었다. 안드레아 로스트, 그녀의 노래를 다른 곳에서 만난다면, 오늘과는 또 다른 감동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극장을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만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