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막걸리 비상을 꿈꾸다

최근 인기 속 판매량 소폭 상승 재도약 방안 고심 중

2009-08-14     박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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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삼송동에 있는 한 술집을 찾는다. 박 전 대통령은 실비옥 주인에게 막걸리를 어디서 받아온 것인지 물었다. 실비옥 주인은 능곡에 있는 양조장에서 받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박 전 대통령은 고양의 막걸리를 즐겨 마시게 된다.

▲ 배다리 술 박물관에 가면 1966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실비옥’을 재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박물관에는 이 밖에도 술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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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자 김일성 국방위원장은 그 술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정 전 회장은 다음 방문 때는 그 막걸리를 갖고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2000년 정몽헌 회장이 평양방문 때 가져가게 된다. 그 때부터 고양 막걸리는 ‘통일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최근 인기 속에 고양의 막걸리들도 ‘미소’

최근 젊은이들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의 막걸리가 인기다. 소주의 알콜도수가 점차 낮아지듯이 사람들이 독하지 않은 술을 찾는 경향과 웰빙 바람을 타고 막걸리가 좋은 술로 인식되기 시작한 탓이다.

이에 따라 고양 막걸리의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고양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는 고양탁주합동제조장의 ‘고양 통일 막걸리’와 배다리 술도가의‘배다리 막걸리’ 두 종류다.

두 가지 막걸리 모두 최근 막걸리 인기와 더불어 20% 가량의 판매량 증가를 보이고 있다.
고양 막걸리 생산자들은 아직도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이용인 고양탁주합동제조장 대표는 “이 맛이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대량생산보다는 일단 고양시민들에게는 부담 없이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고양 막걸리는 한 때 하루 500상자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인기였다. 이후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요즘에는 하루에 130∼140상자 정도 판매되고 있다. 고양시에 있는 주점이나 소매상에서도 주문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고양 합동양조장에서는 30∼40%까지 판매량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양 막걸리는 7가지 맛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용인 대표는 “단맛, 신맛 등 여러 가지 맛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도 고양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고양의 전통술 제조가인 박상빈 ‘배다리 술도가’대표는 원래 서울에서 건축설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실비옥’에 막걸리를 공급했던 바로 그 능곡 양조장의 박관원 사장이었다. 박 대표의 아버지는 어느 날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때 박상빈 대표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결심을 하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고, 남북 화해를 상징하는 통일 막걸리인 고양 막걸리인데 사라지게 둘 수는 없잖아요. 안 되겠다 싶어서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됐죠.”
박 대표는 배다리 막걸리 외에도 다양한 술을 만들어 내며 고양의 전통술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4월에 김문수 경기도지사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한 작년 9월에는 ‘주교주’가 공식 제품화되면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맛과 질로 승부하겠다”

▲ 김광철 고양탁주합동제조장 공장장이 침수 중인 쌀을 꺼내 보이며 막걸리의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막걸리가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막걸리 업체들이 급격한  성장세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양 막걸리나 배다리 막걸리는 아직 고양 지역에서의 유통이 원활하지 못한 편이다. 오히려 고양시보다는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고양 막걸리를 알아보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배다리 막걸리는 현재 고급화를 목표로 서울이나 송도의 호텔, 강남의 음식점 등에 술을 납품하고 있다. 배다리와 고양 막걸리는 대량 생산이 아닌 전통생산 방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경쟁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어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는 것이다.

사실 박상빈 배다리 술도가 대표는 지난 수년간 지역 내에 고양의 전통술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소매점이나 술집을 찾아다니며 고양 전통술의 장점을 설명하고 납품을 받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지역의 각 종 행사에 찾아다니면서 전통주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년간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통마진만을 생각하는 업체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고양 사람들이 내 고향에서 만드는 술을 조금만 더 사랑해주면 이렇게 힘들진 않을텐데, 마진만 생각하는 태도가 너무 아쉽습니다.”

사정은 고양 막걸리도 마찬가지다. 배다리나 고양 막걸리 모두 별도의 영업사원을 두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용인 고양탁주합동제조장 대표는 “고양 막걸리가 참 좋은 술인데 이제야 사랑 받게 됐습니다. 유통상인들이 마진이 높은 술을 선호해서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배다리 막걸리나 고양 막걸리는 이런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이번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이용인 대표는 “이번에 불어온 막걸리 붐이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더 좋은 술을 만들어서 고양 사람들은 물론이고 외국 사람들에게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고양 막걸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이런 기회도 왔다고 생각해요. 직거래, 새로운 판로 모색, 품질 향상, 칵테일 막걸리 제조 등 다양한 방안을 고심 중입니다”라고 밝혔다.

박상빈 대표는 “전통주가 살아나면 지역경제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배다리 막걸리는 앞으로 고양,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고품종 쌀을 사용해서 더욱 질 좋은 술을 생산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