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은 ‘국력’ 또는‘애 키우는 힘’
늦둥아 너 어디서 왔니
2002-03-16 김인아
요사인 이런 푸짐한 저녁 풍경을 보기가 어렵다. 저녁의 ‘소주 한잔’은 지나간 역사. 한결이가 ‘소주잔 주거니 받거니’를 못 참는다. 식탁에 한 자리 잡고는 온갖 행패를 부린다. 숟가락으로 물 떠먹기. 소주잔 빼앗기-사실 소주잔이 한결이 물컵이다. 남의 밥 휘 젖기. 오이 집어던지기. 식탁 위로 올라가기까지.
‘애보는 비디오’로 유혹을 해보지만 길어야 10분. 한솔이를 꼬여서 컴퓨터 방에 들여보내도 10분. 그래서 거의 포기했다. “몇 년 기다려야 하나….” 이 집 아저씨 아줌마가 되뇌는 말.
정작 저녁 먹으며 반주를 피하는 더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국력이라는 ‘체력’에 있다. 맥주라도 한잔 한 날은 병든 닭이 된다. 꾸벅꾸벅 졸기가 일수. 마냥 분주한 한결이를 감당할 수가 없다.
‘잠깐 소파에라도 기댔다’하면 싱크대 뒤져서 냄비를 꺼내놓는다. 꼭 유리 뚜껑이 있는 것만. 거실 장식장 열어 온갖 걸로 바닥에 무늬를 만들고…. 안방 스탠드 뒤로 들어가 텔레비전 받침대를 계단삼아 3단 서랍장까지 오른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면 나를 찾는다. 책 한권 들고와 내 머리를 친다. "심심하다 책이라도 읽어달라"는 표현. 반응이 없으면 그 뭉뚝한 손가락으로 눈 코 입을 괴롭힌다.
그래도 집에서는 낫다. ‘힘센 천하장사’, 족히 13㎏이 넘는 뚱뚱이를 안고 다닌다는 건 중노동이다. 쌀 10㎏짜리 봉투보다 무거우니…. 그나마 가만히 안겨 있으면 다행이다. 제 갈길 가겠다고 몸부림치면 감당 못한다.
쉬는 날 바람이라도 쐬어준다고 데리고 나가면 그 날은 저녁 내내 빌빌거려야 한다. 한솔이 키울 때야 안고 뛰기도 했는데. 그래서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약간 바꿔서 ‘체력은 애 키우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