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의 전설展-조선의 왕족, 현대미술로 재탄생하다

10명 현대작가 참여…현재까지 2000명 이상 관람

2010-04-09     이병우 기자

6월13일까지 장기 전시…작가들, 직접 유적지 답사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활용해서 기획전시를 해야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이 아닌 이상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현대미술로 풀어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고양시 서오릉·서삼릉에 있는 고양의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나니 힘들겠지만 이 기획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추진했습니다.”

김언정 고양문화재단 전시사업팀장은 아람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왕릉의 전설’展을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다고 한다. 지난 3월 18일부터 시작된 이 야심적인 기획전은 독창적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조선을 왕릉에 대한 재해석이 주를 이룬다. 고양문화재단에 따르면 현재까지 2000명이 넘게 ‘왕릉의 전설’展을 관람했다.

▲ 정진용 작가는 권력과 장수 모두를 이룬 숙종의 모습을 전통적인 일월오악도와 십장생의 형식 안에 담았다.

8명 왕족 개인사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 
왕릉의 전설은 조선왕조 500년을 이끌어 왔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화려한 삶의 중심에 섰으면서도 권력과 명분의 획득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 무대에서 혹독한 고독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역사의 생생한 증언자들이기도 하다.

전시는 이들 왕족가운데 아름답고도 처절한 전설의 주인공을 8명으로 고심하여 선정하고 각 존재들에 대한 시각적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들이 각자의 작품으로 대화의 소감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구성한다.

김언정 전시사업팀장은 “8명의 왕족의 개인사와 인물됨과 작가의 작품경향을 관련시키는 작업이 중요한데 역사적 인물과 서로 가장 잘 연관된다고 여겨지는 작가 10명을 고르고 작가마다 한 명의 역사적 인물을 부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대의 젊은 미술인들이 조선왕조를 예술적 시각으로 재인식하고 표현하는 작업은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최근의 작가들은 예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역사의 굴레에 얽매이기를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든, 혹은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고 말하며 표현하기를 즐긴다. 이것이 바로 컨템퍼러리 미술의 징표이자 특징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으로 더욱 의미
이러한 작가들로 하여금, 시기적으로는 멀지 않으나 동시대와는 문화적 간극을 지닌 조선왕조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삼아주기를 바란 것은 당장 세 가지의 이유에서다. 먼저 최근 유네스코가 조선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의미있는 일이 있었기에 다시 한 번 미술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였다.

두 번째로 일제 강점기와 육이오 내전을 겪으며 근대로의 숨가쁜 전환점을 마련하느라, 민족적 본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이자 전통을 자연스럽게 내려받지 못한 채 우리 것에 대해 스스로 생경함이라는 거리감을 형성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크게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조선시대의 중심을 살다간 권좌위의 존재들이 현재의 후손들에게 남긴 전설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마음을 모아 들여다 보고자 함이다. 이는 서로간의 시대를 뛰어넘어 하나로 흐르는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고양시에는 서오릉과 서삼릉에 여덟 기의 조선 왕릉이 있다. 서삼릉의 비공개 지역에는 일제가 옮겨놓은 조선의 왕자나 공주, 후궁의 묘 53기가 도열해 있다. 이번 전시는 무덤으로만 존재하는 이 왕릉의 주인공 이야기를 현대 작가에게 맡겨 드라마틱하게 되살려 놓았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여덟 명은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와 그녀를 사사시킨 인수대비, 인종, 소현세자, 숙종, 희빈 장씨, 의빈 성씨(정조), 철종이다. 장희빈과 인수대비는 워낙 성격이 강한 인물이라 작가가 두 명이 붙는 바람에 총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조선 왕릉 체험 공간이나 조선 왕릉 특별 강좌, 신들의 콘서트 등 다양하고 입체적인 딸린 프로그램이 있다.

10명 작가, 왕족에 대한 참신한 재해석

▲ 한자어를 여인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이용한 류준화 작가의 작품. 문자도 중 '충'

▲ 류준화의 문자도 중에서 '효'

 

 

 

 

 

 

 

 

 

 

 

 

류준화의 문자도는 유교적 덕목을 뜻하는 한자어를 여인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이용해 시각화한 작품이다. 이 안에서 인종의 고고한 성품은 문자의 유연한 선들을 통해, 그리고 인종과 함께 같은 뜻을 품었던 인성왕후의 한과 외로움은 그 문자들 안에 소복이 담겨 있는 여인의 얼굴을 통해 표현된다. 작품 속에서 여여히 흘러내리는 꽃들은 이 같은 삶 속에서 인성왕후가 삼켜야 했던 눈물이며, 동시에 그녀의 주위를 지켜주었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이기도 하다.

이단 작가는 인수대비와 폐비윤씨, 그리고 연산군이 맺고 있는 가족 간의 욕망과 갈등을  인상적인 설치작품과 강렬한 색채의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완전할 것만 같은 왕실 또한 모순적 욕구를 품고 있는 가족이라는 단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 김들내 작가의 작품 '장희빈'
본래 꽃, 나무, 새, 나비 등의 소재로 채워진 조선시대의 화조화는 당시 까치나 봉황, 소나무와 같은 대상을 신성시했던 조선인들의 문인의 이념을 표현한 것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인의 이념은 남성 중심적인 상층사회에서 통용된 것이었다. 반면 김지혜의 화조화에 사용된 동일한 소재들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장식하는 도구로 묘사됨으로써 주변 환경을 자존적으로 이끌어나가며 결정하는 여성의 자존적 권리를 상징한다. 김지혜의 현대적 화조화를 통해 우리는 왕실법도의 중심에서 자존적 여성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하며 강경한 삶을 살아왔던 인수대비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김들내는 소녀의 머리에서 달콤하게 소용돌이치며 번져나가는 아이스크림과 사탕을 묘사하면서 그 속에 감추어진 팜므파탈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러한 물음 속에서 희빈 장씨가 숙종에게 던진 달콤한 유혹은 그녀 자신에게로 돌아와 치명적 상처를 남기며 한낱 덧없는 귀결을 낳고 말았음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3회에 걸친 특별강좌 마련
아람누리도서관에서는 지난 28일부터 총 3회에 걸쳐 ‘2010 아람미술관 봄 특별전-왕릉의 전설’과 함께 하는 특별 강좌를 개최한다.

첫 번째 강의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 이야기’는 오는 28일 오전 10시부터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 전문 위원의 강의로 진행되며, 아람마슬 지하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두 번째 강의와 세 번째 강의는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인 박영규 작가가 진행하며 ‘서삼릉에 묻힌 왕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5월 8일), ‘서오릉에 묻힌 왕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5월 22일)라는 제목으로, 아람누리도서관 2층 회의실에서 오후 2시부터 열린다.

강의는 조선 왕릉의 역사적 의의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총체적으로 다룰 예정으로, 전시에서 다 전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여 관람객들이 전시 주제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은 오는 7일(수) 오전 10시부터 아람누리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모집 인원은 첫 번째 강의 20명, 두 번째, 세 번째 강의 각 40명이다(선착순 마감).

최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을 테마로 한 '왕릉의 전설'展은 지난 3월 18일 전시를 시작하였고, 오는 6월 13일까지 아람 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