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날개맞아 비행기는 불타고

60년 전 그날의 참전 용사 이강화 회장

2010-07-05     최보윤 기자

1950년 6월 25일, 공군 제10전투 비행단 25세의 젊은 나이로 동료들과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 군인은 이제 60년의 세월 속에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적기와 공중전을 벌인 공군이자 지금은 대한민국 성우회 고양시지회의 이강화 회장은 6.25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김포항공장과 용산기차 교차장이 먼저 폭격을 맞고 여의도항공장에 있던 이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기관포로 맞섰지만 이미 제공권은 뺏겨버린 상태였지. 당시 공군은 육군으로부터 독립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어. 경비행기와 정찰기 22대가 전부였던 공군은 덮쳐오는 200여대의 폭격기와 함께 공격해오는 이북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지.”

위기 속의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한 것은 그로부터 2~3일 후 UN공군의 지원이 시작되면서였다. 그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이 회장은 제공권 확보가 없는 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며 공군에 대한 지원과 육성을 강조했다.
1946년 입대해 당시 중위로 전투기에 몸을 담고 생사의 기로도 수없이 넘나들었다는 이 회장.

“한번은 1대 3으로 전투를 하다 적기에 오른쪽 날개를 맞았지. 다행히 연료가 얼마 없는 상태여서 공중폭팔은 면하고 수원비행장에 불시착을 했어. 착륙하자마자 비행기는 불타고 나는 살아남았지.”

이 회장은 매번 무수히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화로 속에 몸을 던지는 느낌으로 전투에 임했다고 말한다.

곁에 없는 전우에 대한 기억도 잊지 못한다. “함께 편대를 짜고 가서 눈앞에서 적탄에 맞아서 적진에 돌진해 폭파 속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보면서 살아오고, 그런 것을 몇 번씩 겪었어.”

그 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이 회장은 신신당부한다. “물론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고 전쟁을 좋아하는 전쟁광이 돼서도 안되지만 일단 유사시에 나라를 지킨다하는 각오는 어렸을 때부터 잊지 말아야해.”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고, 그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방력이 존재해야한다는 말을 강조하는 이 회장. 자신을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나고 군인이 돼서 국가에 몸을 바치기 위해 군인 생활을 했고 퇴역생활하고 난 다음에도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