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풍요롭던 옛 시절을 추억

<자연마을 사람들 이야기>

2011-02-24     고종국 전문기자
▲ 벌말(소 화전) 주민들이 농한기를 맞아 점심식사에 반주를 하고 있는 모습

화전 부대 앞 삼거리에서 우측 편으로 상가들이 있는 좁은 길을 지나 창릉천 뚝방 가까이에 있는 구멍가게. 그 안쪽에서 마을 주민들은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른 점식식사에 반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7대째 농사를 지으며 화전을 지켜온 화전동 벌말의 이석화(62세 신도농협 전 감사)씨를 필두로 구만회(72세)씨, 손봉학(55세)씨, 송영근(74세)씨, 김점수(72세)씨 한점남(70세)씨와 대덕동에 살지만 화전 벌말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지금식(62세 신도농협 이사)씨, 가게집 아주머니 등 모두 친목회원들처럼 자주 만난다는 정겨운 모습이다. 

예전의 화전은 대화전, 중화전, 소화전으로 나누어 불리기도 했다. 그중 벌말은 소화전으로 불려졌다. 소화전은 당시 제법 마을이 크게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살기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직장을 다니기 위해 떠난 사람, 분가해서 나간 사람, 그린벨트에 묶여있던 40여 년 세월 속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떠난 사람 등 제각각의 사연으로 많은 이들이 이주했다. 이제 남은 것은 80여 채의 가옥과 세입자를 포함해 250여 가구 정도이다. 그 가운데 대부분이 농사일을 하는 노년층이다. 청장년층은 거주만 할 뿐 서울 등지로 직장을 다닌다.

한때 화전은 서울시 편입예정 지역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서울 번호인 ‘02’를 지역번호로 사용한다. 주민들의 주 생활권이 서울에 의존해서 생활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수색까지만 서울로 편입되었다. 화전동 주민들은 지금도 수색동 주민들을 부러워한다. 난지도 쓰레기장 동쪽으로 상암동은 딴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곧있으면 덕은동에도 미디어밸리가 들어선다고 한다. 

화전동 주민들은 타 지역에 비해 다소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린벨트만 해제됐을 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생선가시를 발라놓듯 가옥들만을 배제시킨 그린벨트 해제는 지역에는 별 의미가 없는 허울 좋은 해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주민들은 주택 지역까지 포함된 해제를 바라고 있다.  

거기다 벌말 주민들은 여름철 상습적으로 홍수 피해를 보고 있다. 벌말은 예전에는 침수지역이 아니었다. 군부대 작은 계곡이 몇 군데 있었지만 해방 전 일본 관리들이 뚝을 만들어 놓아 계곡물은 비스듬하게 창릉천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 그 때문에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침수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5.16 군사혁명 이후 군부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연병장과 막사 건축을 위해 계곡들을 메웠다. 벌말로 흐르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뚝 일부가 허물어졌고 그 후로 비가 많이 오면 여지없이 침수 피해를 겪어야 했다. 이용호 전 국회의원이 군부대 측에 주민들의 애로 사항을 전하며 원상복구를 요청해봤다. 하지만 군사독재 시절인 당시, 결국 해결되지 못했다. 

화전동은 여전히 교통이 몹시 불편하다. 7731번이 서울을 갈 때 20~30분을 기다리지 않도록 배차시간을 조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서울을 가기위해 세 정거장을 가서 버스를 다시 갈아타야한다. 불편을 없애고, 수색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도록 노선을 조정해 주기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