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셋” 영정사진 찍으며 ‘빵’터진 웃음
송포파출소 추석행사 어르신 영정 무료촬영
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할머니가 저녁에 다시 왔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영정사진을 준비해 두려는 생각에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한 할머니가 동네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영정사진’을 준비하는 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누구나 맞이할 죽음이지만 자신의 장례식에 조문 온 사람들에게 보이는 마지막 모습이기에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무척 신경이 쓰일 것이다.
일산경찰서 송포파출소(소장 김석열)는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영정사진 무료촬영 행사를 했다. 한영은 순경 등 경찰관들과 서울 잠원동 POS스튜디오에서 봉사나온 오효성(46세)씨가 봉사에 나섰다. 넓지않은 파출소 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10여 분이 사진을 찍거나 대기하고 있었다.
가좌마을 정해순(70세) 할머니는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왔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자식들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왔다. 괜찮다. 슬프지 않다”며 담담한 모습이다. 영화에서처럼 혼자 영정사진을 찍는 게 아니었다. 쓸쓸할 것이라는 예상도 보기좋게 빗나갔다.
인근 아파트에서 온 하연순(76세) 할머니는 한복을 차려입고 와서는 “예쁘게 찍어 달라”고 주문했다. 차례를 기다리던 대화마을 5단지에서 온 양장차림의 할머니 역시 브로치에 목걸이로 한껏 멋을 부렸다. 찍을 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한 할머니는 컴퓨터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잘 나왔다고 밝게 웃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자식이 몇이냐”, “나이가 몇이냐”며 서스럼없이 얘기꽃을 피웠다.
“양복을 입고 와야하는 건지 물어보러 왔다가 얼떨결에 찍는다”는 인재경(67세) 할아버지는 “기분이 이상해. 엊그제 군대 갔다 온 거 같은데 세월 참 빠르구나”라며 복잡한 속내를 추슬렀다. 돈 버는 재주가 없어서 고생도 참 많이 했다는 할아버지는 “종로에서 집도 없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큰형님이 등본 하나 떼오라고 해서 가져갔더니 ‘곧 며느리 볼텐데 남의 집 살이해서 되겠느냐’며 아파트를 장만해줘 대화마을에서 살게됐다”는 사연도 들려줬다.
“너무 환한 웃음 말고 입꼬리만 음~ 하세요.” “긴장을 푸세요 활짝 웃으세요.” 사진사 오효성씨는 어르신들의 헝크러진 머리를 매만져주거나 말을 걸며 딱딱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긴장을 풀어주며 사진이 잘 나오게 해야하니 힘들겠다고 하자 “힘들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봉사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할머니들 중에는 “눈 크게 나오게 해 달라”, “주름·검버섯은 없애달라”는 분도 있다. 엄숙해야할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웃는 영정사진이 싫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오효성씨는 전날 휠체어를 타고 자식과 함께 온 90살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김석열 파출소장은 지난해 4월 파출소가 문을 연 이래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로 북적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올 여름 천둥·번개 치는 날 어르신들이 파출소 앞에서 비를 피하시는 모습을 보고 들어오시라고 해도 한사코 사양하는 모습을 보고 ‘파출소 문턱이 높구나 이웃에 가까이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김 소장의 말대로 ‘영정사진 찍기 행사’는 무사히 치러져 사흘간 300여 분이 다녀갔다. 행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관은 “송포동의 흐뭇한 추석맞이 특선행사였다”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