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단상

2011-11-15     김백호/단일문화원장

 가을의 서늘한 공기는 걷기에 좋은 날씨다. 평소 걷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틈이 날 때마다 고양시의 곳곳을 걷곤 하지만 특히 북한산에서 호수공원까지 걷는 고양신문주최의 고양바람누리걷기축제에 삼년 연속 참가하며 많은 것을 느꼈다. 본래 걷는 다는 것은 느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달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걷기 축제에 참여한 사람 중엔 이런 느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쫒긴 사람들처럼 쉬지 않고 마냥 앞으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겐 주변의 경관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앞으로 앞으로 바삐 걸어갈 뿐이었다.

 매년 선두에서 대열을 인도한 필자의 경험으론 ‘천천히 천천히’를 목이 쉬도록 외쳐 대도 경보수준으로 빨라지는 참가자들의 발걸음을 천천히로 돌려 세울 수 없었다. 선두에 선 인도자들은 ‘선두 반보! 선두 반보’라고 외치며 저지에 안간 힘을 쏟는데 뒤 따르는 사람들은 연방 신발 뒤꿈치를 밟으며 등을 떼민다. 서 너 번 정지시켜 뒷 대열과의 간격을 좁혀 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성미 급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일도 쉽지 않다. 사람들이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가려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중간과 후미를 걷는 사람들은 선두가 너무 빨라 따라 갈 수 없으니 천천히 가달라고 아우성이 일게 된다. 그러나 한번 걷기 시작한 상태이고 아직 힘이 남아도는 시점의 사람들에게 조금 쉬었다 가자는 정지명령은 거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급기야 인도자를 앞서 저만큼 앞서 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대오는 무너진다.

 이처럼 빨리 빨리를 다투는 것은 청소년들에게서 더욱 더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등 하라는 부모들의 성화가 저들을 저리 조급하게 만든 것일까.

 경쟁사회에서 빨리 빨리는 남보다 앞설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빨리 빨리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병이다. 자칫 이 병이 깊어지면 사색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마냥 쫒기 듯 바쁜 삶만 살게 된다. 결국 함께 사는 행복을 모르고 혼자만 앞서길 추구하는 이기주의자가 되게 된다.

 빨리 걷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필자의 부끄러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필자의 초등학교 일 이학년 때쯤의 일이다. 큰 매형이 중풍 후유증으로 한 쪽 팔과 한쪽 다리가 불편하셔서 잘 걷지 못하셨는데, 여름철에 처가에 오셨다. 십리 거리의 시장에 볼일이 있다시는 매형을 따라 갔다 오라는 어머니 말씀에 따라 나섰다. 갈 때는 버스로 가서 문제가 없었는데 돌아 올 때가 문제였다. 차비가 없으셨는지 집까지 걸어서 가자고 하신 때문이었다. 매형께서는 손을 잡고 걷자고 하셨는데 친구들이 볼 것만 같아 빨리 걷다 보니 거리를 두고 내가 앞서 걷게 되었다. 같이 가자고 부르시는 매형을 나두고 먼저 집에 도착하였는데, 땀으로 범벅이 되어 도착하신 매형께서 “막내처남 참 잘 걷네요”하며 웃으시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우리 사회가 행복해 지려면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가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이 걷기를 통해 이런 이치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김백호/단일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