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애정과 관심, 일진 '짱'도 변화시킨다
자치,나눔,축제... 정발중 학교문화 변화 주도
작년 대구 왕따자살사건 이후 학교폭력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지 3개월. 정부와 경찰에서는 가해학생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사태해결의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경찰에서 학교폭력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해당 담임교사를 기소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선 교사들 및 교육전문가들은 법제도와 처벌만으로는 사태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폭력문제는 어쨌든 교육현장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지적에 따라 본지에서는 이번호부터 학교폭력문제의 해결을 위한 모범사례들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특히 고양시는 전국에서 교육에 대한 관심도가 가장 높으며 교육문제에 관한 다양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에 첫 번째 순서로 고양시 내에서 학교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는 정발중학교의 사례를 마련해보았다,
다니고 싶은 학교문화 만들기
“학교폭력 문제는 결국 학교가 즐겁지 않고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문화를 바꾸는 일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았죠.”
다니고 싶은 학교, 등교가 즐거운 학교. 이는 정발중학교(교장 서화숙)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학교의 모습이다. 2009년 현재 교장의 부임 이후 정발중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바로 작년 경기도교육청에서 학교문화 선도사업으로 선정된 ‘EGS(Everyone Get Started)프로그램’. ‘모두 다 함께 시작하자’는 의미의 이 기획은 학교폭력문제의 근원을 학생들의 주체적 사고의 부족과 학업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이기주의, 공동체 의식 결여에서부터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정발중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지나친 규제, 통제 대신 교육현장에서 그동안 수동적인 존재였던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규칙들을 지키고 실천해나가며 교육의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야 학교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서 교장의 평소지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위한 행동지침을 스스로 정하면 교사, 학부모 의견 수렴의 과정을 거쳐 학내 규칙들이 마련된다. ‘정발에티켓’으로 불리는 이 규칙들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해당 학생은 어긴 횟수에 따라 일정한 프로그램 수행해야하는데, 대부분 ‘처벌’의 방식보다는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인생곡선 그리기, 15년 후 자신에게 편지쓰기와 같은 간단한 지도 과정부터 미술치료, 캠페인 활동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정발중학교는 소통의 방식을 통해 타 학교와는 차별된 학교폭력 대처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처벌 아닌 나눔과 배려의 정신으로
“처벌은 경찰기관이 해야 할 몫이지 교사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사는 말 그대로 교육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이렇게 엇나가는 학생들을 잘 지도해주고 가르치는 게 교육자의 사명라고 생각해요.”
정발중학교 국선자 교감은 교사라는 직업을 정원사에 비유한다. 필요할 경우 학생들의 의견을 꺾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줘야 한다는 것. “학생들이 설사 허황된 꿈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국 교감의 주장이다. 이렇게 각자 목표를 뚜렷하게 정하다보니 정발중학교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고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덕분에 이번 졸업생들은 한명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 가운데 서울에서 전학 왔다가 이번에 졸업한 A학생의 사연은 유독 특별하다. 서울에서 알아주는 ‘일진’출신으로 여기저기로 강제전학을 당하다가 결국 정발중학교까지 오게 됐다는 A학생은 전학 온 후에도 ‘짱’노릇을 멈추지 않았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교사에게는 인사를 제대로 안해도 A학생에게는 항상 90도로 고개를 숙였을 정도. 이에 교장을 비롯한 정발중 교사 전원이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모든 선생님들이 A학생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지도를 했어요. 그러던 중 이 학생의 꿈이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훌륭한 경찰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용기를 북돋아줬죠. 담임선생님은 유도 학원비까지 지원해줄 정도였어요.” 학교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 A학생은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현재 경찰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재밌는 점은 평소 공부와 담을 쌓았던 A학생이 교칙위반으로 인해 무려 36권의 책을 읽은 덕택에 시험성적이 올라 원하는 학교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학생·교사·학부모의 주체적 참여
교육프로그램이 아무리 잘 마련되어 있더라도 구성원들의 의지가 없다면 속 빈 껍데기에 불과함은 자명한 사실. 서 교장 또한 시스템보다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정발중학교는 학부모, 교사, 학생이 서로 연계되어 학교행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작년에 이 학교로 전입을 왔다는 박소영 교사는 처음 온 순간 ‘학교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교직원 모두가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특히 교장선생님이 항상 솔선수범하면서 나서시니까 교사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전체적인 학교분위기가 의욕적이다 보니 열심히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좋은 것 같아요.”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이뤄지고 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대디폴리스 활동 외에도 각 반별로 학부모들의 자체적인 모임들이 운영되고 있다. 소통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학교운영위원회도 체계적이며 학부모 민원도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학교를 믿고 신뢰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2008년 알몸졸업식 사건 이후 많은 학교들의 졸업식문화가 바뀌었지만 그중에서도 정발중학교의 졸업식은 올해 EBS에서 촬영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고 스스로 축제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처럼 정발중학교는 ‘참여와 자율’이라는 모토아래 새로운 학교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