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 터잡은 귀한동포 마을을 가꾼다
귀한동포 연합회 고양지회 매주 고양시에 봉사활동
지난달 17일 일산2동 우체국 옆 ‘귀한 동포 사랑 나눔 쉼터’라는 간판이 걸린 허름한 건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어두컴컴한 아래층을 지나 5층에 자리잡은 경로당은 제법 환하고 깔끔하다. 경로당 난로주변에서는 오랫만에 만난이들이 서로의 안부를 반갑게 주고 받는다. 오늘은 ‘귀한동포’들이 모여 매주 금요일마다 하는 ‘지역봉사’가 있는 날이다.
그동안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과 냉대를 당하던 이들이 이곳 쉼터를 가지게된 것은 순전히 ‘귀한동포 연합회 고양지회’ 홍석모(49세) 회장 개인의 힘이다. 그는 여행사를 하며 모은 돈 8000만원으로 건물을 임대해 400~500만원의 월세를 내고 있다.
“귀한이란 말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다’란 뜻이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이나 혹은 먹고 살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다시돌아와 ‘귀한’ 1세대가 되고, 나를 포함, 그 자녀들이 2세대가 된다. 우리 2세대도 어려움이 많지만 1세대 어르신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홍석모 회장은 쉼터의 경로당을 열게된 배경을 설명했다.
“1세대 어르신들이 할 일이 없고 외로워 동네 경로당에 나가보지만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커 어울리지 못한다. 이곳에서는 다들 ‘고스톱’을 치고 있는데 중국에서 오래사신 어르신들은 ‘고스톱’이란 말을 알지 못한다. ‘민화’나 ‘마작’을 오락으로 생각한다. 마작도 이곳에서는 노름으로 인식되어 있어 그마저 즐길 데가 없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이분들이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동네 경로당 어르신들이 ‘빨갱이’라고 삿대질을 하며 적대감과 증오심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대학까지 나와서 엘리트라고 여겼던 이들도 자존심에 굉장한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오갈데가 없어진 노인중에는 외롭고 심심해 거리를 배회하다 다단계 판매원들에게 속아 한푼두푼 모아온 돈 700~800만원을 몽땅 날린 경우도 있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홍 회장은 “그동안 경로당 지원 받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법이 없어 지원을 못한다는 것이다. 보다못한 내가 팔을 걷어 붙이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들어가는 돈을 감당할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한걸 생각하면 이제 우리에게도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다문화 지원법’ ‘탈북자 지원법’ ‘사할린동포 지원법’처럼 ‘귀한 동포 지원법’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지역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봉사활동을 하는 한편 고양시 1만5000명 귀한동포들이 모여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물론, 나아가 귀한동포를 경기도 비례대표의원으로 진출시키기위해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끔 우리를 다문화 정책에 포함시키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다문화가 아니다. 언젠가 돌아갈 조국을 그리며 중국에 조선학교를 세워 수십년 동안 우리말과 글, 우리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같은 민족 같은 동포다”라며 몇푼의 지원금 때문에 자존심을 버리는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인 30여명은 일산시장과 복음병원 주변을 돌며 거리청소를 했다. 그동안 이들은 우리 사회속 편견을 바꾸고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 어르신들을 위한 김치봉사, 없는 이들을 위한 연탄봉사와 기부금 후원 등의 활동도 해오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