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생 토박이부터 중학생까지 함께 구석구석 지킨다
풍사파출소 주민참여 야간 자율방범대 동행취재
9일 저녁 8시 30분. 연이은 폭염 속에 열대야가 지속되던 이날 풍산동 주민센터 앞에 13명의 어머니들이 모였다. 일주일에 이틀 풍산지역 주요 일대를 돌며 범죄예방에 앞장서는 이들은 일산경찰서 어머니 방범연합회 풍사대 소속 회원들. 야광봉과 조끼까지 갖춰 입은 모습이 제법 방범대원의 포스가 느껴졌다.
5년째 자발적 활동에 파출소도 적극적 지원
“20명 정도가 활동하고 계세요. 보통 저녁 8시30분쯤에 출발해서 10시30분까지 함께 순찰을 돌고 있어요. 어머니방범대원 대부분이 직장이 있는데도 이렇게 자발적으로 열심히 참여해주니 너무 고맙죠.”
풍산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 어머니방범대 활동을 시작했다는 정순봉 대장. 청소년들의 일탈행위를 계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했지만 초창기에는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공원 한구석에서 담배 피는 학생들을 잘 타이르려고 해도 “아줌마들이 뭔데 지적하느냐”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으며 괜한 시비를 거는 취객들도 종종 있었다고.
하지만 올해 노창훈 소장이 풍사파출소에 새로 부임한 뒤 경찰들도 순찰에 함께 나서면서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정 대장은 “아무래도 경찰관들과 함께 다니니깐 시비거는 사람도 없고 애들도 말을 잘 듣는다”며 “야광봉과 조끼도 차려입고 순찰에 나서니 어머니들끼리 자신감도 더 생기고 적극적”이라고 풍사파출소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매주 순찰지원을 오다보니 멀게만 느껴졌던 파출소 경찰들이 지금은 이웃보다도 더 친근해졌다고 한다.
이들의 활동이 점차 알려지면서 통장협의회원, 주민자치위원들도 자율방범에 함께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은 아예 통장들과 주민자치위원들이 따로 순찰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목요일에는 이렇게 어머니대원들과 주민자치위원, 풍사파출소에서 함께하고 있다. 이날 순찰에 함께한 풍산지역 토박이이자 풍산장학회 7대 회장이었던 정근모 주민자치위원은 “어머니방범대 봉사활동을 전해들은 뒤 우리 주민자치위원들도 가만있을 수 없어 매주 하루는 따로 방범대를 조직해 활동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운동은 기본, 삭막한 아파트생활에 활력소
순찰코스는 풍산동 주민센터 주변 아파트단지를 지나 풍동 식골공원, 세원고등학교를 거쳐 다시 주민센터에 돌아오는 순서로 진행됐다. 일행은 아파트 뒷길, 공원 후미진 곳을 지나며 꼼꼼하게 순찰했다. 노창훈 풍사파출소장은 “파출소 인력이 부족해 순찰차로 대부분 이동하다보니 도보순찰이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주민들이 자율방범에 나서주니 크게 도움이 된다”며 어머니방범대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게 뭐하는 거에요?” 어린이놀이터를 지나던 중 몇몇 주민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어머니방범대활동이라는 말에 주민들은 “아이고 고생 많으시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밤에 걱정 없이 잘 다니고 있어요”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두 딸의 엄마인 이금희씨는 이처럼 자식들의 밤길 안전을 위해 방범대활동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 그렇게 3년째 활동 중인 이씨는 “처음에는 자식들 안전 때문에 시작했지만 지금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동네주민들도 많이 알게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방범대 맏언니 구정자씨는 “이렇게 매주 순찰을 돌다보니 운동도 되고 또 방범대 회원들끼리 아파트 단지소식 등을 공유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자랑했다. 구씨는 “몇 년째 함께 활동하다 보니 오랜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그전에는 아파트생활이 너무 삭막하고 했는데 요즘은 방범대 활동덕분에 너무 즐겁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경찰이 꿈인 재윤이도 순찰에 동참
순찰하랴 이야기 나누랴 정신없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9시 30분을 향했다. 순찰대는 식골공원 중턱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찌는 듯한 열대야 더위에 지칠 법도 했지만 매주 순찰활동을 진행하는 어머니방범대 대원들에게 이 정도는 익숙해 보였다. 오히려 쫓아다니는 기자만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 동안 정순봉 대장이 안쓰러운 듯 아이스크림과 생수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제주도 올레길 살인사건이 터졌잖아요. 여기 공원길도 혼자 다니는 여성들이 많을 텐데 CCTV설치라도 건의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저쪽에서는 어머니방범대 정정인 대원의 아들인 채재윤군이 노창훈 소장 옆에 붙어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올해로 중학교 2학년이라는 채재윤군의 꿈은 경찰이다. 그 때문일까. 다른 학생이라면 시켜도 할까 말까한 자율방범 활동을 채군은 방학기간동안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씨는 “경찰대를 가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데 영 걱정이다”라면서도 순찰에 동참한 아들이 못내 대견한 눈치였다.
순찰이 끝날 무렵. 참나무 공원에 도착하니 열댓명의 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공원에서 친구 생일파티를 치러주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청소년끼리 놀만한 변변찮은 장소가 없이 공원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순찰임무도 간과할 수는 없는 일.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올 수 있으니 너무 시끄럽게 하면 안된다.” 어머니방범대의 충고에 청소년들은 “네”라며 힘차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