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안이 성인될 때까지 일할거야”
따뜻한 삶 - 79세 029번 마을버스 운전기사 배창현 어르신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화정역 근처 마을버스 정류장엔 군데군데 노란 마을버스들이 정차해 있다. 내리는 비를 피해 근처 빌딩 현관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032번 기사는 아쉬운 듯 마지막 한 모금을 세차게 빨고는 바삐 차에 오른다. 028번 기사는 비에 젖은 버스 바닥을 빠른 손놀림으로 닦아내고, 030번 기사는 버스 문을 닫아걸고 운전석에 앉아 부지런히 김밥을 입속으로 옮기고 있었다. 버스기사들은 모두가 바쁘다.
노선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화정역에서 출발하는 마을버스는 새벽 5시 반에 운행을 시작해 밤 12시에 마친다. 기사들은 운행을 마치고 나면 버스에 기름을 채워 넣고 차고지에 차를 대고 퇴근을 한다.
기사들은 오전반과 오후반을 번갈아 근무한다. 화정역을 출발해 한 바퀴를 돌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40분. 운행 후 주어지는 휴식시간은 고작 5분에서 8분이다. 점심시간은 20분이다. 이것도 형편이 좋은날의 얘기다. 비 때문에 도로가 막히고 곳곳에서 정지신호라도 받는 날엔, 땅을 밟아 볼 틈도 없다.
029번 마을버스 기사 배창현(79세) 어르신은 8년째 이런 고단한 생활을 했다. 1961년에 신성교통에 입사해 일반버스 기사로 일하다 2005년 퇴직 후 곧바로 화정교통으로 옮겨 마을버스를 몰고 있다고 했다.
“퇴직 하고 딱 2달을 쉬어 봤는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는 배 어르신의 한 마디에도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온 삶이 보인다. 반평생을 도로 위에서 보낸 배 어르신은 “할 줄 아는 게 운전 빼곤 없다”고 말한다. 한편에선 “운전 말고 모르는 일에 손댔다가 홀랑 망해 버릴까봐”라는 걱정도 있었다고 한다. “한 길을 가다보면 밥은 굶지 않을 거다”는 막연한 생각도 했다고 한다.
배 어르신은 “일반버스와 비교해 마을버스는 고되기 한량없다”고 한다. “내가 모는 029번 노선은 편한 편이다. 028번 노선은 휴식시간이 거의 없다. 중간에 화장실 갈 시간도 빠듯하고 점심을 해결할 시간도 부족하다”며 “한 바퀴 돌고 와서 담배를 딱 3분의1 정도 태웠을 때 다시 버스에 올라야한다”며 담배 타들어간 길이로 시간을 계산하는 애연가다운 말을 한다.
배 어르신이 받는 보수는 시급 최저 4580원으로 계산된다. 하루 9시간 정도를 일하고 수당 등을 다 합해봐야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번다. 이것도 각종 벌금과 사고에 따르는 비용의 일부를 자부담해야 하는 마을버스 기사 입장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받는 액수다.
배 어르신이 “연금도 나오고 하니 이젠 쉬라”는 가족들의 권유를 뒤로 하고 일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1988년부터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은평천사원 외에도 배 어르신이 도와주고 있는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배 어르신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곳은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뻗어있다. 월드비전과 컴패션을 통해 10년 가까이 우간다의 ‘베티’라는 아이와 인도네시아의 ‘부리안’이라는 아이의 후원자가 되어 주고 있다. 부리안은 올해로 15살이다. 배 어르신은 “부리안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는 5년 후까지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고아원에서 나온 아이들이 독립 할 때까지 맡아주기도 했었다는 어르신의 행보 뒤에는 같은 뜻을 가진 가족들이 있다.
배창현 어르신의 아내 박연정씨는 결혼 선물로 “집에 일용할 쌀과 연탄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함께 봉사를 해 달라”는 약속을 요구했다고 한다. 배 어르신은 아내가 원하는 봉사라는 결혼 선물을 주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아내 박씨는 “남편을 존경하고 많이 고맙다”며 부창부수의 행복을 말했다. 연말이면 회사에서 후원금 내역이 담긴 영수증을 보며 많이 놀란다고 한다. 배 어르신에 대해 김상수(화정교통 54세) 과장은 “그 연세에 결근이나 지각 한번 없이 성실하다”고 말했다.
배 어르신이 사는 작은집에는 신성교통에서 받은 표창을 비롯해 가족들이 받은 상장과 감사패들로 넘친다.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는 감사 인사 또한 이들 가족에게는 삶의 기쁨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