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때 발목 잡혀 “고양살이 즐겁다”

이종구 성공회대 부총장 인터뷰

2014-02-12     인터뷰 김진이기자 / 정리 남동진 기자

주민, 공무원 함께하는 100만 도시용역
공동정부, 한계 있지만 성과도 커
카프문제, 진통 있지만 정상화 기대
중앙인사들 “지역에 관심갖고 참여하라”

4년 전 고양무지개연대의 또 하나의 성과는 지역에 거주하던 유력인사들이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시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이종구 교수<60세, 사진>도 그중 한명이다. 민교협 전 상임의장을 지냈으며 작년부터 성공회대 부총장으로 취임한 이 교수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시정운영위원회 위원장, 노사민정위원회 부위원장, 고양지역사회연구소 소장 등을 맡으며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이어가고 있다.
고양시는 올해 인구100만 시대를 맞아 ‘고양100만도시 준비를 위한 연구용역’을 고양지역사회연구소에 위탁, 진행하고 있다. 연구책임자인 이종구 교수를 지난 6일 화정의 조그만 카페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선거 때부터 지역에서 이것저것 맡으시느라 바쁘실 것 같다.
여기저기 이름은 올려놨지만 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번 연구용역도 함께 하는 김범수 박사가 워낙 전문가다 보니 큰 그림을 놓고 조언을 해주는 정도다.

현재 진행 중인 ‘100만도시 준비용역’의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시정방향을 놓고 시민들이 토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공무원 사회에서 짜놓은 플랜에 일부 지역 유지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지역사회의 한계였다면 이번 용역에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만든다는 점이 큰 성과다.

지역사회연구소가 용역을 맡으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주민 당사자들이 직접 계획수립에 참가한다는 점이다. 정책의 수혜자며 이용자인 것이 주민인 만큼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민주주의라고 본다. 그간 외부 싱크탱크에 맡긴 용역은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지역현실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기껏해야 시장선거공약집, 공무원들이 준 통계자료 위주로 보고서를 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한 보고서일지 모르지만 정작 주민들에게 가져가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보다는 어설프나마 자치의 주인인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참여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지자체 연구개발비가 이런 식으로 쓰여졌으면 좋겠다. 당사자들이 낸 의견인 만큼 설사 나중에 정책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되고 지역사회가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온 이종구 교수는 74년 박정희 유신정권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던 중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1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해찬 국회의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이 당시 이 교수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이다. 큰형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전 대통령인수위 국민참여센터본부장을 지낸 이종오 명지대교수는 그의 둘째형이다.
출소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이 교수는 동경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95년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살고 있는 백마마을에 정착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사회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사회학이라는게 사실 이론영역을 제외하면 기자와 하는일이 비슷하다.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듣고 조사해서 정리하고.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사회학도의 첫번째 조건이 넉살과 비위맞추기라고 이야기한다. 상대로부터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니까.

넉살좋은 스타일이신지는 몰랐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는 한다. 한번은 대학시절 담당교수가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하라며 생판 모르는 논두렁에 떨궈놓은 적이 있었다. 한 일주일간 주변 동네에 숙식을 부쳐가며 조사했는데 당시 서울대생이라는 이점 덕에 꽤 순조롭게 진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 이장이 설문지를 다 받아주기도 하고. 같이 조사했던 이해찬 씨(현 국회의원)은 더 가관이었다. 아예 마을사람들 모아놓고 일장연설까지 했으니(웃음).

고양에는 언제부터 사셨나
92년 신도시입주가 막 시작될 때 이사 왔다. 분당과 일산 두 곳 모두 신청했는데 분당은 떨어지고 여기에 당첨돼서 오게 됐다.

지금 집값차이를 보면 좀 억울하실 것도 같다
그런 건 전혀 없다(웃음). 주변에 공원도 많고 해서 충분히 만족한다. 아내도 친구들 보러 분당을 한번 다녀오더니 거긴 복잡해서 도저히 못살겠다고 하더라. 하여튼 이사 한 번 안가고 잘 살고 있다.
 
2010년 무지개연대 공동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되셨나
이춘열 전 무지개연대 집행위원장과는 대학시절 운동권 선후배 사이다. 고양에 이사 온 뒤 주말농장에 나갔다가 근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렇게 동네에서 몇 번 보다가 2010년 안식년으로 쉬던 참에 야권연대를 준비한다고 한 번 와달라고 해서 나간 적이 있다. 그때부터 발목 잡힌 것이 지금까지 온거다(웃음).

덕분에 안들어도 좋았을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겠다.
오히려 지역사회, 현장이라는 게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현실화되는 모습, 사람들과의 갈등 그 자체도 매우 의미있고, 흥미로운 연구과제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지역에서는 잠 자고 출퇴근만 했었는데 지역 의식도 생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면
지역사회에 정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지, 향우회 등 이익단체가 이렇게 다양했었는지 그전까지는 잘 몰랐다. 무엇보다 금정굴 유족회의 활동이 가장 인상 깊었다. 지역 토박이이자, 평범한 어르신들이 모든 집회에 참석해 맨앞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경청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보면서 울림이 있었다. 이러한 당사자운동이 지역시민사회의 큰 자산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시에서 ‘공동정부’라는 실험을 한지 4년이 흘렀다. 그간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시장이 직접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거리를 좁혀나가는 그런 관리체계가 되기를 희망했는데 막상 기초의회라는 장벽에 부딪힌 측면이 있다. 공동정부는 고양시 전체를 대상으로 고민하는 반면 집행자인 의원은 소지역주의로 갈 수 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시작부터 한계가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체감한 셈이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이러한 공백을 행정주인의식을 지닌 공무원노조의 정책참여 기능 혹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역사회 주민운동 등을 통해 해결해나갔다. 일본 혁신계 활동 등이 지방자치 선순환구조의 대표적 사례다. 이를 위해선 지역 시민사회의 잠재적 자원을 끌어낼 수 있는 참여 시스템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를 전망하자면
지난 4년 동안의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어떤 시장과 어떤 의회가 구성되더라도 그간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역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때문에 지금의 정치 상황을 너무 회의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냉정하게 보면 일정 정도의 전선들이 꾸려진 셈이다.

▲ 이종구 교수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고양무지개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한 바 있다. 사진은 2010년 3월 4일에 열렸던‘고양시정 10대 개혁의제와 100대 정책 공약발표회’.

올해 초 지역사회에는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주류협회의 출연금 미지급으로 영구폐원위기에 처했던 카프병원의 운영을 성공회대에서 맡기로 한 것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실마리가 풀리지 않던 카프병원 정상화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데는 부총장을 맡고 있던 이종구 교수의 힘이 매우 컸다. 

카프병원을 성공회대가 맡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보건복지부 측은 제2의 진주의료원사태로 번지지 않을까를 염려했던 것 같다. 수습차원에서 처음에는 서울시에 문의했는데 적자운영에 대한 부담과 공무원 직제를 바꿔야 하는 문제 등이 있어서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다가 서울시에서 노숙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성공회재단에 문의를 했고 그게 사회복지학과 정원오 교수를 통해 학교 측에 전달되면서 논의가 진전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선뜻 맡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서울시 공무원을 만나서 사정을 들어보니 학교에서 충분히 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건복지부가 낸 출구전략은 밀린 금액을 제외한 50억을 주류협회가 출연해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병원, 재활시설의 운영권을 성공회대에 넘기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직원고용 승계문제까지 이야기를 끝낸 뒤 작년 12월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성공회대 안에서도 협상을 진행한 교수들과 주교단의 입장이 다르고 정부와 주류협회, 시민공대위 측의 입장까지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어 협상이 정체되어있는 상황이다. 각 이해당사자들 간의 복합방정식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진통을 겪을 것 같지만 결국은 합리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시민사회에서도 카프정상화를 위해 많이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정치의 해다. 출마준비자들에게는 ‘나는 정치를 왜하는가’ 에 대한 성찰을 주문하고 싶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공약보다는 정치지망생들의 책임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사회의 인텔리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너무 서울 중심으로만 활동하지 말고 본인이 사는 지역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고양시의 경우 성유보 선생, 서광선 교수 등 원로들이 지역사회에서 젊은 사람들과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고양시민사회의 큰 역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