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은 디테일에서 태어난다”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 강연차 고양 방문한 유홍준 교수

2014-11-12     이병우 기자

석굴암 1mm 오차도 없어
시스템 갖추고 대접해줘야
장인정신 발휘·명작 탄생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의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고양을 방문했다. 고양시 인문학 모임인 ‘귀가쫑긋’의 강사로 지난 3일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명작의 조건과 장인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유 교수는 이날 미술과 역사를 오가면서 우리가 익히 알던 문화유산에 깃든 장인정신,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명작’인 이유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지난 3일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인문학 모임인 ‘귀가쫑긋’의 강사로 나선 유홍준 교수는 준비한 슬라이더 화면을 제시하며 우리 문화유산에 깃든 장인정신을 설명했다.

우리가 ‘명작(masterpiece)’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3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바로 최고의 정성·최고의 기술·최고의 재력이라는 요건이다.

명작은 고구려·신라·백제 시대에 탄생한 작품일지라도 현재 시점에서 봐도 아름다움을 지닌다. 신라의 금관을 보라. 전 인류역사를 통털어 이만큼 왕의 존엄성을 풍기면서 아름다움을 지닌 금관이 있겠는가. 아마 지금 세계 금관 대회가 열리더라도 ‘그랑프리’는 따논 당상이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나온 팔찌는 또 어떠한가. 명품이라 일컫는 크리스찬 디올 브로셔에 나와도 손색없다. 아니 더 탁월한 세련미를 지닌다. 명작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다. 천년 전의 작품도 바로 어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 시대도 똑같이 공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인정신이 스민 명작의 특징은 디테일 측면에서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점이다. 백제시대 향로나 고려시대 청자를 보면 디테일이 아름답게 마무리되어 있다. 디테일의 아름다움은 최고의 정성과 최고의 기술이 합해졌을 때 나타난다. 백제시대 향로를 찬찬히 들여다보라. 용의 입을 통해 향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14세기 고려 불화였지만 현재 일본 교토 대덕사에 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보라. 수월관음이 흰 사라(紗羅)를 걸치고 있는데, 얇은 선으로 수십만 번 X자를 긋고 육각형의 무수히 많은 선을 그려놓으니까 멀리서 보면 그것이 흰 사라로 보였던 거다. 속살이 비치는 사라를 그리기 위해 붓질을 몇 십만 번 했는지 알 수 없다. 그야말로 ‘영웅적인 참을성’을 갖지 않고서야 이 명작을 완성했겠는가. 

석굴암 불상을 예로 들어보자. 불국사 석굴암은 신라의 국무총리격인 김대성이 25년간에 걸쳐 만들었다. 김대성에게 모든 전권을 주고 만들라고 하니까 전무후무한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석굴암 완성에는 국가적인 재정적 뒷받침도 있었다. 기술자들에게 무조건 장인정신 가지라고 한다고 해서 갖춰지는 게 아니다. 국가적으로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장인을 충분히 대접하고 시스템을 갖추어야 명작이 탄생한다. 석굴암이 놀라운 것은 구조적으로 단 1㎜의 오차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1cm가 아니라 1mm의 오차도 허용치 않았다. 명작이 탄생할 때 장인들이 갖고 있던 공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유홍준 교수는 "장인정신이 스민 명작의 특징은 디테일 측면에서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미술품 명작은 어느 한부부이라도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정교하고 아름다움이 스며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에 반해 평범한 졸작을 확대해보면 아딘가 모르게 각도, 비례가 정확하지 않은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작은 세부적인 비례나 균형감이 거의 완벽하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의 한명인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는 명작에 대해 이런 말은 남겼다.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