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의 연과 같이 내 마음도 하늘에 두둥실~

세계3관왕 차지한 연의 달인 김형인씨

2014-12-03     이옥석 시민기자

빙허어풍 위욕비(憑虛御風 爲欲飛)
허공을 의지하여 바람을 맞으면 원하는 대로 날 수 있으니

아심여연 천유승(我心如鳶 天有昇)
저 하늘의 연과 같이 내 마음도 하늘에 올라 있구나.


추워서 손등이 우둘투둘 터져도 잣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그 중에 연 만들기는 겨울철 빠지지 않았던 놀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350개 나라 70억 인구가 연을 날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1300여 년 전 진덕여왕 1년(648)에 연을 날렸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온다. 삼국시대 이래 지금까지 연날리기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놀이이고, 전쟁에서는 나라를 구한 유용한 통신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것에 대한 불신·부정이 깊어지며 연날리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연 끊기 부문, 긴 연(4㎞) 부문, 가장 많은 연날리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서 세계 연날리기 대회 3관왕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김형인씨. 그도 어린 시절 벌판을 뛰어다니며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연을 날렸다. 하지만 4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어릴 때보다 더 연을 좋아하고 더 자주 연을 날린다.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연날리기 전통도 세계적인 자랑거리”라고 말하는 김형인씨.

“숨을 안 쉴 때까지 연을 날릴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취미였던 사냥과 낚시, 아마추어무선도 안하게 됐다. 아무리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어도 연을 한 번 날리기 시작하면 다 놓게 되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 번씩 동호인들과 가양대교에 가서 연싸움을 할 때 기술을 걸어서 상대를 이기면 사냥할 때의 스릴, 낚시할 때 손맛보다 100배 더 즐겁다”며 “이기면 1주일 내내 살살 웃음이 나고, 지면 1주일 동안 푹푹 찐다”고 말했다.
김형인씨의 주특기는 연싸움이다. 연싸움을 잘하려면 우선 실을 잘 만들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연실에 갑오징어에서 나오는 부렛가루, 사기, 유리를 빻아서 밥풀에 짓이긴 것을 바른 실로 연싸움을 했다. “지금은 카슈와 금강석가루, 즉 니스에 사포가루를 섞어서 싸움 연 실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실은 전깃줄이나 와이어 줄도 다 끊을 수 있고 살을 베이기도 한다. 그는 “연 싸움은 한 가지 기술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둑, 장기보다 더 많은 기술로 싸운다”며 “줄 주기, 감아치기, 줄 풀기 등의 기술을 매 순간 적절하게 이용해야하고, 내 연이 찢어지지 않도록 상대 연보다 5m 앞에 나가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미세한 기술의 차이에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장인정신과 혼이 곳곳에 살아있으며, 정교함으로 만든 연들이 즐비하다.

  김형인씨는 “우리나라 얼레에는 길쭉하게 튀어 나온 뽈대가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불 때 자신의 몸에 뽈때를 탁 때려주면 바람을 타고 연실이 20~30m 쭉 나가는데 그 실에 맞으면 천하장사도 죽어요”라고 말한다. 얼레에 튕김을 주는 것을 ‘대포쏜다’고 표현한다. “연을 보고 쫑대를 허리에 쳐주는데 연이 11시에 있다면 11시 방향으로 쏴줘야 하고, 연이 3시 방향에 있다면 그렇게 하는데, 상대연이 도망갈 때 이때는 치는 거예요. 근데 상대가 넘어올 때 치면 내가 죽어요”라고 말하는 김형인씨는 지금 가양대교 위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표정이었다. 

“70억 전 세계 인구가 다 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연날리기, 연싸움을 올림픽 종목에 채택한다면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날리기 전통도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width="600" height="400" layout="responsive" class="amp_f_img">
“70억 전 세계 인구가 다 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연날리기, 연싸움을 올림픽 종목에 채택한다면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날리기 전통도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 연날리기대회 3관왕
25년째 자신만의 연 만들어
“올림픽 종목에 연싸움 채택됐으면”

연을 잘 날리려면 자세(얼레의 경상도 방언), 실, 연, 눈이 일직선이 돼야 하고 자세를 감는 방법이 숙달되어야 한다. 방패연을 제대로 조종하려면 매일 3~4시간씩 3개월은 연습해야 된다. 연은 바람에만 의지해서 날리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없어도 연을 날릴 수 있고, 실을 풀었다 당겼다 하면서 방향전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물론 고수들의 이야기다. 25년째 연을 만들어 온 김형인씨는 자신만의 연을 만들고 있다. 그가 만드는 연은 ‘만세연’이다. “이 연을 날리면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연날리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좋은 연을 만들 때는 장력을 잴 수 있는 저울도 필요하다. “머릿살, 장살, 중살, 허릿살 등 그 위치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장력이 되도록 대나무살의 무게를 조종해야 되고, 사방이 30㎝인 줄연을 100장 올릴 때 바람을 받을 수 있는 장력이 얼마인지 알아야 얼마의 간격으로, 어느 정도 굵기의 실을 몇 가지로 사용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민속놀이 정도로 알고 있는 연에 과학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나라 연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정운란 한국민속문화협회 회장은 “연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며 “김형인씨처럼 연을 만들고 날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운란 회장은 연 장인들과 함께 연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연을 쫓는 아이들’처럼 연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올림픽에 연싸움을 채택시키고 널리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김형인씨. “올림픽종목에 해당하는 운동경기를 실제로 즐기는 인구가 얼마나 되느냐”며 “70억 전 세계 인구가 다 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연날리기, 연싸움을 올림픽 종목에 채택한다면 13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날리기 전통도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우리나라에는 연을 배울 학교도 없고, 박물관도 없고, 연을 날릴 연 터도 없는 실정이다.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민속이 너무나 홀대받고 있어 안타깝다. 찬바람 맞으며 연을 날리는 계절이 왔다. 아이들 손잡고 시골 동네 동둑이나 논두렁, 밭두렁으로 가서 연을 날려보자. 아이들 마음이 연을 타고 저 푸른 하늘로 두둥실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