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평화정책에 획기적 전환, 복지국가의 초석 다져
고양신문 김대중평화포럼 2차특강 ‘김대중의 국가’를 말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꿈꾸던 국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구체적인 국가의 상을 제시했던 ‘김대중의 국가’를 되새겨보는 자리가 지난 20일 일산동구청 대강당에서 마련됐다. ‘김대중 평화포럼‘ 두 번째 순서 ‘김대중의 국가를 말하다’에서는 국민의 정부 당시 직간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초청해 당시 추진했던 여러 제도와 정책을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꽃과 강아지 사랑했던 휴머니스트
첫 번째 발표는 국민의 정부시절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던 유시춘 작가가 맡았다. 유 작가는 “(김대중 대통령을)지근거리에서 많이 본 입장에서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김 대통령의 인권과 평화사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시춘 작가는 “남성적 덕성과 여성적 섬세함,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양성성을 지닌 인물”이라며 “그가 옥중에서 쓴 편지를 보면 나라에 대한 걱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꽃과 새와 강아지를 가장 사랑했던 휴머니스트였다. 사저에서 매일 장미를 가꿨으며 정계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갈 때나 사망하기 전까지 새 모이 주는 활동을 즐겼다고 한다. ‘김대중의 사상은 과격하다’는 일부 보수 세력의 평가에 대해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뼛속 깊은 의회주의자였으며 의원들의 장외투쟁을 가장 싫어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품성을 잘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었다. 유 작가는 김 대통령이 작고하기 2달 전 자서전을 집필하던 중 김 대통령 납치사건 주범의 아들이 미대사관 대사로 발령받은 사실을 알고 이 내용을 자서전에 넣을지를 물어봤다. 하지만 김 대통령의 답은 의외였다. 비록 원수의 아들이지만 현재는 평화의 사도로 일하고 있는데다가 이미 헌법에서도 연좌제는 폐지된 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유 작가는 “원수의 자식도 사랑하셨던 분”이라며 그 당시 크게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김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까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두 가지도 언급했다. 바로 복지정책의 기초가 된 노인연금정책,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그것이다. 또한 호주제 폐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등 양성평등과 인권향상을 위한 정책들도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설치 당시 많은 국가들이 벤치마킹했을 정도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국가의 초석 쌓아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김대중 정부 당시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보건복지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박사는 먼저 “김대중 정권을 평가하기에 앞서 출범당시의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쪽으로는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인해 각종 사회적 욕구들이 분출하는 시기였으며 다른 한쪽으로는 IMF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이 때문에 개혁정책을 밀어붙이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먼저 언급했다.
그러함에도 이상구 박사는 국민의 정부 당시 복지정책에 큰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먼저 지역별, 조합별로 나눠졌던 의료보험을 통합해 의료보험 빈부격차를 해소했으며 현재 128만원가량을 보장해주는 기초생활보장제도도 처음 실행했다. 노인장기보험 또한 국민의 정부 당시 초안을 잡았으며 의료보호법도 개정을 통해 치료비용이 환자들에게 바로 지원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편의성을 크게 증대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박사는 “특히 의료통합을 성사시킴으로써 그나마 한국 의료시스템이 민영화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적어도 돈이 없어서 죽는 일은 최소화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제도”라며 “김대중 정부에 대한 비판은 인정하되 공을 함께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해결해나가는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추진 한계
국민의 정부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엄기형 교원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의 교육정책에 대해 “교육복지정책 시행과 양성평등교육 실시 등 일정 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IMF의 요구와 전임시절 5·31교육정책 기조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며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엄 교수는 그 대표적인 예로 IMF 요구에 의해 김대중 정부 당시 추진됐던 교원 정년단축문제를 지적했다. 엄 교수는 “교원 정년단축정책이 불가피했더라도 교사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방향으로 추진됐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개혁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전교조가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또한 “출범 당시 내세웠던 교육공약의 상당수가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이는 이해찬 당시 장관이 교육관료들의 편으로 돌아섬으로써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이해찬 당시 장관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으며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개혁정책은 좌초를 맞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엄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 본인은 학구열이 뛰어나고 교육철학이 확고했던 분이었지만 교육정책에는 큰 성과를 나타내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교육정책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정권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교육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국가기구설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진보·보수를 넘는 사상가로 새롭게 조명해야
발표가 끝난 뒤 패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국민의 정부 당시 노인정책에 대한 평가와 교육정책의 장기적 해결방안에 대한 질의 등이 이어졌으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일부 보수세력들의 악의적인 공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유시춘 작가는 “외국 작가모임에 가면 ‘김대중의 나라에서 온 작가들‘이라고 찬사를 받을 정도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근거 없는 음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이야기되는 기형적인 언론지형의 탓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이념적 갈등을 넘어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지역에서 새롭게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개인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글로벌데모크라시(Global democracy)라는 용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진보보수를 넘어서 그를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한 명의 사상가, 정치가의 위치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