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뭐래도 우린 철없이 사는 게 좋아

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이종희·임려희 부부

2015-08-11     이성오 기자

22살, 25살 청춘남녀가 만나 여자 나이 스물넷에 결혼했다. 연애시절 떨어져 있기 싫어 동거를 먼저 시작했던 부부는, 얼마 전까지 카페를 운영하다 온가족이 훌쩍 7개월간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무엇을 하든 함께하길 원하는 부부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부부가 같이 앉아 있을 것 같다”며 서로를 바라봤다.

▲ 진지한 인생보다는 즐기는 인생을 사는 부부. 행신동 주택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부부는 카페를 접고 돌연 세 자녀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났다. “남들은 철없어 보인다 할지 몰라도 내가 행복해야 남들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냐”고 부부는 말했다.

23살, 시부모님 집에서 동거 시작
아내 임려희(44세)씨가 남편 이종희(47세)씨를 처음 만난 건 대타로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였다. 소개팅 당일 연락 받고 나갔던 자리라 남자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거기다 남자가 궁할 나이도 아닌 22살 소녀 같은 아내였다. 남편은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머금어진다. “너무도 작고 귀여운 모습에 한눈에 반했어요. 술도 못하는데 맥주를 마시며 종이학을 접어줬죠. 첫날부터 마음에 들려고 별짓 다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남편의 구애는 100일 동안 이어졌다. 남편은 퇴근 시간이면 매일같이 아내 직장 앞에서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다 집에 데려다 줬다. 아내가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하면 술집 앞에 차를 대기시키고 있다가 집으로 데려다 줬다. 정성이 기특해서인지, 아니면 그 사이 정이 들어서인지 100일 동안 매일같이 기사 노릇을 한 남편에게 아내는 마음을 열었고 ‘죽고 못 사는’ 연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년 정도 사귀다 주말에 1박2일로 강원도 여행을 떠났는데 둘이 종일 있어보니 너무 좋았어요. 하루만 회사를 ‘땡땡이치자’고 했는데 그게 며칠이 됐죠. 무단결근한 회사에선 집에 연락하고 난리였을 거예요. 그 와중에 우리는 아예 제주도에 가서 더 있다 오자고 했죠. 하지만 그때 돈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남편이 자기 통장을 집에서 가져오겠다고 새벽에 몰래 서울 집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거실에선 불을 꺼놓은 채 아버지가 눈을 부라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이내 축복과도 같은 말을 했다.

“니가 죽고 못 사는 그 아이 어디 있냐? 안되겠다. 이렇게 살 거면 같이 살아라. 우리집에 들어와서….” 
거기에 청춘남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네~ 아버지.”
상상만으로도 시트콤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부부는 서로를 보며 또 웃는다.

무계획 아내, 밀어붙이는 남편
결혼식은 동거를 한 지 1년 뒤에 올렸다.

“예기치 않게 시작된 동거지만 시부모님이 너무 잘 해주셨어요. 23살 나이에 시집살이를 한 건데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둘이 있는 게 그냥 너무 좋았어요.”(아내)

“둘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우리들을 잡아준 게 제 부모님이었어요. 결혼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죠. 지금 생각해도 철딱서니 없던 때예요.”(남편)

▲ 신혼 초 강릉 낚시여행
철없이 시작한 동거와 결혼이지만 둘은 너무 잘 맞았다. 부부는 연애를 하고 동거를 하면서도 ‘이 사람으로부터 못 떨어지겠구나’, ‘우린 끝가지 가겠구나’, ‘죽을 때까지 같이 붙어있겠다’ 싶었단다. 

사는 데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겠냐는 아내, 한번 마음먹으면 앞뒤 안 가리고 그냥 밀어붙이는 남편. 이 둘은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큰 이견이 없었다.

 “저는 무슨일이든 질릴 때까지 끝까지 해보는 편이에요. 대신 지겨움도 빨리 느끼나 봐요. 그래서인지 10년 이상 한 가지 일을 해보진 못했어요. 질리면 다른 일을 찾곤 했으니까요.”(남편)
 “젊을 땐 연애도 그렇게 했을 걸요. 참, 그럼 혹시 나랑 사는 것도 질릴 때까지?”(아내)
“언제쯤 질리려나. 하하하.”(남편)

부부는 결혼식 후 부모님 도움으로 작은 집을 따로 얻어 살았다. 결혼을 해서도 떨어져 일하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연애시절부터 하던 조립컴퓨터 판매사업을 접고 아내의 회사에 취직해 얼마 동안 같이 일했다. 그러다 아내가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 두면서 남편은 집 근처에서 당시 호황이던 비디오 가게를 열었다.

“그때는 비디오 가게가 잘 되던 때라 남편이 재밌게 일했어요. ‘출발비디오여행’이란 TV프로그램에서 가게주인이 영화를 직접 소개하는 코너에 남편이 출연하기도 했어요. 대신 저는 임신하고 10년 동안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집에만 붙어있었죠.”

카페 운영하며 키운 세계여행 꿈
10년간 집에만 있던 아내는 스스로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살아있는 느낌을 받기 위해 뭐든 해야겠다”싶어 아동복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했지만 6개월 만에 접고 북아트에 관심을 돌렸다. 북아트를 시작하고 1년 만에 강사가 됐고 강의를 다니느라 바쁜 시절을 보냈다.

▲ 부부가 운영했던 행신동 카페에서
남편은 비디오 가게를 그만 두고 직장생활을 7~8년 할 무렵부터 슬슬 다른 일을 찾고 있었다. “익숙해질 무렵이 되니 오히려 더재미가 없더라고요. 커피를 못 마셨지만 그때부터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커피를 배웠어요. 그래서 결국 카페를 차렸죠.”

카페일을 처음부터 부부가 함께 하진 않았다. 남편이 혼자 작은 카페를 서울 은평구에서 시작했는데 1년간 해보니 시간도 넉넉하고 자신감도 붙어 1년 준비 끝에 고양시 행신사거리 단독주택 골목에 가게를 하나 더 냈다.

“그때가 은평에 살다 고양시로 이사 왔을 때인데 가게를 하나 더 열면 수익도 2배가 될 거라 생각했죠. 두 번째 가게는 부부가 같이 하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아내에게 원하는 카페가 있느냐 물었더니 북아트 공방형태의 카페로 하자고 했어요.”(남편)

그렇게 ‘책 만드는 커피가게 오후’가 행신동에 문을 열었다.
“거기 시작할 때 다들 망할 거라고 했어요. 워낙 상권이 안 좋아서 위층에 살던 집주인도 ‘니들 맨땅에 헤딩하는 것 아니니?’라며 걱정 할 정도였으니까요.”(아내)

행신동에 차린 2호점은 은평구 1호점보다 2배는 더 넓었다. 인테리어를 위해 목수를 부렸는데 이틀 써보고 부부 뜻대로 안돼서 인테리어를 직접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3개월을 주방 설계부터 페인트칠, 바 만들기까지 천천히 그리고 예쁘게 만들어갔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재미도 있었다. 가게가 생각보다 예쁘게 나왔고 부부도 가게에 애착을 많이 가졌다. 그런 애정을 손님들이 안 건지 장사도 잘 됐다.

“카페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같이 즐겼어요. 처음부터 공간을 직접 만들고 꾸몄고, 운영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 해 봤어요. 공방에서 수강생을 모아 교육을 하고 전시회를 열었고, 고양이 키우는 팻카페로도 유명했죠. 단골이 원해서 무명가수를 불러 콘서트도 열었어요.”(남편)
“가게를 하면서 느꼈어요. ‘하고 싶다면 뭐든 할 수 있구나’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제안한 게 세계여행이었어요.”(아내)

나이 들어 남들이 안내해 주는 여행 가지 말고, 좀 더 젊을 때 부부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여행을 떠나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2년 뒤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카페를 하고 싶어 했는데 즐기다 보니 잘 됐고, 그런 상승 분위기에서 그때 아니면 못 해볼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여행 중 돈 떨어져 빚내 세계일주

▲ 작년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여행을 결심하고 부부의 손길이 구석구석까지 닿은 소중한 카페도 정리했다. 카페가 팔리자 세 자녀를 모두 데리고 부부는 작년 3~10월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가족이 다녀온 나라는 모두 21개국이다. 유럽 3개월, 영국 1개월, 미국을 3개월간 여행했다.

그런데 여행 중 문제가 생겼다. 여행자금으로 준비했던 8000만원을 다 써버린 것. 부부는 그만 귀국할까도 고민했지만 계획했던 대로 여행을 마치기 위해 해외에서 국내 보험사에 전화해 보험담보 대출을 2000만원 더 받아 예정대로 여행을 마쳤다.

 “세상 참 좋더라고요. 외국에서 전화했는데 통장에 2000만원이 들어와 있었어요. 돈이 더 있었으면 더 다녔을 텐데 좀 아쉽긴 했어요.”(아내)

우여곡절도 많았다. 크로아티아에선 남편이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그냥 참고 버티기도 했고, 스페인에선 오토바이 강도단에 짐을 모두 털릴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캠핑카 여행은 참 좋았다. 라스베가스 사막에서의 잊지 못할 밤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대자연에 압도 당하며 자연의 위대함도 느꼈다.

“영어도 하나 못하면서 여행을 결정하고 생존 영어도 혼자 배웠던 게 다인지라 말이 안 통해 무서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긴장감마저 즐겁더라고요.”

부부는 작년에 한국에 돌아와 생활비에 허덕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뭐든 ‘말하는 대로’ 쉽게 될 줄 알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을 때도 있는 게 현실이다. 여행 중에 빚을 냈기에 가계는 밑천이 떨어지다 못해 더 안 좋아졌다. 이런 와중에 남편은 또 하나의 꿈을 얘기했다.

 “미국 여행에서 대자연을 보고서 미국에 또다시 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미국에 가면 한 10년은 여행을 더 할 수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미국 가서 여행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배울까 하는데 그게 목수일이에요.”(남편)

남편이 귀국하고 생활비를 벌겠다고 바로 시작한 일은 대리운전이었다. 그렇게 운전하다 만난 손님이 목재소 사장이었고 지금은 그 사람을 통해 목재소 일을 배워 목수와 함께 집짓는 현장에 나가 일을 한다.
부부는 스스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한다. 즐기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기에 남들 보기에 철이 좀 없어 보여도 상관없단다.

“남들은 둘이 뭐든 함께 하는 게 지겹지 않냐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있어야 더 잘 돼요. 당장은 생활을 안정시키는 게 먼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또 다른 공간을 만들면 거기 같이 앉아서 뭔가 뚝딱뚝딱 하고 있을 거 같아요”라고 아내 임려희씨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