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으로 그린 어린왕자 벽화

‘기쁨터’ 벽화봉사 참여한 고양·파주 학생들

2015-11-02     권구영 기자

 

▲ 옛 ‘기쁨터’(일산동구 성석동) 건물 외벽에 그려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그림을 그린 학생들에게는 벽화뒤의 어린왕자를 만나며 발달장애우를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발달장애아 자활가족모임터였던 옛 ‘기쁨터’(일산동구 성석동) 건물 외벽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산다. 고양·파주 고교생들이 지난 봄·여름에 그린 벽화다.

1998년 발달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의 작은 기도모임 장소였던 기쁨터에 벽화가 처음 그려진 것은 지난 2005년. 지금은 일산동구 성석동으로 옮긴 기쁨터가 성석동에 자리잡았을 때 마당에 철쭉을 심고 삭막한 벽면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미대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가족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 벽화는 전문화가의 손길이 더해지며 새롭게 태어났지만, 또다시 비바람과 함께한 세월로 인해 색이 바랬다. 그 세월 속에서 첫 벽화 그리던 날 옆에서 흙장난하던 아이는 화가를 꿈꾸는 여고생이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세 번째 기쁨터 벽화 복원 작업에 참여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기존 그림의 복원이라 모방하는 것일 뿐 창조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의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처음에 이 벽화를 그린 작가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마음의 눈’과 ‘친구’에 대해 이야기한 ‘어린왕자’의 세계를 제가 다시 살려내는 것 같았죠.”

유주연(운정고3)양은 한여름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나갔다. 쉬는 시간에도 그림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애써 완성한 그림이 혹시 비 때문에 물감이 쓸려가지 않게 코팅 작업까지 했다.

 

▲ 고양·파주의 청소년들은 지난 봄~여름 동안 기쁨터 벽화봉사를 하며 자신만의 진로를 찾기도 하고 벽화 뒤의 어린왕자를 만나며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여름에 다시 현장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옛 건물을 성인주간보호센터로 바꾸려고 비워뒀던 터라 건물 주변은 풀이 무성했다. 거미줄, 각종 벌레집들, 썩은 호박들이 나뒹굴었고 풀을 뽑으며 모기에 물리기도 했다.

“처음엔 모두 소리 지르고 도망가고 난리였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기약을 뿌리며 함께 치우고 정리하면서 서로서로 챙겨주며 벽화작업을 이어갔죠.”

끝나갈 무렵 바오밥나무를 그리는 친구의 작업이 덜 끝났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먼저 끝낸 친구들이 매트를 꺼내와 지붕을 만들어주어 작업을 끝까지 마쳤다. 벽화 봉사에 끝까지 함께했던 김주호 학생(중산고1)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벽화작업을 통해 서로 도우면 어떤 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 ‘어린왕자’ 중에서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다람쥐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보내는 학생들에게 기쁨터 벽화봉사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자선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 함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간이었고, 벽화 뒤편의 어린왕자를 만나며 발달장애우를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기쁨터 벽화 봉사 참가 학생>
유주연(운정고3), 이희수(운정고1), 김태리(운정고1), 김희재(운정고1), 김주호(중산고1), 한지혜(중산고1), 신동한(중산고1), 이준(중산고1), 김지연(고양외고1), 심주미(고양외고1), 유지명(덕이고1), 문지우(덕이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