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준 것들의 기나긴 목록
나의 문화편력기』를 쓴 김창남 교수
고양시 거주 작가 신간 소개 -
『나의 문화편력기』를 쓴 김창남 교수
우리 시대의 탁월한 대중문화 연구자 중 한 명인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가 새 책 『나의 문화편력기』를 선보였다. 1960~70년대 개발독재시대에 유·소년기를 거치며 성장한 저자가 어린 시절 감성의 원형질을 만들어준 만화, 노래, 잡지, 영화 등 대중문화의 계보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춰 회고한 에세이집이다.『대중문화의 이해』,『대중문화와 문화실천』등 학술적 성과가 돋보였던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이번 책은 남다른 기억력과 풍부한 감성을 가진 동네 아저씨가 편안한 술자리에서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에 가깝다. 책에서 다뤄지는 60~70년대는 정치적으로는 유신의 한가운데를 통과했던 엄혹했던 시절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집단 속의 개인이 출구를 모색하며 다양한 형태로 욕구를 분출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러한 역동성을 충실히 옮겨 놓아 고우영과 신동우, 이미자와 신중현, 배삼룡과 이기동, 튜니티와 외팔이 시리즈, 선데이서울과 어깨동무 등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문화의 다양한 아이콘들을 페이지마다 가득히 담아냈다. 동년배들에게는 폭풍 공감을, 다른 세대들에게는 특정 세대의 대중문화 향유 지도를 엿보는 즐거움을 전해줄 듯하다. 성공회대 교수실을 찾아가 책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았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의 대중문화사 전체를 학술적으로 정리하려는 학자로서의 목표가 있는데, 이에 앞서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감성을 바탕으로 유년시절과 청소년기에 나를 길러 준 대중문화적 토양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휴식년을 맞아 외국에 있으면서 한 꼭지씩 쓰기 시작했고 페이스북에 연재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동년배들이 적극적으로 공감 해 주며 이런 저런 제보도 해 줬다. 주변의 응원에 힘을 얻어 기억을 되새기고 자료를 찾으며 글쓰기를 이어가다가 한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묶자는 의뢰가 와서 책으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주관적인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 객관적 대중문화사를 서술한 것이 재미있다.
글을 연재하는 과정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대중문화에 관련해서는 개인적 체험이 보편적 체험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대개 비슷한 체험과 정서로 대중문화를 내면화했다는 점은 연구자인 나에게도 늘 흥미로운 부분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로 나누어 기술된다. 두 시기의 차이는.
개인적으로 유년기에는 나에게 다가오는 대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청소년기에는 어느 정도 기호를 갖게 되고, 일방적인 주입을 거부하게도 되고, 취향이 비슷한 또래들과 문화를 공감하며 어울렸다. 주체적인 문화적 선택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운동권 문화에 대해 회고하는 대목에서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이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보수적이기도 했다는 고민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 역사의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정치적 진보와 문화적 성향은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아주 진보적이지만 일상속에서의 사고는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게 나에게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처음 발견되었던 것일 뿐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진보의 자리와 민족주의의 자리가 겹쳐지는 까닭도 있다. 그러한 이유로 정치적으로는 진보지만, 문화적으로는 유교문화적 가부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을 보다 재밌게 읽는 방법이 있다면.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문화편력기를 반추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 사람은 그 시절 이 노래를 좋아했구나, 나는 이 노래가 더 좋았었는데···, 하는 식으로 말이다. 글을 쓰기는 어렵더라도 나만의 목록 정도는 재밌게 작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동년배들끼리 지난날의 대중문화를 소재로 삼아 독서모임을 갖는다거나, 아니면 평범한 술자리에서라도 과거의 대중문화 체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즐겁지 않겠는가. 각자의 문화적 경험을 객관화 하면서, 지금은 어떤 문화적 환경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면 더 좋을 것이고.
대중적 감성은 끊임없이 바뀐다. 시간이 갈수록 더 세련되지는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시대 문화의 환경과 한계 속에서 대중적 감성의 수준이 결정된다. 현재가 우월하거다나 과거가 열등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만 한 단계를 거쳐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것 뿐이다. 그 시절에는 왜 그런 문화적 감성이 대중에게 먹혔는지를 객관화해서 유추하고 해석하는 것이 유익하다. 보다 풍성한 해석의 관점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 나와 같은 문화연구자들의 몫이기도 하고.
대중문화 생산과 소비의 중심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느낌이다.
60년대까지는 기성세대를 위한 문화만 있었다면, 70년대 통기타세대 들어서서 비로소 청년들이 당당히 문화 생산의 주체로 부각되었다. 80년대는 대학생들이 아예 문화와 사회적 담론을 이끈다는 자부심으로 넘쳤던 시절이고. 하지만 90년대 이후 사회의 모든 요소들이 자본에 의해 잠식되면서 이제 대중문화의 코드는 완전히 십대들에게 맞춰져있다. 하지만 생산적 주류라기보다는 소비 대상으로서의 주류일 뿐이다. 무비판적으로 기성세대의 경제 논리로 생산된 문화를 수용하고 길들여진다고나 할까. 이전에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가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달라지는 체험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냥 청소년기에 습득한 대중적 감성이 연장되는 느낌이다.
중년 세대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소리가 높다.
십대 중심으로만 생산되고 소비되는 문화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진행형의 대중문화와 담을 쌓고 옛날 노래만 찾아듣는 식의 회고적 문화 소비에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50대들이 청소년이었던 시절에 폭발적인 공감을 자아냈던 송창식 같은 뮤지션이 지금도 새로운 곡을 발표하고 그런 노래들을 중년들이 공감하면서 향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에 맞는 건강한 생산물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려면 지속적인 향유가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 시장에서는 누리고 소비하는 만큼만 자신들의 몫이 생긴다. 청소년 일변도의 문화 편중을 불편해하지 말고, 건강한 중년 대중문화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지켰으면 좋겠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대중문화적 괴리로 인한 불편함이 많다.
부모가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 못한다고 일방적으로 제재하거나 핀잔을 주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문화가 세대간의 소통의 창이 될 수도 있다. 부모가 먼저 내 세대에는 이런 걸 좋아했단다, 라고 말을 건네보면 좋을 것 같다. 왜 좋아했는지도 설명해주고. 그 다음에 너도 니가 왜 그걸 좋아하는지를 엄마에게 설명해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이 책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가벼운 질문을 던져보겠다. 책에는 수많은 문화 상품들이 등장하는데, 유소년기를 지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억지로라도 딱 하나만 꼽아본다면?
음...(한참 뜸을 들이더니) 아무래도 영화 ‘007 시리즈’다. 60~7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에게 007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탁월하고 재미있는 오락물이었다. 가수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조금 청승맞은 계열이다. 최희준, 배호, 김정호, 그리고는 이장희와 송창식이다.
저자는 인터뷰를 하며 궐련을 한 대 말아 피웠다. 궐련을 마는 도구에 종이를 깔고, 필터를 끼운 후 가루담배를 눌러 넣고는 동글게 말아 침을 살짝 묻혀 완성한 궐련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자의 백발과 잘 어울렸다. 궐련을 피운지는 꽤 되었단다. 소극적 조세저항이라는 농담도 덧붙인다. 작은 기호품 하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향유하는 멋이 무엇인지를 보는 듯 했다.
『나의 문화편력기』 - 기억과 의미의 역사 / 김창남 지음 / 정한책방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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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의 멤버로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탄생의 주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김창남 교수는 이십여 년 전부터 고양에서 살고 있는 이웃이다. 역시 고양에 거주하는 동료 교수 두명과 ‘더숲 트리오’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