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뿌리를 찾고 맥 잇는 일, 제가 해야죠”
한국재즈의 선구자 이판근 선생의 딸 이민영씨
한국재즈의 선구자 이판근 선생의 딸
기자촌에서 부친과 함께 백석동 이사
‘이판근재즈국제교류협회’ 사단법인 추진
한국 재즈의 뿌리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만나는 인물이 있다. 한국 재즈의 선구자이자 탁월한 이론가이며 한국 재즈 베이스의 1인자였던 이판근 선생이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음악을 놓지 않는 이판근 선생이 고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판근 선생의 딸인 이민영씨 역시 일산동구 백석동에서 선생과 함께 거주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이씨는 아버지 이판근 선생 슬하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빠는 목사, 언니는 주부로 살고 있어 이민영씨야말로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물려받은 유일한 자녀였다.
재즈 아티스트 이민영씨는 활동 음악장르를 재즈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1989년부터 방송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 김광석, 강산에, 김목경 등의 음반의 녹음작업에 참여해 세련된 건반연주를 가미시켰다. 라이브 활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김창완, 안치환, 고 김광석, 박학기, 강산에, 이은미, 김목경 블루스 밴드, 부활 등의 객원 건반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8년간 함께 한 김목경 블루스 밴드에서는 블루스를, 부활 3집 ‘사랑할수록’ 음반 작업에서는 록을, 고 김광석의 라이브에 참여할 때는 포크를 할 정도로 장르를 넘나들었다. 한편 연세대 연합 신학대학원에 출강하기도 했고 청운대 방송음악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민영씨는 아버지의 재즈인생이 스며든 온갖 악보와 서적, 음반, 영상물, 악기들이 빼곡이 들어찬 서울 은평구 기자촌 옛집을 떠올렸다.
“우리나라 중견 뮤지션들의 90% 이상이 은평구에 있는 기자촌을 거쳐 갔다고 봐도 돼요. 기자촌의 뮤지션들이 음악활동을 오래 하지 못하는 걸 많이 봐왔어요. 그래서 ‘이 나라 재즈의 명맥이 끊어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했어요.”
기자촌이 어떤 곳이었던가. 은평 뉴타운으로 허물어지기 전까지 기자촌은 말 그대로 34년간 국내 재즈음악의 산실이었던 곳이다. 재즈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재즈를 태동시킨 한국 재즈1세대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즈 1세대 중에서도 선구자였던 이판근 선생이 재즈 이론을 가르친 강의실이 있었던 곳이다. 1977년부터 34년간 이판근 선생이 머물던 기자촌 2층집은 생활공간인 동시에 녹음실이자 강의실로 이뤄져 재즈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모교’역할을 했다. 당시 음악을 하는 사람이 ‘기자촌으로 간다’고 하면 ‘이판근 선생으로부터 음악을 배우러 간다’는 의미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이판근 선생이 이곳에서 재즈의 감성과 이론을 전수했던 제자 뮤지션이 무려 3000명을 헤아린다. 원로부터 중견까지 현재 활동하는 대다수 재즈 뮤지션들이 그의 제자였다. 재즈 뮤지션뿐만 아니라 록그룹 사랑과평화의 최이철,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과 김종진, 포크 가수 박학기, 영화음악가 조성우를 비롯해 심수봉, 인순이, 윤수일처럼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가수들까지 기자촌을 거쳐갔다.
“원래 저희 이모가 살던 그 기자촌 집에서 아버지와 제가 1977년부터 살기 시작했어요. 9채의 집이 연결된 상가주택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저희 집이었습니다. 정말 누추한 집이었죠. 그렇지만 아버지의 재즈 인생 전부가 스며든 집이었어요. 뉴타운으로 개발될 때 그 집에 있던 음악 관련 자료들이 많이 분실되기도 했어요.”
이민영씨는 딸이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뮤지션으로서 기자촌이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서울시와 은평구청을 상대로 법정에서 4년간 재판을 벌이기도 했다. 뉴타운으로 허물어지기 전 기자촌의 이 집을 중심으로 한국 재즈 1세대 음악인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가 남무성 작가에 의해 제작되기도 했지만, 이씨의 아쉬움은 여전했다.
“우리가 보상을 받은 돈으로는 다시 서울에는 정착할 수 없어 갈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고양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아버지에게 말했어요. ‘꼭 기자촌의 이판근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대한민국의 이판근이잖아요’라구요.”
이민영씨는 지난해 1월말 사무실까지 일산동구 백석동으로 옮기며 아버지 이판근 선생을 기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즈를 외국에 전파하고 외국의 뮤지션들도 한국에 와서 연주하면서 국제간 음악교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이판근재즈국제교류협회’이라는 사단법인을 추진하는 중이다. 또한 이씨는 이판근 선생이 집필한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는 한편 헌정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중견 이상 뮤지션들은 아버지의 공로를 잘 알고 계세요. 그렇지만 그 이후 젊은 뮤지션들은 아버지를 잘 모르죠. 젊은 뮤지션의 스승을 가르친 이를 궁금해하지도 않아요. 한 음악 장르의 뿌리를 찾고 맥을 이어가는 역할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