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3 백화점, 사실상 중소기업 고혈 짜서 세계 최고 수익 올려

4·13 총선 공약제안④ 대기업유통 독과점 횡포 규제로 중소기업 살리자

2016-03-29     이영아 발행인

‘특정매입’ 편법적 제도 개선, 수수료 인상제한 관련 법 신설 필요 

백화점에 입점한 한 중소기업은 매출이 꾸준히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늘 제자리걸음이다. 백화점이 가져가는 수수료가 워낙 높고, 판매사원 인건비와 인테리어 비용 등 백화점 입점에 따른 원가 지출이 매출의 절반을 넘어버리기 때문이다.
수백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유명 브랜드지만 50%에 달하는 백화점 입점비용(수수료와 매장 유지비용)에 생산원가, 본사유지비용을 제외하면 수익이 거의 없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해도 적지 않다. 패션브랜드의 핵심은 디자인 개발과 제품의 질 향상인데, 투자할 여력조차 없다.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올리고, 할인을 강요하는 백화점 측의 횡포에 몇 번 맞서기도 했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것은 불이익뿐이었다. 매장 위치를 바꿔버리거나, 수수료를 더 높여달라는 요구가 따라왔다. 이러다간 얼마 못가겠다는 위기의식은 높아지지만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백화점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길을 찾거나, 백화점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한 대표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의 독과점 유통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백화점의 주요 상품인 패션분야는 특히 심하다. 대기업의 패션브랜드 외에 중소기업 패션브랜드는 10년을 못 넘기고 무너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인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지만, 대기업의 횡포에 눌려 세계로 뻗어나가기는커녕 백화점에 입점하는 순간 몇 년 견디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국회의원들도 이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국내 빅3 백화점 수익률 세계 최고 수준
국내 백화점의 수익률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의 백화점 수익률은 1.2~3.5%에 그치지만 국내 빅3(롯데·현대·신세계) 백화점의 수익률은 7%를 웃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백화점의 실제 수익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거라고 예측한다.
국내 백화점 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특정매입’ 이라는 변칙적인 유통구조 때문이다. ‘특정매입’은 상품을 외상으로 매입해서 판매한 뒤 재고품은 반납하는 거래 형태를 일컫는다. 백화점은 아무 부담 없이 상품 판매 수수료만 챙긴다. 매장을 빌려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도소매업이라기보다는 임대업에 가깝다. 특정매입이라는 변칙적 유통구조까지 동원해 도소매업으로 포장하는 것은 임대업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라는 지적이 높다.


문제는 이 특정매입 거래조건이 백화점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은 판매 수수료까지 지나치게 높게 챙긴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20% 수준이었던 백화점 수수료는 현재 35~45%까지 올랐다. 상한 제한 없이 오르는 수수료 때문에 제조기업들은 제품가격을 올리거나 생산원가를 낮추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만 한다. 둘 다 시장경쟁력을 약화시켜 기업 경영은 점점 위축되게 된다. 백화점에 입점한 중소기업 브랜드는 10년을 넘기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화제가 됐던 백화점 블랙프라이데이는 중소기업의 출혈을 전제로 강행된 횡포 중의 횡포였다. 제조업체에는 70% 왕창 세일을 강요하면서 백화점 수수료는 고작 3~4% 깎아줬다고 한다. 상품이 많이 팔릴 수록 백화점은 돈을 벌고 입점기업은 손해를 보는 불공정 거래의 한 단면이다. 

 

 

중소기업, 백화점에서 죽거나 나가서 죽거나

백화점은 해외 명품 브랜드나 대기업 상품, 자사 관련 브랜드에 대해서는 10%대의 낮은 수수료를 적용하고, 힘없는 중소기업 상품에만 30~45%의 높은 수수료를 적용한다. 불공정한 거래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백화점을 비롯한 대기업 유통이 국내 시장을 독과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죽어나가든, 백화점을 떠나서 죽어가든 중소기업은 살 길이 없다고 한다.

백화점은 수수료만 챙기고, 매장 인테리어비용이나 판매직원 고용비용 등은 모두 입점 업체가 부담하다보니 상품 매출의 50% 이상이 백화점 관련 지출로 사라진다. 생산원가와 본사 유지비를 더하면 수백억대 매출을 올리는 우량 기업이라 해도 성장이 멈출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7년 중소기업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거래현실을 개선하겠다며 고시 개정을 추진했다. 고시 내용을 보면 ‘반품조건부 거래관행인 특정매입거래를 허용하되 계약서에 거래조건, 매장의 위치 등을 명시하여 거래상대방을 보호한다’고 표기돼 있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개선한다는 미명 아래 특정매입거래 개념을 도입하고 허용한 것이다. 거래조건과 매장의 위치 등을 명시한다고 덤으로 붙여놓았지만 아무 쓸모도 없는 규정이다. 백화점에 입점하기 위해 줄을 선 기업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독과점 현실에서 백화점의 횡포를 막을 길은 없다.

최근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횡포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신설했다. 법률 내용을 보면 입점기업에게 가장 절실한 수수료 인상 문제와 특정매입거래에 대한 개선방안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여전히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선에서 중소기업의 권리를 덤으로 늘어놓고 있다. 

실제로는 수수료 임대업, 중과세해야

국내 중소기업을 살리고 대기업 유통 독과점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소수 대기업의 편에서가 아니라 다수 중소기업의 편에서 공정거래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하다.
먼저 중소기업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고 있는 수수료 인상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김익성 박사(중소기업연구원)는 논문에서 ‘우리나라 백화점의 입점 수수료를 5% 정도 하향 조정하여도 주요 국가의 당기순이익률보다 여전히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백화점 수수료가 인하된다면 중소기업들은 그 자금을 연구개발비 등에 재투자하여 중소기업의 경쟁력강화와 지속가능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적정한 수수료율을 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불공정 거래로 규제하거나 입점 수수료에 대한 상한제도를 특별법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백화점에 입점한 고양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미국과 유럽 등 세계 대다수 국가의 백화점은 전량매입 거래를 하고 있다”며 “특정매입 거래는 부동산 임대업을 도소매업으로 포장하는 편법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내 백화점도 전량매입제도로 바뀌는 것이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 이라고 강조했다.
전량매입제도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거나 수수료 인상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절실하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국내 백화점의 유통구조가 실제로는 수수료 임대업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중과세 적용대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