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태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야”

최근 태실 관련 책 펴낸 김득환씨

2016-07-15     이병우 기자

조선시대에는 왕, 왕비, 대군, 왕세자, 공주 등이 태어나게 되면 태를 묻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이 태를 묻는 석실이 바로 태실(胎室)이다. 왕족의 신분이니 태를 태실까지 봉송하는 절차와 봉안하는 의식도 꽤나 까다로웠다.

▲ 최근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 태실’을 펴낸 김득환씨는 “서삼릉 주변에 태실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태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조선 왕실의 태실을 일제강점기에 집단적으로 이장, 조성한 것이다. 현재 서삼릉 태실에는 국왕 태실 20기, 왕자 태실 19기, 왕녀 태실 13기, 왕손 태실 2기 등 총 54기가 모여있다. 1929년 일본 침략자들은 우리나라 전역의 태실을 발굴하고 태가 든 태 항아리를 서삼릉으로 옮겨 관리했다. 고양시 서삼릉의 태실은 세종대왕이 낳은 17명의 왕자와 손자 단종 등 19기의 태실이 조성된 경북 성주 월항면과 함께 대표적인 태실 조성지다.

이러한 태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할 만큼 중요한 문화적 가치가 있음을 알리는 책이 나왔다. 바로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 태실’이다. 저자인 김득환씨는 이 책을 통해 조선왕조 역대 임금들의 태실을 사진과 함께 소개할 뿐만 아니라 태실이 조성되는 절차, 태실이 훼손되는 경위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김득환씨는 “생명존중 사상에 근거한 태봉이야말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유산이므로 반드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학술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종을 몰아낸 계유정란 당시 큰 공을 세운 홍윤성이 세조의 태가 묻혀 있음을 알리는 비를 세웠는데, 세조의 잘못을 미워한 백성들이 이 비에 수 백 년 동안 오물을 퍼붓고 돌로 찍었다는 내용은 흥미를 자아낸다. 경북 예천군에 있는 사찰인 명봉사의 사적비로 둔갑한 사도세자의 태실에 얽힌 사연도 흥미를 끈다. 저자는 “명봉사 주지스님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 태실’은 태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할 만큼 중요한 문화적 가치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조선왕조 태실 훼손이 컸을 때는 일제 강점기였다. 이 책은 ‘일본 통치자들은 1929년 조선의 태실지가 모두 길지라는 사실을 알고, 조선 왕실의 정기를 끊기 위해 전국에 산재한 조선왕실 태실을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당시 세종대왕의 태항아리도 이안됐다’고 쓰고 있다.

저자인 김득환씨는 “어릴 때 고양시 벽제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조선 왕조 태실들이 집장된 서삼릉으로 소풍을 가곤 했기 때문에 그 추억이 머리 속에 강렬하게 남아서 남들이 가지 태실 전문가의 길을 가게 됐다”며 태실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를 말했다.

김씨는 “태실에 미친 사람소리도 가끔 듣는다”며 “서삼릉 주변에 태실박물관을 세워 국내 관광객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방문객들이 한국의 태실 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