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로 공원 산책, 시 읽으며 마음 산책

주교동 마상공원, 시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

2016-11-11     유경종 기자

마상공원 오르막길 초입에 시 공원을 알리는 간판이 세워졌다.

시를 읽으며 마음의 온기를 얻고, 공원을 산책하며 삶의 쉼표를 찍는 이들에게 더 없이 반가운 공간이 꾸며졌다. 주교동 주민들이 즐겨 찾는 마상공원이 ‘시가 있는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 고양시도서관센터에서는 마상공원 시공원 개장을 축하하는 시 콘서트를 지난 5일 마상공원 작은도서관 앞 마당에서 열었다. 주교동 책놀이터 작은도서관의 어린이노래단 ‘시끌이들’의 노래로 막을 연 이날 콘서트에는 이안 시인의 맛깔스런 진행으로 유강희 시인, 손택수 시인, 이지상 가수가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 시토크와 시 낭독, 시 노래를 들려주었다. 공원 마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공원이 품은 따뜻한 풍경과 시가 전해주는 감동에 흠뻑 젖어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된 행사를 함께 즐겼다.

주교동 책놀이터 어린이노래단 '시끌이들'이 경쾌한 노래로 첫 무대를 열어줬다. 

손택수 시인(왼쪽 두 번째)을 비롯한 초대 손님들이 시와 노래를 들려줬다.

시가 그렇듯 시공원의 첫인상도 요란하진 않았다. 천천히 살펴야만 겸손히 숨은 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상공원 작은도서관 앞에 있는 조형물은 주기적으로 시를 교체할 수 있도록 강화유리에 시를 새겨넣었다. 약수터 옆 오르막길 입구엔 마상시공원이라는 문패가 걸렸다. 나무그늘 아래로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면 무릎보다 낮은 높이의 검은 색 대리석 빗돌에 새긴 시들을 만난다. 빗돌엔 원래 뜬금없는 속담이 적혀 있었는데 새롭게 시를 얹고서야  비로소 공간과 어울리는 용도를 찾았다. 시를 새겨넣은 판은 구리철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청녹색 녹이 슬어 운치를 더할 것 같다.     

살포시 시가 얹혀지니 투박하게 자리하고 있던 검정색 빗돌의 인물이 훤해졌다.

시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시는 현대시, 동시, 외국시를 골고루 아우른다. 안도현, 이성복, 정유경, 유강희 등 국내 시인들과 함께 프로스트, 브레히트 등 외국 시인들의 이름도 눈에 띈다. 하나같이 짧은 분량 안에 깊은 사색과 시적 쾌감을 아우른 시들이 선정됐다. 시를 고른 이의 정성과 고민이 짐작된다. 천천히 읽어보며 가장 맘에 드는 시를 골라 동행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듯. 기자의 눈길을 끈 시는 권정생의 시와 고영민의 시였다. 권정생 선생은 ‘인간성에 관한 반성문 2’라는 시를 통해 오십년 전 꼬마 시절에 이웃집 여자 아이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며 ‘여전히 이가 갈린다’고 고백하고 있다.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쓸쓸해진다. 평생을 홀로 살다 간 지은이의 허허로운 삶이 자연스레 떠오른 탓이리라. 고영민 시인의 ‘공손한 손’은 추운 겨울날, 식당에서 밥이 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밥뚜껑 위에 공손히 손부터 올리더라는 내용의 짧은 시다.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온기, 먹거리에 대한 겸손한 감사 등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공원 마당에 자리한 조형물. 교체가 가능하도록 강화유리판에 시를 새겼다.

시공원 조성에 정성껏 힘을 보탠 이는 고양에 거주하는 손택수 시인이다. 손 시인은 시 공원 조성의 기본 원칙으로 ‘절제와 정밀’을 요구했다. 시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시가 오염되기 때문에 선택된 시를 넘치치 않게 배치해야 하며, 띄어쓰기와 맞춤법, 작가의 생몰년과 출처를 정확히 명기해야 한다는 것. 까다롭지만 너무도 당연한 요청을 지키기 위해 실무자들은 시가 놓일 가장 적절한 위치를 고민하고, 시가 실린 책의 원본을 꼼꼼히 들춰봐야 했다고. 손택수 시인은 스스로 마상공원 시공원 조성의 상징시로 ‘공원’이라는 시를 지어 헌정하기도 했다.시공원에 소개된 시들을 엄선하는 수고도 손 시인의 몫이였다.

마상공원 작은도서관도 시공원 조성과 함께 쓰임새가 바빠질 듯하다. 작은도서관 입구에는 예쁜 시 항아리가 놓였다. 항아리 안에는 시를 적은 종이를 한 장씩 둥글게 말아 채웠다. 누구나 시 한편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양시도서관센터에서는 마상공원 작은도서관과의 연계 사업으로 시집과 시 퍼즐 등이 담긴 시꾸러미도 운영하고, 시인과의 만남, 시 콘서트 등을 주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혼탁한 말들이 안팎으로 넘치는 요즘, 정제된 언어가 그립다면 아직은 가을 흔적이 머물고 있는 마상공원 시공원을 찾아가보자.

마상공원 작은도서관 입구에 놓인 시 항아리. 따뜻한 시 한편을 거져 건네주는 인심 좋은  항아리다.

 

마상공원 작은도서관에선 고양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코너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