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에 쌓은 석성(石城) 발견
덕양산 정상 부근 석성 유적 시굴
행주산성의 역사 다시 쓰는 계기
[고양신문] 고양시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지인 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石城)이 발견됐다. 행주산성 종합정비계획을 진행 중인 고양시는 “행주산성 정상 아래쪽 20m 지점에서 석성의 흔적과 다수의 출토 유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석성은 그동안 9세기 무렵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土城)의 흔적만 전해졌던 행주산성의 실증 유물의 역사를 5~6세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다.
석성과 유물 양호한 상태로 쏟아져
모습을 드러낸 석성은 행주산성의 종합정비사업을 시행하기에 앞서 진행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시굴은 학술연구조사 전문기관인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맡았는데,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정되는 4개 지점을 선정해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덕양산 정상 부근의 남서쪽 경사면에서 무척 양호한 상태의 석성 흔적이 발견된 것. 위치로 보아 외성(기존의 토성 위치) 안쪽에 조성한 내성의 일부로 추정하고 있다.
석성은 놀랍게도 지표에서 깊지 않은 곳에 묻혀 있었다. 표토를 50㎝ 정도만 걷어내면 흔적이 드러나는데 성의 본체인 체성은 5~9단 정도로 석재를 다듬어 쌓았고, 돌 사이는 적갈색 사질점토를 사용해 견고하게 다졌다. 체성을 보강하는 보축성벽도 18단으로 완만하게 쌓아 매우 견고한 구조로 축성했음을 보여준다.
출토 유물도 쏟아졌다. 태선문, 격자문 기와조각들이 다수 발견됐고, 특히 행주산성의 지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행(幸)’자 무늬가 선명한 기와도 출토돼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석성 주변에서 차관(철로 만든 수레바퀴의 축), 가위, 철정, 철제 화살촉, 작은 병(기름을 담았을 것으로 추정) 등이 다수 출토돼 행주산성 안에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방지, 또는 저장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확인된 바 없는 석성의 실체가 1500여 년만에 모습을 드러냄으로 인해 행주산성의 본래 모습을 확인하는데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성에서 토성으로 변모된 과정, 또는 석성과 토성이 상호 보완적으로 조성된 구조 등이 보다 명확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껏 행주산성 가치 부분적으로 조명
행주산성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처음 축성됐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특히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행주산성을 축성해 북방방어기지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견해였다.
하지만 1962년 국가 사적 제56호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현장이라는 점에만 집중해 이전 역사에 대한 관심은 조명되지 못했다. 1970년도에 행주산성 성역화사업을 통해 대첩비, 충장사, 덕양정 등이 들어서는 과정에서도 전승지로서의 의미만 강조된 것.
1990년도에는 행주산성 정비복원을 위한 시굴조사가 서울대학교 연구진에 의해 시행됐는데, 이때 토성의 실체가 발견돼 현재 400여 m의 토성이 복원된 상태다. 행주산성의 구조는 내성과 외성, 자성(본성 외에 별도의 작은 성), 장대, 건물지, 성문지, 목책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정밀한 지표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까닭에 상세한 규모와 위치는 지금까지 파악되지 않았었다.
구체적 계획 세워 본격 발굴조사 필요
그렇지만 이번에 발견된 제한적인 시굴 자료만 가지고는 여러 가지 가설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한 것도 사실. 따라서 향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본격적인 정밀 발굴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삼국시대의 성곽 축조 연구는 물론, 한강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삼국시대의 역사 연구에 획기적인 사료가 것으로 보인다.
시굴조사를 진행한 불교문화재연구소 최인창 팀장은 “연차적인 조사 계획을 세워 문화재 발굴과 보존을 위한 정확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조사와 발굴에 적어도 4~5년 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주산성은 국가 지정 문화재인 까닭에 본격적인 조사와 발굴 작업은 문화재청의 허가와 지원을 통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고양시 문화예술과 윤병열 팀장은 “행주산성 종합정비계획 보고서가 7월에 나오는데, 우선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의 계획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면서 “보고서 작성과 함께 본격적인 유적 발굴을 위한 예산 신청을 문화재청에 서둘러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달 27일 열린 시굴조사 설명회에 참석한 곽미숙 도의원, 이규열 고양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 등은 “행주산성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역사적인 사업을 위해 문화재청과의 긴밀한 협조와 함께 고양시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들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