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참전용사 제대로 대우해야”

박영섭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고양시지회장

2020-08-24     한진수 기자

22살에 파병, 13개월간 참전, 전우·적군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아 
유공자 권익·예우 위해 노력하며, 고양에 월남전참전비 세우기 위해 노력

1971년 12월 강원도 화천 오음리. 한 달간의 기초훈련을 마친 22살 박영섭 일병은 화천에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다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그는 손톱, 발톱을 깎아 선임에게 제출했다. 박영섭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고양시지회장이 기억하고 있는 1972년 1월 초, 부산항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이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유해 일부분으로 남길 손발톱을 깎을 때는 덜컥 겁이 났다. 고양군 중면 장항6리 출신 22살 청년의 무겁고 두려운 발걸음은 떠밀리듯 미군함 바리트호로 향했다. 5남매 중 셋째로, 부모님과 형제들의 큰 걱정을 뒤로 하고 그는 국가와 가족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배에 올랐다.

박영섭 월남전참전자회 고양시지회장

평화롭던 그 곳 생전 잊지못해
“1972년 1월 1일인가 2일에 생전 처음 본 5층 건물 높이의 미군함에 승선했어요. 월남(베트남)으로 향하는 뱃길이자 입대 6개월만의 해외 파병입니다. 솔직히 겁이 안 날 리가 있겠습니까? 겨울이라 손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고, 거기에다 배 멀미까지 겹치면서 초죽음 상태에서 1주일 정도 걸려 베트남에 도착했어요. 다낭 해변가에 내렸는데 전쟁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풍경이었습니다. 전쟁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했고 현지인들은 평화로웠습니다”라며 베트남 모래해변의 첫발을 이야기했다.
평화도 잠시. 군용트럭을 타고 2시간 남짓 꼬불꼬불 달려 내륙으로 들어갔다. 밀림지대가 깊어질수록 대포 소리와 함께 공포가 온몸을 엄습해 왔다. 진짜 전쟁터를 마주하게 됐고, 정글지대 그 자체가 전쟁터였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주변상황은 마음과 몸을 엄청 괴롭혔다. 총을 꽉 쥔 두려움의 시간은 150여 일이 흘렀다.
6개월째 접어들면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안캐패스(638고지) 작전이 시작됐다. 치열했다. 생전 잊지 못할 참혹한 광경이 수도없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당사자가 되어 있었다. 그 전투는 5개월 정도 지속됐다. 무섭고 잔인하고, 힘들었으며 긴장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꿈에서 생생하게 재현될 때가 많아요. 희생당한 전우들뿐 아니라 쓰러지는 적군 모습도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그렇게 참전 1년 1개월이 흘러 1973년 2월까지 13개월 동안 전장에 있었죠. 아니 매일 생사를 오가는 지옥에 있었습니다.”

참전 용사들 찾아 권익위해 노력
현재 고양시 참전생존자는 국가보훈처 통계로 3333명(7월말 기준)이지만 정작 고양시지회 등록 회원은 148명으로 4.4%의 수준이다. 그동안 참전자회 홍보가 적극적이지 못해서 단체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전우들도 있었다.
참전자회 고양시지회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 전우들을 찾고 정보를 교환하며 전우애를 나누며 유공자들의 권익과 예우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을 찾기 위해 고양시 3개 구청과 고양시향군회관에 ‘대한 민국월남전참전자회등록 회원모집’ 현수막을 걸었다.
대한민국의 베트남 파병 병력 누계는 32만여 명에 달하지만 그동안 많이들 돌아가셨다. 고양시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위해 참전자회는 무공수훈자회 봉사단과 공동으로 장례 후 경기도 이천 호국원에 영면하는 것까지 모든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전우이자 호국영령들을 위한 소중하고 기본적인 예우다. 하지만 단체의 최소한 예우에 비해 국가와 고양시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많은 시군에 세워진 월남참전자비(명각비)가 고양시에는 없다.
“우리 참전자들이 대한민국 경제와 미래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파병 간 것에 대한 기억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고양시 참전자들의 염원이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동안 국가 보상은 미비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전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정부가 책임 있게 대우해줘야 합니다. 참전자들에 대한 고양시 보훈수당은 5만원(80세 이하)으로 타 시군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월남참전자명 각비도 고양시에 세워야 합니다. 조속히 관련 법안을 마련해 세워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박영섭 회장은 "고양시에 참전자들을 위한 월남전참전자비가 꼭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과 전우들 위해 헌신할 것
박영섭 회장은 지난 2월 고양시 임시지회장을 맡았다가 7월 8일 지회장으로 정식 임명을 받으면서 앞으로 4년간 고양시지회장으로 봉사를 하게 됐다. 2011년부터 참전자회고양시지회 운영위원 등 다양한 지역 활동을 펼쳐왔으며, 법무부 법사랑위원회와 일산농협 영농회장, 장항1동 통장협의회장, 농수산물품질관리원 농정협의회장, 고양시주민참여예산위원회위원 등 각 분야에서 고양을 위해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활동으로 국무총리·법무부장관·경기도지사·서울지방보훈청장으로부터 표창패와 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월남전참전자회 고양시 지회장에 임명된 것은 지역에 봉사하고 전우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 회원 한 분 한 분 명예선양과 복지증진에 힘 쓰겠습니다. 많은 참전 전우들이 우리 국가유공자 공법단체로 들어오셔서 여생을 ‘마지막 봉사다’라 생각하시면서 다시 한 번 뭉쳐봤으면 합니다. 코로나19로 9개월째 월례회의를 못하고 있지만 하루속히 일상으로 돌아와 전우들의 행복과 고양시민들의 안녕을 위해 활동을 펼치고 싶습니다.”
박영섭 회장은 현재 법무부 법사랑 위원과 검찰청 고양지청 형사조정위 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고양시 월남참전자회 생존자 중 72세로 막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