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제자리걸음, 문봉서원 복원의 현주소는?
문화유산 회복·고양팔현 정신 계승 “당위성 있지만 예산과 시민동의 있어야”
[고양신문] 고양에는 현존하는 2개의 서원이 있다. 행주서원과 용강서원이다. 덕양구 행주외동에 있는 행주서원은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전공을 기리기 위해 1841년 건립됐고, 일산동구 성석동에 있는 용강서원은 조선 초의 문신인 박순을 제향하기 위해 함경도 용흥강변에 건립됐다가 후손들에 의해 1980년대 현재 위치에 중건됐다.
행주서원, 용강서원처럼 현존하지는 않지만, 다른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역민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서원이 고양에 있었다. 고양지역과 관련이 있는 조선의 여덟 선비, 이른바 ‘고양팔현’의 위패를 모신 문봉서원(文峰書院)이다. 행주서원과 용강서원의 경우 권율, 박순 등 선현을 기리는 성격을 가진데 반해 문봉서원은 고양팔현에 대한 제향과 함께 이들의 철학과 학문을 가르치는 강학의 공간으로으서의 성격도 강했다.
문봉서원은 조선 숙종 14년인 1688년 건립됐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1709년에 숙종으로부터 ‘문봉(文峰)’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편액을 하사받게 됐다. 이른바 ‘사액서원’으로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0년 훼철(헐리게 됨) 됐다.
이러한 문봉서원에 대한 복원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30여 년 동안 고양의 유림들 중심으로 일관되게 복원의 당위성을 주장해왔었다. 하지만 고양시는 복원을 위한 간헐적인 움직임은 보이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왜 문봉서원인가’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문봉서원 복원이 어렵나’를 말하고 있다. 문봉서원 복원을 둘러싼 현재 상황을 통해 복원의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고양은 수백년 충절 높은 여덟 선비 기렸던 곳
남효온, 김정국, 기준, 정지운, 민순, 홍이상, 이신의, 이유겸.
이들 고양팔현은 조선초기와 중기의 문신으로 모두 문봉서원에 제향됐다. 2001년 단국대 매장문화연구소가 발표한 ‘문봉서원지 기본조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고양팔현 중 정지운, 홍이상은 선대 대대로 고양이 생활 터전이었던 이들이다. 그리고 이신의는 20대에, 남효온과 김정국은 30대에 고양의 산천과 민심을 쫓아 옮겨 온 이들이다. 한편, 서원에 제향된 인물은 그 지역과 연관된 인물이 선정된다는 성격으로 보았을 때, 이유겸 또한 고양 출신이거나 이곳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외에 기준은 본관이 행주로 『덕양유고』, 『덕양일기』 등의 저서를 남기는 등 고양과 인연이 있고, 민순 역시 사직할 때마다 고양으로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는 등 삶의 상당부분을 고양에서 보냈다.
이들 고양팔현에 대한 고양시민들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리고 문봉서원이 복원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고양팔현을 모시는 추향제는 지역 유림들 중심으로 고양시청 체육관이나 문예회관에서 올리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봉서원이라는 공인된 물리적 공간에 고양팔현을 제향한다면, 고양시민들은 여덟 선비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고 내면화할 가능성이 보다 커진다.
문봉서원복설추진위원회 이은만 회장은 문봉서원 복원의 당위성을 문화유산의 회복, 정신문화의 뿌리, 교육의 장으로 활용, 지역문화 홍보공간, 이웃 지자체와 문화연계 등 6가지로 들어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회장은 “문봉서원은 수백년 전에 설립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적인 기념물이다. 후손으로서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또한 고양에서 지역정신문화의 근간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계승할 필요가 있는데, 고양팔현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고, 시민들의 참여 확대를 통해 지역문화 홍보 공간이 될 수 있으며, 이웃 지자체와의 연계활동을 통해 지역문화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고양시의회는 문봉서원 복원에 힘을 실었다. ‘문봉서원 복원(복설)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한 채우석(중산·풍산·고봉) 의원은 “인간성과 도덕성을 회복시키는 정신문화적 기능을 하는 장으로서 서원의 기능을 현대적 관점에 접목시켜 고양시민의 정서함양에 큰 도움이 되는 문봉서원을 조속히 복원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6곳 시유지 모색했지만 예산문제로 답보 상태
문봉서원의 복원을 위해 실질적으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부지의 확보다. 문봉서원은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일산동구 문봉동 산73-2번지 일대에 있었던 사원이었다. 2001년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문봉서원 터에는 초석을 비롯한 일부 기단석렬이 확인됐다. 또한 조선시대 기와와 백자편 등이 출토되어 문봉서원의 일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양시는 문봉서원 터가 사유지이기 때문에 토지매입 비용 문제로 복원지로는 부적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시 문화유산관광과 담당자는 “문봉서원 터는 사유지가 된 지 오래됐고 토지주가 기단석렬과 출토유물을 바로 옆 땅에 옮겨놓은 다음 터 위에 건축물을 세웠다”면서 “문봉서원 복원에 필요한 부지가 최소한 1000평인데, 그 터에 짓는다면 토지매입비가 60억원 정도 소요가 되고 여기에 건축비 30~40억원 정도가 더 들어가 총 복원비용이 약 100억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고양시는 2018년 원래 터를 제외한 곳 중에서 복원을 위한 최적의 부지를 검토하는 용역을 전문기관에 맡겼다. 이 용역은 ‘문봉서원 복원을 위한 부지선정 및 타당성 용역’(이하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는데, 용역을 맡은 고려문화재연구원은 고양시 전역의 예산절감을 위해 시·공유지를 대상으로 검토했고, 최종적으로 6개 부지로 간추렸다. 하지만 중산동, 지영동, 구산동 성석동, 가좌동, 풍동 등의 6개 대상 부지 모두 이미 청소년수련원이나 고봉커뮤니티센터 설립부지로 예정되어 있거나 보존관리지역으로 도시계획 변경이 필요한 부지라는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용역 결과 6개 대상 부지 중에서 고봉동 부지가 적합도에서 그나마 가장 근접했다. 용역 보고서는 “해당부지는 고봉커뮤니티 센터 수립계획이 진행 중으로 접근성이나 확장성에서 일부 제한이 있지만, 인허가를 포함한 제도적인 조건에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문봉서원이 위치했던 문봉동과 인접하여 역사문화적인 조건을 갖춰 대상지로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문봉서원 복원에 대한 예산과 시민들의 동의다. 정확한 공사비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복원대상지의 선정, 복원 형태와 규모에 대한 기본계획과 설계가 선행되어야 정확한 예산을 산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역은 서원을 구성하기 위한 외삼문·강당·동재·서재·내삼문·사당·기타 부속건물 등 최소한의 배치와 시설을 기준으로 최소비용을 산출했는데, 결과는 부지비용을 제외한 건축비용이 22억2900만원으로 나왔다.
시 문화유산관광과 담당자는 “국도비가 한 푼도 보태지지 않은 복원비용 모두를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한다고 했을 때, 유림들이 아닌 일반시민들이 얼마나 동의를 표할까라는 물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양시는 기존건물과 융합하는 형태의 서원도 하나의 안으로 여기고 있다. 이 담당자는 “시는 현제까지 문봉서원 복원 대상지를 결정한 바는 없다”고 전제한 뒤 “복원의 가장 좋은 방법은 서원 단독 건물로 짓지 말고 기존건물과 융합하는 형태로 서원을 짓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3층 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고봉커뮤니티 센터에 한 층을 더 올려서 문봉서원으로 조성하고 서원의 기능을 부여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안은 주민동의와 도시계획변경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봉서원 복원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지역 유림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이은만 회장은 “ 서원으로서의 문화적 전통성과 고유성을 훼손하는 일로서 논할 가치가 없는 안이다. 문화유산을 회복하고 고양팔현의 정신세계를 계승하고 확산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천 설봉서원, 시장의 의지와 유림의 노력으로 복원
고양뿐만 아니라 여러 타지자체에서도 서원복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에서는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새롭게 태어났거나 태어날 서원이 전국에는 여러 개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천의 설봉서원(雪峯書院)이다. 설봉서원 역시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다가 이천시와 문중의 노력으로 2007년 4월 복원했다. 훼철된 지 136년 만이었다. 16개월이 걸린 복원공사에 약 18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는데, 이중 문중 기탁금 4억원 외에 이천시 예산 14억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중 기탁금은 설봉서원 배향인물인 서희, 이관의, 김안국, 최숙정의 후손인 이천 서씨, 광주 이씨, 의성 김씨, 양천 최씨에서 각각 1억원을 나눠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문중과 이천향교를 중심으로 결성된 설봉서원 복원건립추진위원회의 노력과 당시 이천시장의 의지가 보태져 설봉서원의 복원을 가능케 했다.
설봉서원 관계자는 “전임시장이었던 유승우 이천시장이 전통문화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복원사업이었다. 문중의 의견을 조율하고 시민들로부터 동의서를 받는 작업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현재 설봉서원은 선현제향 외에 현대에 맞는 인문학 강좌와 공직자 교육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원주의 칠봉서원(七峰書院)도 복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원주시는 2020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총 50억원을 들여 칠봉서원 복원 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문화재 발굴조사에 착수해 내년 5월 본격적인 복원 공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보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