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쏟아지던 몽골 초원의 밤… 지금도 그립습니다”
[책과 이웃] 『여행 중 인문학을 만나다』 출간한 이인숙 작가
몽골·바이칼 여행하며 만난 감동
인문적 사유와 성찰 함께 담아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도 곧 출간”
[고양신문] 대학에서 오랫동안 문학을 강의했고, 연극·무용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이인숙 작가가 신간 『여행 중 인문학을 만나다』(패러다임북 刊)를 출간했다. 3년 전 여름 몽골과 바이칼을 여행했던 경험을 다양한 인문적 지식과 함께 풀어낸 인문·여행에세이다. 1부에서는 초원의 나라 몽골, 2부에서는 유형의 땅 시베리아와 매혹의 바이칼 풍경을 다뤘다.
책은 문학과 역사, 예술을 넘나드는 작가의 폭넓은 독서편력을 짐작케 한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처음 마주친 자이슨 전승 기념탑 앞에서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통해 접한, 일제 관동군과 몽골·러시아 연합부대가 충돌한 할힌골 전투를 떠올린다. 또한 시베리아의 삼림을 바라보며 톨스토이의 『부활』과 이광수의 『유정』을, 스탈린 시절의 수용소가 있었던 바이칼호의 알혼 섬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는 솔제니친의 소설들을 연상하기도 한다.
역사에 대한 관심도 각별하다. 잊혀진 혁명가 이태준의 흔적을 만나며 몽골과 러시아를 무대로 펼쳐진 독립운동사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를 자책하기도 하고, 제국의 영웅 징기즈칸과 마지막 국왕 보그드 칸의 이야기를 통해 유목민족 국가인 몽골의 역사를 짚어내기도 한다.
이렇듯 책은 여타의 여행기와 달리, 한편 한편의 글 사이사이에 ‘여행 중에 만난 인문학’이라는 꼭지를 끼워 넣어 몽골의 샤머니즘, 라마불교, 러시아의 데카브리스트 혁명 등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줄만한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작가는 몽골과 바이칼을 여행하면서 수시로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호출하기도 한다. 잊혀진 혁명가의 안타까운 운명 앞에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우리의 부당한 기억법을 고민하고, 울란바토르 수하바타르 광장에서는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촛불 광장의 감동과 과제를 환기한다. 또한 바이칼 소수민족인 부리아트족 문화와 우리 문화, 바이칼 샤먼과 우리의 무속신앙 사이의 친연성을 차근차근 살피기도 한다.
인문적 성찰에 집중했다고 해서 여행자의 감흥이 퇴색되는 건 아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쌍무지개를 만났던 기쁨,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는 감동, 이국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감미로움, 여행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정겨운 에피소드, 바이칼 샤머니즘의 성지 알혼 섬에서의 경외심 등이 생생한 언어로 전달된다. 작가 자신과 동행한 일행이 찍은,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진들 역시 페이지마다 넉넉하게 곁들여져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더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책이 조금 늦게 나왔지만, 이인숙 작가는 오히려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두 번 여행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다. 작가는 “드넓은 몽골 초원의 캠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던 밤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고, 바이칼 알혼 섬에서는 하룻밤만 더 묵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다”면서 3년 전의 여정을 회고했다.
책은 코로나 시대를 감내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나들이길이 막혀버린 상황에서 이 책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갈증을 대리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국적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땅 몽골과 바이칼이 한층 친근한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5년째 화정에 거주하고 있는 이인숙 작가는 지역의 다양한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고양평화소리합창단 대표, 고양노동권익센터 감사, 행복한미래교육포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에는 고양 최인훈 기념도서관 건립 추진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인숙 작가는 이미 다음 책의 원고를 탈고했다. 작가는 “지난해 이탈리아 중부 움부리아 지방과 토스카나 지방의 여러 수도원을 기행하며 중세의 숨결을 느껴보았고,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 피렌체의 유적과 미술관을 순례하며 르네상스의 흔적을 더듬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쓴 글들은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가제)’라는 또 한 권의 인문학 여행서로 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