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 이런 걸로 상담실 가셔도 됩니다
-양성희의 마음이야기-
[고양신문] 생활반경이 좁아졌다. 직장도 학교도 간헐적으로 모인다. 최소한의 장보기 외에는 식당, 커피숍, 쇼핑몰 나들이도 뜸해진 지 오래다. 불황을 겪는 곳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병의원마저도 안가고 있다. 건강염려증이 지나칠 정도로 높은 우리에게 어쩌면 이번 계기로 과잉이 한풀 꺾일 수도 있겠다. 이 와중에도 정신과를 찾는 내방객은 늘었다고 한다. 안전이나 희망처럼 우리의 생존에 필수였던 것이 멀기만 한 한해였다. 사람을 기피하고 사람이 무섭고 사람이 미운 시대라면 정신이 병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몇 달째 잠을 못 자는 사람, 의욕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자꾸만 죽고 싶은 사람 등이 내원을 한다. 이들이 처방 받는 약은 수면제, 세로토닌 호르몬 처방 등이다. 소화가 안 되어 머리가 띵하면 소화제를 먹고, 알러지로 콧물이 나오면 알러지약을 먹듯이 호르몬 약들은 현대사회의 혜택이다. 먹어봐서 하는 말인데, 약을 먹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생활의 질이 높아지니 진작 먹을 걸 하게 된다. 간혹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처음엔 일주일 단위로 상태를 지켜보는데 약의 종류가 많아서 안 맞으면 바꾸면 된다. 의료진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의원으로 가면 된다. 큰 맘 먹고 갈 곳이 아니다. 내가 약을 먹어서 가족이 편안해지고 직장 동료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면 미룰 일이 아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싸워서 분란을 만들고 자신의 이미지를 망치며 불행하게 살 이유가 없다. 현대의학이 우리를 돕기 위해 탄생시킨 약이다.
다만 정신과에서 상담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약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게 의사의 업무이다. 슬픈 일이 겹쳐서 우울한 경우 정신과 의사가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내 문제를 같이 고민해주지는 않는다. TV나 유튜브에 나오는 자상한 정신과의사는 극소수이다. 상처받고 발길을 끊는 이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그럴 때 상담실을 찾으면 좋다. 누가 가면 좋을까? 언제 가면 좋을까?
하지만 일단 남성은 어린이와 청소년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가지 않는다. 남성의 특성상 혼자서 동굴에 들어가 고민하는 습성이 있으니 누군가와 대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역시 강한 수컷의 면면이다. 그러나 남성은 허점이 많다. 본인의 감정조차 잘 못 느끼다보니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는지조차 모른다. 50대 이상 남성이라면 자가 진단을 해보면 좋겠다. 밥 차려달라고 안 하는 게 사랑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갈 데 없어 아침마다 산에 오르며 그게 노후에 아내로부터 사랑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진단 체크리스트는 얼마든지 검색하면 나올뿐더러 정신과나 상담실에 한 번만 방문해봐도 알 수 있다. 온갖 삶의 스트레스를 참으며 이 악물고 살다 보면 나이 들수록 신경증 증세가 몸으로 나온다. 정형외과에 오는 환자의 30%는 정신과 환자라 한다. 피부과도 산부인과도 치과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에서 세월의 그림자가 비친다.
그런 이유로 가족과 대화가 끊기고, 증오하며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또 아픔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지랄총량의 법칙’이라며 자기가 타고난 지랄의 총량을 다 쏟아 내어야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동안 그로 인해 상처 받은 가족들과 동료, 친구들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그냥저냥 살 것인가. 앞으로의 인생은 수십 년이나 남아 있다.
여성은 폐경 전후로 힘들어서 내방을 하는 편이다. 너무 오래 아파서 백기 투항하는 마음으로 오기도 한다. 20대에 결혼하기 전에 상담을 받는다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데에 현금보다 든든한 도움이 될 것이다. 40대라도 좋다. 아직 몸이 버텨줄 수 있는 때가 낫다.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빚이 많은 사람이 탕감받지는 못한다. 큰 병을 낫게 해줄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몰랐던 내 안의 보석을 찾아 에너지를 찾게 해주어 빚이 있어도 희망찬 모습으로 살 수 있게 해준다. 병을 이길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스트레스는 화살처럼 하강곡선이다. 약자에게로 내려가고 내려간다. 비겁함을 입은 분노가 관공서 민원실로, 콜센터 여직원에게, 청소부에게, 자식에게, 부하 직원에게 간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중년의 품격을 지랄로 깎아먹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