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만에 만든 고양8현 위패… 문봉서원 복원 절실

문봉서원 복설 왜 필요한가

2021-02-03     이옥석 기자
150년만에 만든 고양8현 위패 모습

 

1871년 서원철폐령에 훼철된
고양 첫 사액서원 ‘문봉서원’
91년부터 서원·위패 없이
‘민망한’ 고양8현추향제 지내
안재성 회장, 작년 위패 제작
“고양 뿌리 찾는 노력 해야”

[고양신문] 일산동구 문봉동 빙석촌 입구에 문봉서원(文峰書院) 터가 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문봉서원에서 제사지냈던 여덟 분의 위패는 땅에 묻히고 건물은 모두 헐린 이래 150년이 흐른 지금까지 복설되지 못하고 빈 터만 남아 있는 것이다.

문봉서원은 이 지역 유생들이 주도해 조선조 숙종 임금 때인 1688년 건립했고, 21년 후인 1709년에 숙종으로부터 ‘문봉(文峰)’이라는 이름의 편액을 하사받았다. 모두 지역 유림들이 수차례 걸쳐 사액을 요청해 이뤄낸 성과였다. 고양시(군) 최초의 사액서원인 문봉서원은 이때부터 국가로부터 교육기관의 권위를 인정받게 되어 책과 전답과 노비를 받아 운영되었을 것이다. 

사액서원이 되면 많은 특혜를 누리게 된다. 임금이 직접 쓴 현판과 노비를 하사받고, 서원 소유 토지 중 약 9000평 정도의 토지가 면세혜택을 받는다. 사액서원의 정원은 군역을 피하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약 20인(비 사액서원은 15인)으로 했고, 노비의 수는 사액 시 주는 노비를 포함해 7명까지 둘 수 있었다고 한다. 

1709년 문봉서원 사액 시 숙종 임금은 정사신(鄭思愼)을 보내 치제문(致祭文)을 내려주고 제사를 봉행케 했다. 이 치제문에는 고양을 덕성이 모인 곳이라고 하며 여섯 분의 덕을 칭송하고 각각에 대한 전기를 소개한 후 그들에 대한 사모의 마음으로 사우(서원)가 건립되었으며 이에 사액을 내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봉서원 설립 때 6분 배향
문봉서원이 처음 설립되었을 때는 행촌 민순, 추강 남효온, 사재 김정국, 복재 기준, 추만 정지운, 모당 홍이상 등 여섯 분의 선현을 모셨고 10년 후인 1719년(숙종 45)에 지역 유림들이 석탄 이신의와 만회 이유겸을 추향할 것을 요청해 다음해 2월에 두 분의 위판을 봉안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문봉서원은 고양8현을 제향하는 고양시 최초의 사액서원의 위용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교육기관으로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 유림이 설립했고 내적인 인격도야를 추구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과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이상을 품은 선비를 키우는 산실이었다. 또한 중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존경할 만한 충신이나 명현을 제사지내고 향촌사회의 질서를 교화하는 자치기구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향촌사회 교화 역할했던 서원
문봉서원에 관한 기록을 더 찾아봐야겠지만 문봉서원 역시 훼철되기 전까지 고양군에서 지역 유림들의 교육과 선현을 제사하며 향촌사회를 교화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원철폐령이 내려진 이래 150여 년이 지난 2019년 7월, 전국 9곳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서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성균관이나 문화재청에서는 유교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 문봉서원의 복설에 대한 필요성도 점점 부각되고 있다.  

2001년 단국대 매장문화연구소가 발표한 ‘문봉서원지 기본조사용역 보고서’에 나타난 문봉서원을 복원했을 경우의 종단면도.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록 훼철된 문봉서원은 다시 건립되지 못하고 있고, 1991년 고양시 유림들이 모여 다시 고양팔현을 추모하는 추향제를 지내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제대로 된 공간이 마련되지 못해 고양문예회관에서 추향제를 봉행해왔다. 게다가 아직까지 제를 지내기 위해 꼭 필요한 위패도 없어 매번 한지에 여덟 분의 이름을 써서 제를 지내야했고, 지난해에는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고양문화원 야외공연장에서 제를 봉행하는 민망한 상황까지 생겼다. 

안재성 회장 지난해 위패 제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은 ‘철원매주(撤院埋主)’ 즉, 서원은 허물고 사당에 모신 신주(神主)를 묻는 것이다. 아마도 빙석촌 문봉서원 터 어딘가에는 여덟 분의 신주를 담은 항아리가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수년 동안 고양팔현 추향제를 봉행해온 안재성 고양시 향토문화진흥원장은 지난해에 여덟 분의 위패를 직접 제작했다<사진>. 이 위패가 있어야 할 곳은 문봉서원 내 사당이다. 그러나 사당이 없으니 위패를 둘 곳이 없다. 

고양팔현 전기(傳記) 제작도 필요
안재성 원장은 “추향제를 지낼 때마다 문봉서원 복설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제대로 된 위패도 없이 고양팔현 추향제를 지내는 것이 죄송스러워 우선 위패를 마련했지만 위패를 둘 곳이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아쉽다”라며 “속히 문봉서원이 복설되어야 하고, 귀감이 되는 삶을 사셨던 고양팔현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그 분들의 전기(傳記)도 제작되어서 인구 108만의 거대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부평초가 아니라 뿌리 깊은 나무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