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 통신] 감시 사회
[고양신문] 내가 움직이는 동선에 맞춰 ‘안전 안내 문자’가 울립니다. 메시지가 많아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꺼내며 수신거부를 해버릴까 노려보다가도 양심적인 시민(?)으로서 방역당국 시책에 협조하기 위해 참기로 합니다.
일 때문에 2월 15일에 동대문구 신설동에 들렀습니다. 노원구청, 도봉구청, 중랑구청, 동대문구청, 서대문구청, 종로구청, 은평구청 등에서 문자가 계속 들어옵니다. 내용은 대개 ‘확진자 00명 발생, 역학 조사 진행 중’이라고 뜹니다. 일을 마치고 고양시에 왔더니 경기도청, 고양시청, 파주시청에서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서울 기초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확진자 00명 발생, 마스크 착용, 손씻기 등 방역수칙 준수바랍니다.’
고양시 주엽동 무도장과 콜라텍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2월 16일에는 여러 개 문자가 드르륵~ 드르륵~ 제 몸을 흔들었습니다. 휴대전화 위치 서비스를 이용한 일종의 안전 안내 서비스일 텐데, 내가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감시 네트워크에 갇힌 건 아닌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방문지와 동선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 방역활동에 손실을 초래한 사람에게는 고발 등 조처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다수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감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식당과 카페에 들르면 QR코드를 찍거나 전화를 해서 개인 방문 상황을 자동으로 밝힙니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수기로 개인 신상을 작성해 알리고 있지요.
온라인 접속을 할 때 우리네 온라인 활동은 모두 기록으로 남습니다. 온라인 구매 활동,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들 성향을 분석해 광고 데이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클릭하는 것, 구매하는 것은 모두 분석 대상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자발적으로 SNS를 통해 사적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합니다.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모두 기록으로 남습니다. 도시와 빌딩에 촘촘하게 깔린 CCTV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차량에 부착한 블랙박스 카메라, 공항과 항만 등에 설치한 감시 카메라 등 우리는 옴짝달싹할 수도 없게 촘촘한 감시 네트워크에 갇혀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안전과 편리를 매개로 나도 모르는 사이 감시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전화통화는 아주 오래된 감시 기제로 작동할 것입니다.
항공권 티케팅을 할 때, 공항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거나 공적 보조를 신청할 때면 개인 정보를 모두 공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안전과 편리를 이유로 감시 사회를 아무 통제도 없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익명성이 소멸’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감시에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건 아닐까 궁금합니다. 이렇듯 감시 사회는 빅브라더처럼 체크하고 추적하고 분류하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감시’라는 개념을 통해 “감시가 현대세계의 기본 특성”임을 강조하고 고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서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점검과 감시, 시험을 받고, 값이 매겨지고, 판정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숨겨야만 하는 것’을 가진 사람만 감시를 두려워한다고 보아야 할까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성된 현대 세계는 감시 사회를 기반으로 합니다. 감시 사회를 어느 선까지 인식하고 살피고 대응해야 할까요? 두려우면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안전을 이유로 호수공원 등에 설치한 CCTV를 보며 떠오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