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섬’ 이름표를 찾아주자

-높빛시론-

2021-02-18     정수남 소설가. 일산문학학교 대표

 

정수남 소설가. 일산문학학교 대표

[고양신문] 얼마 전 풍동 애니골에 있는 옛 ‘숲속의 섬’을 찾은 적이 있다. 리모델링한 ‘숲속의 섬’은 말끔히 단장이 되어 있었다. 차단기가 설치된 주차장과 여름이면 담장이덩굴이 무성했던 붉은 벽돌 건물, 출입구 앞 철도침목과 노천 테이블도 낯익은 느낌이었다. 한 가지 낯선 것은 입구 기둥에 붙어 있는 간판이었다. ‘청춘이 있는 곳, 청춘을 잇는 곳’이라는 부제까지 달고 우뚝 서 있는 그것엔 ‘백마 화사랑’만 있을 뿐, 정작 있어야 할 ‘숲속의 섬’이란 이름은 없었다.
 
‘숲속의 섬’ 역사는 교외선 열차가 서울 외곽을 돌던 80년대부터 시작된다. 당시 ‘화사랑’과 함께 ‘숲속의 섬’은 젊은이들이 모여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정치상황과 사회를 논하고, 예술과 사랑을 꽃피우던 곳 가운데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었다. 친남매가 앞뒤에서 운영하던 두 사업장은 처음엔 백마역 부근에 있었으나 90년대 중반 도시개발에 밀려 애니골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 뒤 오빠가 운영하던 ‘화사랑’은 몇 년 전 주택개발업체에 부지를 매각한 다음 아주 자취를 감췄으며, ‘숲속의 섬’만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화사랑’과 ‘숲속의 섬’은 그 운영 방식과 찾는 사람들의 목적, 분위기가 다른 별개의 사업장이었다. 하나는 통기타를 동반한 음주와 가무가 있던 주점이었고, 또 하나는 문학과 음악 등 예술적 취향을 가진 부류들이 주로 찾던 찻집이었다. 이전한 뒤에도 ‘숲속의 섬’에서는 시낭송을 비롯한 각종 문화 행사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와 같은 곳을 작년 1월 고양시가 ‘상징건축물’로 지정하고, 독창적 교육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목적으로 매입, 리모델링하였다는 것은 퍽이나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문제점도 없지 않다. 먼저 ‘숲속의 섬’ 건물에 이미 자취를 감춘 ‘화사랑’ 이름표를 붙였다는 것은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그 발상부터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자유의 여신상을 갖다놓는다고 해서 뉴욕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보다는 ‘숲속의 섬’이 지녔던 본연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오히려 목적에 더 부합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는 지금이라도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 고양시가 상징건축물로 지정한 건물인 ‘숲속의 섬’에는 ‘백마 화사랑’이라는 간판이 내걸려 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지금 행하고 있는 운영방식이다. 현재 ‘숲속의 섬’은 시에서 고용한 종업원들이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까지 종사하는 직접경영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판매하는 메뉴도 옛 ‘숲속의 섬’이 내놓았던 우리 고유의 차나 경양식은 차림표에서 찾아볼 수 없고 커피 위주의 단일품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목격하는 카페와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으로, 그러다보니까 손님들도 식사 후 잠시 들러 커피 한잔 놓고 한담하는 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매입 목적에 부합한 교육장으로서의 소모임은 전무한 상태이며, 문학을 비롯한 예술 행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는 코로나19로 비롯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경영방식이란 자칫 타성에 젖을 수가 있으며, 책임감이 떨어져 목적의식을 잃을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고양시가 겨우 카페나 운영하기 위해 30억 가까운 예산을 들여서 건물을 매입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직영의 단점을 개선할 보완책으로 독립성을 지닌 운영위원회를 구성, 그들을 통해 나오는 다양한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는 방법이다. 이는 타성에 젖을 수 있는 경영을 미연에 방지할 뿐만 아니라 목적을 올곧게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 하나는 자격 유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가려 수탁자를 선임, 위탁하고, 시는 감독 역할을 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때에는 자격심의 과정에서 문화 예술 사업에 대한 기획력과 추진력, 지역의 인지도와 사업체 운영 능력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다소 늦은 느낌은 있지만 예술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숲속의 섬’이 이제라도 문을 열었다는 것은 퍽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숲속의 섬’이 하루 속히 ‘백마 화사랑’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될 때 ‘숲속의 섬’은 비로소 명실공히 이 지역의 자랑이 될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진정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