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정성껏 사는 길 

건강도시 심층기획❷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2021-02-28     이영아 발행인

건강도시 2번째 연재를 시작하며
고양신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고양신문 발행인 이영아입니다. 지면을 통해 글로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게으르고 부족해서 마음만 앞섭니다. 종이신문 시장이 위축될수록 독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한없이 깊어지고, 어떤 가치와 어떤 유익한 기사로 보답드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고양신문 독자의 나이는 50대 이상이 대부분이고 70대 이상도 적지 않습니다. 가끔 구독중지 신청이 들어오면 조심스럽게 사유를 여쭈어보는데 부모님이 구독하셨는데 돌아가셨다거나, 눈이 어두워져 더 이상 신문을 볼 수 없다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구독자의 나이듦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몸이 허락할 때까지 고양신문을 구독해주신 데 대한 고마움에 마음이 울컥합니다. 그리고 독자가 부여해준 이 귀한 가치에 우리가 어떻게 보답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게 됩니다.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이어진 건강도시 심층기획도 이런 비슷한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독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들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한가지 질문에서 시작한 취재는 24회의 보도로 이어졌습니다. 의료, 음식, 운동, 숲, 커뮤니티 등 5개의 주제로 진행된 기획보도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참여와 자문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넷과 고양신문 공동 진행,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 참여
고양신문은 올해에도 건강도시 심층기획을 이어갑니다. 올해 기획은 고양신문과 건강넷(대표 임영근)이 함께 진행합니다. 건강넷은 건강한 노화를 공부하고 준비하는 커뮤니티입니다. 의사와 한의사, 약사, 교사, 인문학자, 그리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건강과 삶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눕니다. 건강넷은 공부를 통해 건강에 대한 자주성을 실현하며, 건강한 노화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인 ‘평생 배움’의 길을 함께 걷고자 하는 새로운 마을공동체입니다. 강연과 세미나, 연구프로젝트, 책모임, 운동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혼자서는 지속시키기 어려운 일들을 재밌게 함께 풀어가고 있습니다. 고양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건강한 삶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나 기관, 모임도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고양신문 역시 건강넷의 한 파트너입니다. 고양신문과 건강넷이 함께 준비하는 건강도시 심층기획은 고양신문 독자와 고양시민들에게 한결 더 다양하고 재밌는 지면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심층기획 시리즈 외에도 건강과 삶에 도움이 되는 책 소개, 건강정보, 나의 숲 이야기 등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될 예정입니다. 나이 들면서 더 필요한 신문,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마을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며 다음 주부터 건강도시 특별지면을 새롭게 만듭니다. 기획 연재에 앞서 어떤 가치와 골자로 건강 노화, 건강 도시를 그려나갈지 간략한 개요를 공유합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에 이어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집니다.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입니다. 첫 질문은 의료적 정보와 지식, 다양한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답을 찾아보았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색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분들을 직접 만나며 삶을 통해 배우고, 해답을 찾아갑니다. 건강한 노화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전문가도 만나봅니다. 심층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될 기획시리즈의 탐구 대상은 노년을 성실하게 맞이하는 분들과 성실한 노년에 도움을 주는 연구자들입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의 골자는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다는 피동적인 노화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노년을 스스로 만들어가겠다는 성실한 노화일 수 있습니다. 더 오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넘어, 한 생명체로서 내게 주어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며, 마지막 순간까지 정성껏 살자는 것입니다. 내 몸의 세포와 미생물들이 수많은 삶과 죽음을 번복하며 지탱해주는 존귀한 나의 생명을 다른 개념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코로나 여파, 노년층 고립 우울로 건강악화 
코로나19의 여파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70대 이상의 노년층입니다. 고양시 코로나 확진자 2144명 중 70대 이상은 302명으로 14%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70대 이상 사망자는 85.5%에 달합니다. 고양시 확진자 중 사망자는 55명인데 70대 이상이 47명입니다. 70대 이상 치사율은 16%, 80대 이상 치사율은 26%에 이릅니다. 코로나는 감염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로 인한 고독과 우울까지 한꺼번에 몰고 왔습니다. 노년층의 동네 놀이터인 노인정과 노인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일어난 피해는 상상 이상입니다. 아직 정확한 통계수치를 제시할 수 없지만,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 보다 그 피해가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는 감염된 경우에 한 해 피해가 발생했고, 코로나로 인한 격리는 노년층 모두에게 피해를 불러왔습니다. 양적인 피해의 규모에서 일단 비교가 어렵습니다. 

노년층을 위한 건강정책은 이제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사진은 덕양노인복지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어르신들.

올해 95세 되신 구산동 윤병렬 어르신은 지난해 일산노인복지관이 문을 닫은 후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습니다. 초롱초롱했던 기억력과 언어능력은 절반으로 뚝 떨어져 치매 상태로 빠져들었고, 거동도 많이 불편해졌습니다. 70대부터 20년이 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복지관에 출근하면서 재밌게 보냈는데, 그 유일한 재미가 뚝 멈췄기 때문입니다. 

김정훈 덕양노인복지관 관장은 “지난해 1월부터 복지관 이용이 제한되면서 거의 매일 복지관으로 출근했던 분들의 건강이 가장 안 좋아진 것 같다”며 “복지관에 다니실 때는 나이를 모를 정도도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분들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모습을 볼 때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습니다. 김 관장은 “어르신들을 드문드문 뵐 때 가장 달라진 것은 눈동자”라며 “젊은이 못지않았던 총기가 사라진 흐린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어르신들께 사회적 관계는 곧 건강을 위한 최선의 안전망”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답니다. 김 관장은 “복지관이란 공간과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년의 고독과 우울, 남들에게 편하게 내놓지 못했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이웃”이라며 “코로나 같은 재난의 시기에도 가동될 수 있는 야외프로그램이나 참여 활동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브리검영대학교 연구팀은 3만9000명을 대상으로 인간관계와 수명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혼자 고독하게 지냈던 사람들보다 사망의 위험이 절반 가까이 줄었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과거에는 전염병이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었다면 지금은 사회적 고립이 더 큰 위협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차별 없이 건강하게 
고양시에 거주하는 100세 이상 시민은 342명(2021년 1월 말 기준)입니다. 90세 이상은 4894명, 80세 이상은 3만3285명입니다. 10년 전인 2011년 통계를 보면 100세 이상은 136명, 90세 이상은 1628명, 80세 이상은 1만3391명이었습니다. 2011년 인구대비 80세 이상 시민은 1.6%였는데, 2021년 인구대비 80세 이상 시민은 3.6%로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면, 80세 이상 시민은 이제 전체 시민의 10%에 이르게 됩니다. 노년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와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는 고양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입니다. 노년의 사회적 관계는 건강과 직결되고, 막대한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는 안전망이기도 합니다. 질병을 예방하는 비용에 투자하는 것이 질병을 치료하는 비용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습니다.

80세 이상 시민이 급속히 늘고 있다(위 도표)

일부에서는 노년인구의 증가 자체를 부담으로 해석하고 경계하기도 하지만, 이는 노년을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시기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삶에 대한 다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90을 넘어 100세 이상이 되어도 스스로의 삶을 독립적으로 꾸리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사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고, 여생을 자원봉사와 일에 매진하는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감당합니다. 90세를 넘기면서도 건강하게 사는 분들의 의료비용은 현저히 적다고 합니다. 건강하게 나이 들수록 질병을 겪는 기간이 짧다는 겁니다. 비용의 문제를 넘어 건강한 노화는 모든 인간의 소원입니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고양시가 시민의 소원을 차별 없이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화, 신체적·사회적으로 거룩 ‘거룩한 노화’ 
올해 102세가 되신 김형석 교수는 나이 들면 정신이 몸을 이끌고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나이 들수록 공부와 일, 취미생활을 열심히 해야 건강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올해 104세가 된 여성운동가 김옥라 여사는 아직도 왕성한 봉사활동을 하며 틈만 나면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유명인들의 삶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100세가 넘어도 땅을 일구며 농사짓는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90세가 넘어서도 매일 복지관에 다니며 촘촘하게 하루를 엮어가는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노년을 정성껏, 성실하게 맞이하는 어르신들의 삶에서는 거창하지 않은, 담백한 깨달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노화학자 박상철 교수는 100세 인들이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거룩한 노화’라는 개념을 새롭게 내놓았습니다. 노화에 대한 다양한 개념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 셈입니다. 세계보건기구(WTO)를 중심으로 건강하게 늙기를 강조하는 건강 노화, 나이 들어도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하는 활동적 노화, 신체건강과 사회활동, 경제자립도 포함하는 성공적 노화의 개념이 등장했고, 첨단의학과 기술을 활용한 안티에이징, 스마트 에이징의 개념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박상철 교수는 기존의 노화 개념은 외형적인 결과와 성과를 중시하는 생각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나이 들면서 점점 위축되고 여유가 없어져 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좌절감을 주고 소외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박상철 교수는 대안으로 거룩한 노화를 주장합니다. 거룩한 노화는 노화 현상 자체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늙음 자체가 거룩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 선택하여 책임지는 삶, 거룩한 생명을 거룩한 나이듦으로 지켜가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박상철 교수는 암세포를 연구하던 중 젊은 세포보다 늙은 세포의 적응력과 생존력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얻었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노화가 단순히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 대한 저항의 과정으로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노화는 세포가 증식을 포기하는 대신 생존을 선택한 거룩한 생명 유지의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박상철 교수는 실험실의 연구에 이어 100세 인의 삶을 직접 연구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성실하게 맞이하는 ‘거룩한 노화’의 개념을 완성합니다. 

개념은 이론이자 철학과 문화를 반영하는 공통의 언어입니다.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교감할 수 있는 가치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노화에 대한 각각의 깨달음이 사회적 개념으로 잘 정리된다면 나와 우리,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건강넷과 함께 하는 건강도시 심층 기획이 ‘한 생명체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정성껏 사는 삶’을 위해 한 줄의 개념을 보탤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이영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