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소품 만들어 나눠주는 ‘왕언니’ 96세 장광복 어르신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❸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2021-03-22     임영근 건강백세네트워크 대표

 

베풀고, 대가 바라지 말고, 부지런히 운동
저로서는 건강장수 비결이 이것밖에 없어요


어르신 인터뷰
바느질 소품 만들어 나눠주는 ‘왕언니’ 
96세 장광복 어르신 

4년 전 교통사고로 5시간 혼수상태
깨어나 첫 마디 “차주 다치지 않게” 
위가 약해서 평생 소식, 인절미 즐겨 
잠은 하루 3시간 자고 바느질에 집중
아침 1시간 맨몸운동 ‘30년 동안 매일’  

 

흐트러짐 없는 단아한 모습의 장광복 어르신. 96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봄의 길목에 들어선 3월 6일, 북한산 자락의 동인재에 장광복 어르신이 인터뷰를 하러 오셨다. 원흥 12단지 노인정의 조용선 부회장께서 모시고 오셨다. 흰색 검은색이 체스무늬를 이룬 스웨터. 비슷한 색깔이 어울린 머플러. 여기에다 보울러 스타일의 짙은 회색의 모직 모자까지. 96세라는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화사한 표정에 옷매무새가 단아하다. “자식들 학번까지 다 기억할” 정도의 영민함으로 조근조근 말씀을 이어나갔다. 장광복 어르신은 요즘에도 바느질이며 매듭을 만드는 데 폭 빠져있다. 노인정 분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소품들을 아낌없이 나누기 위해서다.


 바느질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한 60년 되었죠. 60년 동안 봉사를 했구요. 저는 물질(재산)도 없고 1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에요. 노령연금 타면 저 개인을 위해 쓰는 것은 없고 약한 사람이랄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소품을 하나씩 만들어서 줘요. 여자들은 이런 걸 다 좋아 하니까. 60년 동안을 그렇게 해왔어요.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남한테 주는 거 좋아 하죠. 젊을 때부터 뭐 솜씨가 있으니까 여자들이 좋아하는 소품, 그런 거라도 만들어야겠다 하는 마음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했죠. 내가 늙어 가면서 모든 것이 좋기야 하겠어요? 떠날 때라도 어, 그 사람은 괜찮았어. 좋은 마음을 갖고 살았어. 이런 소리를 들어야지. 그 인간은 못돼 먹었어 하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했죠.

 주로 어떤 것 만드세요.
복 주머니 같은 거 쿠션이랄지 식탁보 같은 거. 집에서 다 필요한 이런 거 만들어 주죠. 

 젊을 적부터 이런 데 관심이 많았나 보네요. 
옛날부터 주변에서 만들어서 남 주지 말고 가게를 차려라,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인사동에서 히트 칠겁니다, 그런 얘기도 들었고. 저희 집 어른(남편)이 공무원이라 장사를 할 수는 없고. 그리고 우리 때는 집에서 잘 나가지도 못 했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것인데, 처음에는 이것만 하고 말지, 이것만 하고 말지 하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재봉)틀 3개가 고장 날 지경이었으니 바느질을 얼마나 많이 했겠어요. 이것은 아무도 모르고 나 혼자만 아는 일이에요. 이렇게 만들어 주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겠지 그런 마음이지, 뭘 바라고 그런 건 절대로 없어요. 그건 봉사가 아니지요. 서울 있을 때도 소문이 났지만, 경기도에서도 성당 가는 데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해드렸어요. 이번에 노인정에 도착해서도 임원들한테 전부 만들어 드렸지요. 잘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지만.

장광복 어르신은 개성에서 태어나, 공무원이신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옮겨가 자랐고 평양의 명문학교인 서문여고를 나왔다. 서울로 와서 결혼을 했다. 평생 공직 생활을 한 남편과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오랫동안 바느질이나 뜨개질로 주변에 봉사해왔다. 

 피부가 지금도 참 좋으시고, 헤어스타일이랑 하얀 스웨터 회색 머플러까지 깔맞춤이에요. 패션 감각도 뛰어나 보이시는데 원래 패션 감각이 있었나요.
패션 감각이 좀 있었죠(웃음). 요즘도 옷을 입을 때면 맞춰서 입거든요. 뭘 많이 가져서 그런 건 아니에요. 서울 명동에 마담 포라라고 있어요. 거기서 예전에 품평회를 열기도 했는데, 제가 참여하기도 했지요. 제가 점수를 잘 매기면 그 물건이 잘 나가고 그랬어요. 저는 안에서야 아무거나 입지만 가까운데 나갈 때도 꼭 갈아입고 나가야 해요. 모든 일은 부지런해야 되는 거잖아요, 무슨 사치를 하는 게 아니고요. 마담 포라 회장이 저를 인정해줘서 거기서 옷을 많이 받았어요.

 바느질 말고도 집안일을 잘 하셨나 보네요.
저는 타고나기가 노래만 못 하고 다 잘했어요.(웃음) 음식은 말할 거 없고요. 요리 선생까지 한 사람이니까. 그때는 텔레비전이 없었어요. 서울 남산에 KBS 방송국 있었잖아요. 라디오 방송으로 요리 가르쳤죠. 워낙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옛날에는 김장을 많이 했잖아요, 잎사귀 있는 것. 돼지고기 다진 것을 배추김치 잎사귀로 싸서 찌는 요리 이런 게 생각나네요. 만들기 쉽고 맛도 좋고 애들도 잘 먹는 요리였지요.

직접 만든 조각보를 들고 있는 어르신. 아직도 밤늦도록 재봉틀로 소품을 만든다.

어려움을 겪으면 본마음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장광복 어르신은 4년 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남대문시장에 물건 떼러 갔다가 당한 사고였다. 어깨 물렁뼈가 눌러 앉아 “죄수복이 입히듯이” 깁스를 해야 하는 큰 사고였다. 혼수상태에서 5시간 만에 깨어나서 한 첫 마디가 “차주 다치지 않게 해 주세요”였다고 한다. 자기가 죽게 생겼는데 차주 걱정이냐고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위자료도 안 받고 치료비만 받아도 만족이라고 어르신은 말씀하신다.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하셨는데 지금 많이 아프지는 않으세요.
아프기야 아프지요. 제가 처음 일산에 왔을 때 노인정에 다녀야 되잖아요. 그래서 노인정에 갔더니 이리 눕고 저리 눕고 다들 누워 있더라고요. 병원에 다녀왔다면서. 그런데 나이가 다 육칠십 대에요. 그런 모습 보니까 아 노인정은 내가 다닐 곳이 못 되는구나 싶었어요. 저는 교통사고 당하고 나서도 물리치료 받으러 오라고 했지만, 한 번도 안 갔어요. 물리치료 받는 것도 습관성이에요. 아이, 아직도 젊은데 하면서 받지 않았죠. 

 지금 드시는 약은 있나요.
혈압약 하나밖에 없어요. 영양제도 안 먹어봤고 보약도 안 먹어봤어요.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시나요.
다섯 시면 일어나요. 일 초도 틀리지 않아요. 그렇게 일어나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해요. 나만의 운동 같은 것이죠. 돈 들여서 좋은 기계 같은 거 쓰지 않고 맨몸으로 하는 운동이지요. 그렇게 해서 건강을 유지하지 않나 싶고요. 그러고 여섯 시면 기도를 해요. 성당 다니니까. 내가 도와주는 분들 기도하지, 내 기도하는 거 아니요. 내가 원하는 건 잠자다 죽는 것, 애들한테 피해 없이 잠자다 죽는 것. 주님께서 꼭 좀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웃음). 
그러고 아침에 애 출근시켜야 되니까 아침에 밥 안 먹고 매일 같이 다섯 가지 과일과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줘요. 이렇게 아침 먹고, 청소하고는 이제 바느질 시작이야. 점심은 일체 안 먹으니까. 저는 아침 인절미 먹고 있거든요. 그걸로 위장병 고쳤습니다. 마흔 살쯤에 위가 안 좋아 세브란스 병원에 갔죠. 임신 중이라 수술은 못 하고 그때 낳은 딸이 지금 쉰다섯 살 먹었어. 
이렇게 병원에서 권해서 인절미를 먹게 되었어요. 인절미는 위벽을 감싸면서 나간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요새도 안 아픈 건 아니지만 그때는 배가 아파서 살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병원 약 하나도 안 먹고 인절미 먹고 고쳤으니까 고마운 일이죠.

 아침에 하는 운동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손을 자주 움직이지 않으면 손에 쥐가 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손에 힘이 없어서 칼도 쥘 수가 없게 된다니까. 다리도 그렇고. 운동한 지도 한 삼십 년 되었어요. 매일 했어. 하루도 안 거르고. 비가 와도 하고 아파도 하고. 저녁에는 걷고.

 식사는 젊으실 때부터 적게 드셨나요.
예. 원래부터 조금씩밖에 못 먹었죠, 소식. 소식하면 오래 산다더니 그래서 오래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같이 먹고도 사는 거 보면 참 기적이에요. 영양소가 완전히 부족하죠. 혈당이 80이 돼야 정상인데 저는 60도 안 된데요.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 고기는 잘 안 먹어요.

 어르신의 건강 비결은.
나는 눕는 법이 없어. 젊은 사람이고 늙은 사람이고 눕는 사람이 제일 싫어. 낮잠을 한 번도 자보질 않았어. 어지간하면 몸을 움직여라. 노력을 하라. 가만히 있지 말라. 가급적이면 병원에 가지 말라. 내가 아프다 어쩌다 하다보면 끝이 없더라고, 내가 아파보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착한 마음씨를 갖고 운동도 부지런히 하고 남들에게 베풀어야 되고 이것만 되면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지 않느냐, 저로서는 비결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을 텐데 그때 어떤 마음으로 넘기셨나요.
어르신(남편)이 워낙 청렴하신 분이라 같이 모시고 살 때도 힘이 들었고, 육십 대에 혼자되면서도 참 힘든 일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사람이라면 어디든 나갈 길이 있겠지 하는 마음. 고민한다고 될 일도 아닌데,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자 이렇게 해왔지요. 조금 바보 같기는 하죠. 내가 나쁜 짓 안 했으니까 어쨌든 살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도 들고. 내가 누구에게 잘 해줬는데 대가를 바라지 않았어. 그래서 야속하다 섭섭하다 그런 마음이 절대 없었어. 용서와 이해, 참는 것. 이 세 가지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거요. 좀 화나도 참고, 그 사람이 나한테 잘못해도 용서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그걸 가지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 보람 있다 느끼는 일이 있나요.
내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애써 왔는데, 그걸 전부 갚아 주는 사람이 세 사람이 있더라고요. 내가 해준 거 몇천 배를 이 세 사람이 갚아 준거죠. 물질 면에서가 아니라 마음 면에서.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너무 고맙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지요. 내가 어떤 사람한테 잘했다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한테 잘해 주고 이렇게 이어지더라고요.
셋 중에 아흔두 살 먹은 동생도 있어요. 내가 얼마 전에 호박죽을 쒀서 가져갔더니, 고구마를 대접하더라고. 내가 고구마가 맛있다고 그러니까 그걸 또 한 짐을 싸서 우리 집에 가져다주는 거야. 아흔두 살 먹은 할머니가 택시도 안 타고 고구마 한 박스를 핸드 카트로 지고 왔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일은 그저 건강하면 봉사해야겠다는 것. 바느질 말고 뭘 또 해야 될까? 수도 놓고 매듭도 할까? 요즘도 그런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장광복 어르신은 노인정에서 왕언니로 통한다.
“나이가 가장 많으니까 할아버지도 왕언니, 젊은 사람도 왕언니, 노인들도 왕언니. 다 왕언니라고 불러요. 회장님도 왕언니라고 부르고. 처음엔 듣기 싫더니만 듣다 보니 괜찮더라고요.” 
단지 나이가 많아서 왕언니로 불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큰손으로 늘 주변에 베푸는 마음. 그 마음이 있는 한 장광복 어르신은 우리에게 언제나 왕언니로 기억될 것이다.

임영근 건강백세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