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구심의 ‘건강에 대하여’ - 산책과 건강

2021-04-05     고양신문

[고양신문] 매일 아침 야트막한 산길을 1시간가량 산책합니다. 어느새 아침 산책은 제 삶의 중요한 리츄얼(ritual)로 자리를 잡아가네요. 매일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행하는 어떠한 일은 생각지 못하는 많은 선물을 제게 안겨주곤 합니다. 

산책(散策)은 운동으로서 ‘걷기’만의 의미 이상의 선물을 제게 선사해줍니다. 한 시간의 걷기는 매일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즐거움의 시간입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매일 새로운 모습을 보고 느끼다 보면 매일 새로운 여행지를 걷는 신선함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환자들은 늘 아프다가도 여행만 떠나면 아픈 것이 싹 낫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즐거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새로움과 낯섦을 경험할 때 느끼는 감동 때문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산책은 ‘일상의 낯섦’으로 매일 떠나는 여행 같습니다.

흔히 삼상사(三上思)라고 해서 침상(枕上), 측상(廁上), 마상(馬上)이라고 합니다. 잠자려고 누웠을 때, 용변 보느라 앉아있을 때, 말이나 수레를 타고 갈 때, 무념의 상태가 되어 좋은 생각이 잘 솟아오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삼상사 위에 하나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보상(步上)’입니다. 산책하며 걷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좋은 생각이 잘 떠오르는 경험을 늘 하게 됩니다. 

지혜자의 말에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라고 하죠. 산책하는 보상(步上)중에 생각과 감정의 먼지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좋은 생각과 해법들이 말 그대로 ‘떠오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고요함 속에 수많은 새소리를 듣게 됩니다. 새소리를 듣고 걷다 보면 자연스레 명상의 상태로 빠져드는 느낌이 듭니다. 새는 양기(陽氣)가 성한 동물이라서 한겨울 추위에도 깃털 하나로 버텨낼 만큼 양(陽)의 기운이 발달해있습니다. 그 새소리는 양기가 충만하여 듣는 이들로 하여금 머리가 맑아지게 만드는 효과를 줍니다. 참새, 까치, 직박구리, 딱따구리 등의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걷는 산책길은 그 자체로 머리의 화기(火氣)를 풀어주는 치료 효과를 내주는 것 같습니다. 복잡해진 머리와 답답해진 가슴은 새소리를 듣고 걷노라면 어느새 편안하고 맑아져 옵니다. 요즘같이 화병(火病),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는 시기에 새소리를 듣고 걸어가는 산책은 정말 탁월한 치료의 방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산길 산책을 하다 보면 수많은 꽃과 풀과 나무들을 만나게 됩니다. 요즘 같은 봄의 초입에는 산수유꽃, 생강나무꽃이 노랗게 피어나고, 진달래들이 연분홍 잎사귀를 펼쳐내기 시작합니다. 연두 빛으로 싹이 올라오는 잎사귀들을 보노라면 봄의 목(木)기운의 생(生)하는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수많은 꽃과 풀들이 저마다의 색(色)을 마음껏 펼쳐내며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노랑, 빨강, 분홍, 연두, 자주, 흰색 등등 오색(五色)이 충만하게 펼쳐지고 그 색을 감상하면서 나도 모르는 동안 색채치료를 받아 누리게 됩니다. 오장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은 각각 청적황백흑(靑赤黃白黑)으로 생리 병리 상 색을 드러내곤 합니다. 어떤 음식이 필요할 때 입에서 당기듯이, 어떤 질병이 있을 때 특정 색상이 더 당기게 됩니다. 음악치료가 있듯이 미술치료 색채치료 역시 색의 기운을 통해 우리 몸과 마음을 치료하게 됩니다. 산책길의 다양한 색깔들은 보너스처럼 주어지는 치료제요 색채 명상인 셈입니다.

건강을 위해 TV나 각종 매체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홍수 같은 정보들이 쏟아집니다. 건강한 삶은 비법이나 묘약이나 비싼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과 공기처럼 흔한 것이 사실 가장 귀하고 값진 것처럼, 운동화만 신고 나서면 되는 산책 같은 일상의 꾸준함이 건강을 지켜내는 가장 좋은 길이 아닐까요?

최원집
건강넷·한의사·구심한의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