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하나 더 올린다

[박미숙의 그림책으로 본 세상]

2021-04-15     박미숙 책과도서관 대표 / 책놀이터 작은도서관 관장
노을 작은도서관
박미숙 책과도서관 대표

[고양신문] 아흔여덟 개.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아흔여덟 개 작은도서관이 함께 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함께하기 위한 ‘#작은도서관 #416 #기억 프로젝트’로 모인 아흔여덟 개 작은도서관들은 개별 도서관에 ‘기억의 자리’를 만들고 각자 하고 있는 활동을 사진으로 찍어 오픈 채팅방에 공유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알림 소리. 고사리 손으로 접은 노란 나비들이 날아가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노란 배를 접어 천장에 매달기도 한다. 노란 풍선을 불기도 하고, 솜씨 좋은 분들이 바느질로 만든 작품이 전시되기도 한다. ‘저 나비는 어떻게 접는 거예요?’, ‘이런 활동 우리도 해야겠어요!’ 서로 댓글이 이어진다. 그리고 말한다. ‘함께 기억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가토 구니오 그림, 히라타 겐야 글, 김인호 옮김, 바다어린이)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바다 위에 쌓아 올린 낡은 집에서 혼자 산다. 할아버지는 살던 집이 물속에 잠겨버리면 잠긴 집 위에 새로 집을 짓고, 그 집이 잠기면 그 위에 또 새 집을 짓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집을 짓던 할아버지는 실수로 연장을 바닷속에 빠뜨린다. 잠수복을 입고 연장을 찾으러 가는 할아버지. 연장들은 삼 층이나 아래에 있는 집에 떨어져 있다. 이 집은 할머니와 함께 살던 마지막 집이다.

할아버지는 조금 더 아래로 헤엄쳐 들어간다. 그리고 기억해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마을 축제가 있던 날, 딸이 시집가던 날, 키우던 새끼 고양이를 기억하고, 처녀였던 할머니를 기억하고, 아직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를 기억한다. 그렇게 다 기억한 할아버지는 다시 올라와 마저 집을 짓는다. 그렇게 또 그 집에 산다.

기억이라는 건 이런 거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탱하고 있는 바닷속에 잠긴 집들처럼 나를 버티게 하는 힘. 그것이 좋은 기억이건 아픈 기억이건 결국 내가 살아온 과정이니까. 가끔 조금 더 아래로 조금 더 깊숙이 기억해내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는 삶의 반복 덕분에 오늘 또 한 칸 집을 더 올릴 힘이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할아버지의 기억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과 후로 나뉘는데, 흥성거리던 마을이 바닷물에 잠긴 뒤에도 할아버지가 계속 집을 올리며 이곳에 머무는 건 어쩌면 이제는 그 기억을 지켜내는 것이 할아버지의 삶이 된 건 아닌가 싶다.

삶을 나누는 공간 더불어숲 작은도서관

우리도 그렇다. 누군가는 ‘아직도 세월호’냐고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 노란 개나리가 피고 분홍 벚꽃이 피어 흩날릴 쯤이면 할아버지 집 거실에 물이 스미듯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면 우리는 또 기억의 집을 하나 올린다. 그렇게 기억이 날 뿐이고, 기억할 뿐이다. 할아버지는 혼자지만, 우리는 함께라서 여럿이 집을 올린다. 조금씩 손을 보태 집이 완성되어 간다. 할아버지의 새 집에는 봄이 오자, 벽틈으로 민들레가 핀다. 할아버지는 그 민들레를 보며 빙긋이 웃는다.

아흔여덟 작은도서관들이 모인 오픈 채팅방에 또 알림이 울린다. 오늘은 캘리그래피 동아리가 ‘리멤버’라는 글귀를 넣어 쓴 작품으로 기억의 자리를 꾸민 작은도서관과 청소년 자원활동가 아이들이 꾸민 작은 자리도 눈에 들어온다. 제주에 있는 어느 작은도서관에서는 제주에 도착하지 못한 아이들을 종이로 오려 배에 태우고 항해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그 사진들 사이사이 댓글이 달린다. ‘함께 기억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나도 댓글을 단다. 빙긋이 웃는다.

아차산아래 작은도서관 놀자

 

고양 작은도서관
고양 작은도서관 캘리그래피 동아리 회원들의 작품
래미안금광작은도서관
엘크루생크림작은도서관
책마실 작은도서관
(사)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와 별책부록이 함께 마련한 ‘#작은도서관 #416 #기억 프로젝트’에 전국의 많은 작은도서관들이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