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 훈(訓) 이야기
-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고양신문] 나라에는 국훈(國訓)이 있고, 학교에는 교훈(校訓)이, 회사에는 사훈(社訓)이, 교실에는 급훈(級訓)이 있다. 그리고 집안에는 가훈(家訓)이 있다. 우리나라의 국훈을 말하라면 아마도 홍익인간(弘益人間) 쯤이 될 것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은 단군으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가장 유수한 국훈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의 교훈은 인의예지(仁義禮智)였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교훈이니 오래된 것이다. 나는 회사를 다닌 적이 없으니, 내가 만든 자유청소년도서관이 나의 회사다. 처음 자유청소년도서관이라 이름 지었을 때,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자유총연맹, 자유민주당 등 ‘자유’가 들어간 곳은 보수를 대변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리처드 로티의 “우리가 자유를 돌보면, 진리는 스스로를 돌볼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자유정신은 청소년도서관에 이어 작가 김한수가 운영하는 자유농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이다.
교실의 급훈 중에는 실소를 자아내는 것이 많았다. ‘사당오락(四當五落)’, 네 시간 자면 대학에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급훈은 그나마 귀여운 구석이 있다. 유사한 급훈으로는 ‘제 깨워라’, ‘네 성적에 잠이 오냐’가 있다. 공포 버전으로는 ‘잠은 죽어서 자라!’가 있다. 계급 적대적인(?) 급훈으로는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가 있다. 웃기자고 적은 것이겠지만 반노동자적 정서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낸 급훈도 있었다. 내가 아는 급훈 중에서 가장 멋진 것은 1995년에 상영된 드라마 <옥이 이모>에 나오는 급훈이다. 오래 전 본 것이지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꽃들아 네 맘대로 펴라’ 급훈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우리 집 가훈은 원래 ‘아님 말고’였다. ‘하면 된다’의 반발로 지어진 이 가훈은 진취적인 기상은 없으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낙천성이 있다. 유신시대에 성장했던 어린이가 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변신한 역사성도 담겨있다. 목표지향적이지는 않지만 생활상에 여유로움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집 아이들도 모두 이 정신으로 성장하면서 삶의 노선을 수시로 바꿨지만 후회는 없다. 우리는 억지로 뭔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쓸데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삶을 낭비하는 대신 즐겁게 살아가려고 했다. 포기의 힘! 맹자는 자포자기하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맹자보다는 한참 선배인 공자의 노선을 따른다. 공자는 네 가지가 없었다. 억지가 없었고, 절대가 없었으며, 완고함이 없었고, 사사로움이 없었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공자는 포기할 때 포기할 줄 아는 성인이었다.
막내가 성장하여 대학에 들어갔을 때 우리집 가훈이 바뀌었다. ‘아님 말고’에서 ‘그럴 수 있어’로. 아이들의 권유로 바꾼 것인데, 제법 근사하다. 우선 부정 정신에서 긍정 정신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관용의 정신까지 담고 있다. 아버지, 이번에 시험을 망쳤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버지, 다니던 직장을 때려쳤습니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아들아, 이제는 아빠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그래요, 그럴 수 있지요. 여보, 기독교 그만하고 불교 공부를 해보려구요. 그래요? 그럴 수 있지요. ‘그럴 수 있어’ 정신은 일종의 만능키와 같아서, 집안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태를 여유롭게 볼 수 있으며,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접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포기의 힘이 아니라 관용의 힘이다. 나는 우리집 가훈이 썩 마음에 든다.
고양시에도 시훈(市訓)이 있을까? 이번 참에 시훈창작대회라도 열어보면 어떨까? 너무 딱딱하고 올드한 것 말고, 유쾌, 상쾌, 발랄한 것으로.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씩 웃어본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