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80대 신중년, 복지수혜자 아닌 당당한 소비자

건강넷·고양신문 공동진행 건강도시 심층기획➓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2021-05-09     고양신문

70대 80대 신중년, 복지수혜자 아닌 당당한 소비자
정신적 건강, 자존감 높이는 프로그램 필요


전문가 인터뷰 
정무성 전 숭실사이버대 총장 

100세 시대의 새 패러다임 필요
노인과 복지, 지역사회를 연결
품위 있는 신중년 보낼 수 있는
도시 비전과 프로그램 필요하다
좋은 일 함께하는 커뮤니티 중요 

[고양신문] ‘노인’을 규정하는 기준 나이는 만 65세이다. 1956년 국제연합(UN)의 기준에 따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설계한 1964년부터 현재까지 노인, 노인복지, 노인 정책 등에 중요한 기준점은 나이였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고령 인구 비중이 14% 이상인 고령사회이며, 2026년이면 초고령화 사회(20%)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쏟아지고 개인들은 연금과 보험 같은 노후준비를, 정부는 사회복지서비스 및 지원을 위한 통합적인 정책 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무성 교수(전 숭실사이버대 총장,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번째 단계는 노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65세 이상은 노인이 아니에요. 55세까지는 청년, 70대 후반까지는 신중년, 90세 정도가 되어야 노인, 95세 이후는 장수 노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더불어 노인을 위한 복지는 단순히 자선적 혹은 시혜적인 서비스 제공이 아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민역량의 강화,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 폭넓은 사고와 활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노인과 복지서비스, 그리고 지역사회를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모형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두 번째 단계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인구 고령화에 대해 준비가 너무 안 되어있어요. 요즘 ‘커뮤니티 케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복지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르신들에게 무엇을 도와줄까? 하는…. 어르신들을 복지의 수혜자로 보고 있어요. 커뮤니티 케어의 핵심은 지역사회라는 공간의 개념도 있지만, 그 공간 속에서 ‘관계성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핵심이거든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관계를 잘 만들어 가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한마디로 관계거든요. 물론 기존 사람들과의 관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즐기는 동호회 같은 평범한 관계가 핵심이에요.”

정무성 교수는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일 외에 고양시 지역사회보장협의회 공동대표와 한국가치융합협회 회장 등의 직책을 맡아 활발한 사회적 활동하고 있다. 기업과 지역사회를 위한 정교수의 활동은 단순한 직함이 아닌 개인, 마을공동체, 시민사회 등 다양한 영역 간의 연대와 협업을 통해 지역의 변화를 이끌고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과 경제와 복지의 접점을 만들려는 맥락이 자리 잡고 있다. 

정무성 교수는 그동안 복지 수혜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노년층을 소비자로 세우면, 우선 노인세대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자체마다 너무 청년 정책에만 집중하는데, 신중년 정책을 잘 만들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자연스럽게 청년정책도 활성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100세 시대에는 신중년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고양시는 모든 면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초고령화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어르신들과 사회복지 대상자를 수혜자로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 대상자를 수혜자로 만들면 안 돼요. 소비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소비자는 권한이 있잖아요. 당당할 수 있어요. 수혜자는 무언가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 주눅이 들수밖에 없지요.

얼마 전만 하더라도 요양 시설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장판 밑을 들춰보면 만 원짜리가 쫙 깔려있었어요. 현금으로 모으거나 통장에 쌓아두려고만 했거든요. 받지 못할 때를 대비하는 거지요.

복지는 지급되면 바로 써야 해요. 경제와 선순환구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시니어 카페나 시니어 레스토랑에 어르신들의 건강에 좋은 음식을 두고, 쿠폰 들고 와서 당당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소비자가 되게끔 하는 거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의 경제가 살아나고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까지 우리나라 복지의 한계점 중 하나는 사람들을 자꾸 실내로 끌어들이는 거예요.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사람들이 야외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노인복지관 구내식당에서 한 가지 메뉴만 먹기보다는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에서 사 먹을 수 있도록 쿠폰을 드리면 되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사 먹고, 데이트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넓은 공간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운동도 하고 공연도 보고 연주도 하고. 지역에 그런 공간이 하나둘 생기면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돈도 드릴 수도 있어요.

 ▍고양시 지역사회보장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고양시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고양시는 대학이 없어서 젊은이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나 정책을 중심에 두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여요. 그보다는 ‘신중년이 즐겁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자’가 제 생각이에요. 저는 시니어라기보다는 신중년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70대 중반까지는 신중년이에요. 고양시 인구를 보면 50~60대가 가장 많아요. 주 소비층이 50대고 앞으로는 60대가 될 거예요. 60대 전후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우리 세대의 백마역은 추억의 장소예요. 이야기가 있는 곳이고요. 백마역부터 애니골까지 살려내야 해요. 고양시가 그것을 못 살리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이곳을 살리면 고양시가 확 뜰 수 있을텐데, 풍동을 아파트로만 만들어 버린 것이 무척 아쉬워요.

▍ 고양시가 신중년을 위한 도시로 적합할까요? 
고양시는 평지여서 환경이 천혜의 조건을 가진 도시라고 봐요. 제가 알기로는 일산신도시 초기 설계에는 노인을 위한 아파트나 공공주택들도 곳곳에 있었어요. 이미 고령화 사회를 거쳐 간 나라들의 경험을 볼 때 노인을 위한 주거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지하철역 주위는 보행이나 이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공공주택이 있어야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30~40대가 거주하는 것이 이상적인 아파트문화, 지역공동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토지가 공공재로서 개념이 없어지고 투기의 대상이 되면서 계획이 어긋났지요. 골동품이 아닌 이상 소비재 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야 하는데 재건축이 되면 오히려 뛰는 게 아파트값이잖아요. 먹거리로는 로컬푸드가 좋고 배다리 막걸리 같은 지역 술도 고급화해서 살리면 좋을 듯해요.

▍이미 만들어진 환경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요?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과 거리가 생기고 그곳에 문화프로그램이 있고 관리하는 공공기관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길을 따라 노인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생겨나기도 하겠죠. 또 어르신들은 문화의 소비자가 되기도 하지만 문화의 주체가 될 수도 있어요. 독일에 갔을 때예요. 길을 걷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튀어나와 퍼포먼스를 하는 거예요. 매우 신나고 재미있게 봤어요. 박수치는데, 가면을 벗는 사람들이 할머니들인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콜라텍 같은 실내 공간이 아닌 공개적인 곳에서 춤도 추고 공연도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죠. 

그리고 치매 노인이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조성된다면 치매 노인이 외부로 나온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잖아요. 우리 사회가 치매 어르신에 대해서도 아량을 가질 필요도 있고요. 저는 상징적으로 치매 노인들이 서빙하는 식당을 만들면 어떨까 해요. 외국에서는 그런 식당이 있어요. 메뉴는 단순해요. 위험하지 않은 요리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모든 음식값은 똑같아요. 내가 주문한 그것과 다른 것이 나와도 그냥 먹는 식당이에요. 치매 노인을 이해할 수 있는 식당인 거죠. 그곳에서 치매 노인들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요. 그러면서 치매 속도를 늦출 수 있어요. 그런 식당을 상징적으로 운영하면 관광상품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건강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신체적 건강 외에 필요한 것이 정신적 건강 혹은 영성이에요. 영성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자존감을 높이는 거지요. 영성은 지금까지 종교의 영역에서 해왔지만 요가, 독서, 공부 모임, 명상 같은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 같아요. 일본은 차를 마시는 다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지역사회에 대한 논의도 많이 해요. 미국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졌고요. 

미국에서 목격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대학교 앞 맥줏집인데 그곳에 무대가 있어요. 입장료가 2달러예요. 그 무대에는 예약만 하면 누구나 설 수 있어요. 아무거나 발표하는 거예요. 프로들이 하는 공연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나와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요. 어떤 사람은 자기 일기를 읽어요. 자기가 쓴 시.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도 하고요. 한 달 동안 스케줄이 나와요. 지역사회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로 승화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에게는 그런 공간들이 너무 없었어요.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한국 노인들의 자존감을 높이는데 윤여정 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요. 어르신들이 단순히 혜택만 받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역사를 세운 주인공이고 지금의 한국을 만든 세대로 인정해 주고 더불어 지역사회가 어르신들을 존중해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프로그램은 누구의 할머니, 누구의 할아버지가 아닌 ‘나’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도구 혹은 매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차예사 민간자격증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교육을 받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서 교육도 할 수 있고요. 차는 종합예술이거든요. 

▍은퇴 이후, 노년기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품위 있는 신중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세대는 압축 성장하는 과정에서 탈법도 있었고 남녀차별이나 외국인을 무시하는 등 인간존중에 관한 생각이 적었거든요. 그 관성을 그대로 가져가면 꼰대밖에 될 수 없고 우리의 노년이 추해진다고 생각해요. 경제 수준이 이 정도 수준이 되었으면 그 격에 맞는 생활을 하고 후세대에 본보기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품위 있는 신중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제일 먼저 직장에서 은퇴프로그램들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교육을 받고 은퇴하거든요. 은퇴해서 부부가 같이 음식하고 빨래하게 되면 얼마나 좋아요. 혼자서도 살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또 하나는 평생교육이 필요해요. 우리는 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 평생 쓰는데, 봉사활동을 하거나 제2, 제3의 직업을 갖기 위해서라도 배움이 필요해요. 평생프로그램이 지역사회에 많아야 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외국의 커뮤니티 컬리지 같은 지역에 기반한 대학이 없어요. 대학은 마치 젊은이들만 가는 곳으로 되어있어요. 앞으로 대학은 지역사회의 젊은이는 물론 일반인들이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 이런 곳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외국인들. 한국대학교육은 상품으로서 동남아국가에서 굉장히 좋습니다. 사이버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 동남아국가들을 많이 갔어요. 그곳 젊은이들은 한국이 교육 때문에 잘 살 수 있었다. 그것을 배우고 싶다는 거예요. 서구의 경험을 배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교육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교육 콘텐츠는 굉장히 좋습니다. 중장년층을 받아들이고 외국인들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대학이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관건이 될 거예요. 

▍ 교수님 개인적인 건강을 위해서 특별히 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약 먹지 말자’가 저의 주장이에요. 저는 감기 걸려도 약 안 먹고 음식으로 다스리려 합니다. 미국 유학 시절 첫 학기에 감기에 걸렸어요. 약 받으러 갔는데 약을 안 주는 거예요. 속으로 ‘아, 이 사람들이 인종 차별하나 보다’ 그랬어요. 그래서 ‘왜 약주냐’ 했더니 그 말을 처음 들은 거예요. ‘약을 먹으면 1주, 약 안 먹으면 7일’ 그때 우리나라가 얼마나 약을 많이 먹는지 알게 된 거예요. 저는 감기가 오면 차를 마시는 것으로 충분해요. 차는 비타민이거든요. 몽골이나 티베트는 차를 통해서 비타민을 보충하는 거든요. 그들에게 차는 기호품이 아닌 생존과 건강을 지켜주는 음식입니다.

정무성 교수는 은퇴가 기다려진다고 한다. 차와 술에 흠뻑 빠져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술은 잘못하지만, 술에 얽힌 역사, 주조과정, 향과 맛에 관심이 많아 문헌을 통해 오랜 시간 공부해 오셨다. 탁월한 미각을 소유하셨는지 술 감별의뢰도 많이 받으시는 듯하다. 은퇴 후, 사람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에서 차를 내어주며 차 이야기와 차를 담은 다기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다고 한다. 차와 술이 한자리에 놓일 수 있냐는 우문에 정교수는 ‘이태백의 술안주는 차’였다는 현답으로 마무리하셨다.
 
노미화 건강넷 심리상담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