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세대와의 공존…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로 가는 이정표
장항습지 람사르습지 등록의 의미와 과제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한 반가운 선물
108만 대도시 바로 곁의 ‘경이로운 생태계’
분단 철책이 개발 광풍 막고 ‘자연의 보고’ 보존
체계적인 정책·프로그램 지금부터 만들어야
[고양신문] 고양신문 창간 32주년을 앞두고 장항습지의 람사르습지 등록 소식이 들려왔다. 창간을 축하하는 깜짝 축전을 받아든 느낌이다. 1989년에 창간한 고양신문은 인구 20만의 고양군이 108만 거대도시로 성장한 32년의 숨가쁜 시간을 통과하며 몇 가지 기조를 견지해왔다. 그중 하나가 환경, 생태적 관점이었다. 도시가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변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문제점들을 짚어내고, 최소한의 생태적 자산들을 지켜내는 일이 지역신문의 소명 중 하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창간 기획기사를 통해 람사르습지 등재의 의의를 짚어보고, 다양한 목적으로 장항습지 모니터링을 펼치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이재준 시장과의 인터뷰는 장항습지와 관련한 향후 시정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힌트를 던져 줄 것이다.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의 생태칼럼도 본보 18면에 실렸다. 장항습지라는 이름을 직접 명명하고, 선버들과 말똥게가 공존하는 장항습지 갯물숲의 차별화된 가치를 가장 먼저 조명해낸 장본인의 글에서 장항습지의 람사르습지 등록을 마중하는 특별한 기쁨이 묻어난다.
장항습지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는 다음 주에 소개할 예정이다.
개발 압력 막아내는 신호등
장항습지의 람사르습지 등록 의의는 단순히 고양시에 생태 명소 하나가 추가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108만 거대도시 고양시가 단지 성장만을 추구하는 도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공존을 꿈꾸는 ‘생태도시’를 지향한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존은 다양한 생물종과의 공존이기도 하고, 과거의 시간이 물려준 자연유산을 미래에게 전하겠다는 세대 간의 공존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바로 지금 시점에서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2021년 고양시는 일산테크노밸리, 고양방송영상밸리, CJ라이브시티, 킨텍스 제3전시장 등 획기적인 개발사업들이 순차적으로 시작되며 일산신도시 개발 후 30년 만에 가장 역동적인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항습지의 바로 코앞에서 상전벽해의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머잖아 개발의 요구와 압력이 장항습지마저 위협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족한 도시의 자족기능을 증대하기 위해 효율적인 개발이 절실한 고양시지만, 동시에 지켜야 할 생태의 영역은 확실하게 지켜나가겠다는 고양시민들의 의지가 장항습지 람사르 등록으로 선명한 신호등처럼 불을 밝힌 것이다.
장항습지의 차별화된 가치
장항습지의 람사르습지 등록을 축하하는 가장 뜻깊은 방법은 장항습지의 가치를 우리가 먼저 소중히 인식하는 것이다.
장항습지는 몇 가지 면에서 여타의 습지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는다. 우선 크기가 고양시 전체 면적의 약 3%에 이를 정도로 넓다. 거대한 아파트촌으로 각인된 108만 대도시의 바로 옆에 이토록 방대한 자연의 영역이 건강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해외의 생태전문가들도 경탄을 보내곤 한다.
생태적으로 장항습지는 한민족의 젖줄인 한강이 긴 여정을 마치고 서해로 흘러들기에 앞서 고양 땅에 베푼 놀라운 선물이다. 강물이 싣고 온 풍요로운 성분들이 바닷물이 밀고 올라온 갯벌흙과 만나 퇴적되고, 그 위에 선버들과 갯버들이 뿌리를 내리고, 물골을 따라 다양한 생명들이 깃들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뒤섞이는 곳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기수역 생물들에게도, 먼 길을 오가는 철새들에게도 장항습지는 더없이 소중한 생존의 보금자리다. 람사르습지 등록에 수반되는 모든 논의는 바로 장항습지의 진짜 주인공, 재두루미와 저어새와 선버들과 말똥게와 버들장어의 입장에서 전개돼야 할 것이다.
고양시 더 많은 관리·권한 확보해야
많은 이들이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면 뭐가 달라지는지를 궁금해한다. 사실 당장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국제적인 규제가 새롭게 부가되는 것도 없고, 어디선가 관리 예산이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장항습지가 이미 2006년부터 적용받아 온 한강하구 습지보호구역으로서의 위상과 제한사항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그렇다면 람사르 등록을 특별히 반겨야 할 이유는 ‘출발점’을 확실히 마련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람사르’ 로고가 부여하는 자부심은 보다 풍요롭고 건강한 습지 생태계를 보전해 나가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들을 지금부터 제대로 만들어가자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살펴보면, 장항습지에는 풀어나가야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세부적이고 지속적인 생태모니터링, 생물다양성 증진 방안, 생태교란종 억제대책, 부유쓰레기 처리, 육화 방지와 물골 확장 등의 과제를 아우르는 보다 체계적인 관리 매뉴얼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 또한 정비된 관리 매뉴얼에 따라 그동안 활동가들의 자발적 참여로 어렵사리 유지돼 온 다양한 활동들을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영역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장항습지의 실질적 관리권한을 행사하는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고양시가 자율적 관리의 영역을 보다 폭넓게 확보해낼 필요가 있다. 사실 장항습지의 람사르 등록을 11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한 주체도, 람사르습지 등록을 가장 기쁘게 반기는 이들도 고양시와 고양시민이지만, 행정적으로 보면 장항습지에 관한 권한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한강유역환경청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환경부와 지자체는 생태보고의 현명한 보전과 활용을 위한 파트너이지 경쟁상대일 수 없다. 따라서 고양시가 마련해야 할 장항습지에 대한 계획은 환경부를 충분히 설득할 만큼 적극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