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습지 람사르습지 등록 “축하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21-06-02     유경종 기자

장항습지의 풍요로움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탠 이들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 등재 소식에 많은 이들이 서로서로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동시에 상대의 수고를 격려한 이유는 람사르등재가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로 이룬 결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주 (사)에코코리아 생태모니터링팀과 고양시자원봉사센터 환경정화활동을 소개한 데 이어, 장항습지를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수고한 이들을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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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해도 생태적으로 농사 지어야죠”
❚장항습지에서 벼농사 짓는 이병철·이찬씨 

장항습지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민 이병철씨. 

“장항습지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된 후 장항습지의 환경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항습지에서 25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병철씨는 신도시 개발 전 ‘주엽리’에 살았던 일산 토박이다. 또 다른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 이찬씨 역시 장항습지에서 매년 풍요로운 소출을 거두고 있는 농민이다.  

장항습지에는 5000평이 넘는 너른 논이 10여 개 있고, 6명의 농민들이 해마다 점용허가를 받아 벼농사를 이어오고 있다. 장항습지의 논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세심하게 관리되지 못하면 장항습지의 환경을 훼손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생태적 원칙들을 준수하며 농사를 지으면 생태계를 오히려 풍성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장항습지의 농민들은 시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환경농업을 시도하고 있다. 

장항습지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는 농민 이찬씨. 

환경농법이 유지되는 논은 수많은 생물들을 불러모으는 삶터가 된다. 각종 양서류와 수서곤충 등이 논에 기대어 번성하고 있고, 가을걷이를 하고 난 논은 새들의 먹이터와 쉼터가 된다. 

몇 해 전부터는 장항습지에서 수확한 곡식 일부를 고양시가 매입해 겨울철새들의 먹이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추수를 마친 논에 물을 채운 겨울무논을 조성해 재두루미를 비롯해 보다 많은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도록 했다.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는 람사르습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함께 느낀다는 이병철씨는 “이왕이면 장항습지에서 생산되는 쌀이 명품쌀이라는 명성을 얻으면 좋겠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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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습지, 가장 매력적인 생태수업 현장”
❚8년째 생태교육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식물연구회’ 

어느덧 올해로 8년차. 생태활동가들의 모임인 어린이식물연구회(대표 심은영)는 2014년부터 장항습지에서 생태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을 시작한 초기에는 생물종의 다양성에 집중해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이 바뀌며 단순한 생물 다양성을 넘어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교육의 주제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장항습지에서 생태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어린이식물연구회 회원들이 교육 준비를 위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심은영 대표는 장항습지야말로 기후변화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장소라고 말한다. 다양한 형태의 습지가 공존하는 까닭에 생물종이 풍부한 것은 말할 것 없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항습지만의 경관도 생태교육을 진행하기에 더없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습지에서만 설명이 가능한 생태적 주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드나무와 여러 벼과 식물들이 얼마나 많은 탄소 저장 능력이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관찰하며 설명할 수 있거든요.”

어린이식물연구회 활동가들은 고양시민들이 습지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가는 기회가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 바로 옆에 물골을 따라 물이 들고 나며,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멋진 습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기후변화를 막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작은 실천들도 자연스레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김미혜 활동가는 “우리는 생태계로부터 무한정의 서비스를 당연한 듯 받아왔다. 이제는 시민들의 노력을 되돌려줘야 할 때”라며 “장항습지 람사르 등재의 의미를 새기며 탄소중립 등을 포함하는, 보다 알찬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열심히 개발하고 진행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어린이식물연구회 회원들. (왼쪽부터) 김은주 회원, 심은영 대표, 문연희 회원, 김미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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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열망과 시의 의지가 환경부를 움직였습니다” 
❚고양시 환경정책과 장항습지팀 

환경정책과를 찾은 기자에게 주정우 장항습지팀장은 커다란 패널을 한 장을 보여줬다. ‘평화의 공간, 인간과 습지의 조화’라는 타이틀을 내건 패널에는 장항습지의 현황과 풍요로운 생태계, 주변의 개발 압력, 물골복원과 무논조성, 생태탐방시설, 장항습지 보전·활동계획 등이 알차게 담겨 있었다. 

(왼쪽부터) 고양시 환경정책과 장항습지팀 김연희 부팀장, 박노선 환경정책과장, 주정우 장항습지팀장. 박노선 과장이 들고 있는 액자가 람사르습지 등록 인증서다.

환경정책과 장항습지팀은 ‘장항습지 람사르등재’를 공약으로 내 건 민선7기 시정의 출발과 함께 신설된 조직이다. 중책을 부여받은 주정우 팀장은 장항습지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람사르습지에 등록돼야 하는지를 설득하기 위한 자료를 꼼꼼히 준비했다. 

“우선 장항습지를 위협하는 주변의 개발 압력을 설명했습니다. 테크노밸리, 방송영상밸리, 관광벨트사업, 하천정비사업 등이 본격화되면서 장항습지의 원형 보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점을 짚은 것이지요. 다음으로 고양시 한강변을 지키던 군부대가 철수하며 철책이 일부 제거됐고, 고양시의 행정적 의지와 시민사회의 열망이 장항습지의 람사르습지 등록을 한마음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장항습지의 현황과 람사르습지 등록을 향한 계획들을 한 장에 담아낸 패널. 

환경부가 장항습지를 포함한 한강하구 전체의 람사르습지 등재 추진의사를 밝힌 것은 2010년. 하지만 한강하구 전체 등재는 주변 도시들의 이견에 가로막혔고, 고양 장항습지만의 단독등재는 타 지역 환경단체들이 반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양시는 2019년 고양도시포럼을 열어 장항습지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고, 환경부 관계자와의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장항습지 람사르 등재의 당위성을 설득해나갔다. 결국 환경부도 장항습지 단독으로 우선 등재하고, 고양시가 좋은 선례를 보여줘서 인접 도시로의 확대를 유도해 나가는 방안을 비로소 수용했다.

박노선 환경정책과장은 “11년 기다림의 시간 동안 시와 소통하며 장항습지 람사르 등재를 위해 함께 해 주신 시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람사르습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습지로 관리해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함께 힘을 보태주시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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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목소리 모았더니 힘이 실리더군요”
❚박평수 한강하구 장항습지보전협의회 대표 

한강하구 장항습지보전협의회 박평수 대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으로서 장항습지의 생태교란종과 부유쓰레기 제거작업에도 앞장서고 있는 장본인이다. 

고양시에는 다양한 환경·생태 관련 단체와 조직이 있다. 각각의 성격과 관심사에 따라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8개의 단체들이 장항습지 람사르습지 등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강하구 장항습지보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2019년 결성된 협의체의 중심에는 고양을 대표하는 환경운동가로 손꼽히는 박평수 대표가 있다. 

"협의체가 결성되기 전에는 한강유역환경청이나 고양시에 어떤 의견을 제시할 때 힘이 실리지 못했는데, 8개 단체의 목소리를 일원화하니까 확실히 귀를 기울여주더군요. 소통의 통로를 만들고, 시민단체의 존재감을 확보했다는 면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보이지 않는 단체 이기주의를 딛고 다양한 환경단체의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장항습지의 가치를 좀 더 효과적으로 보전하고, 보다 현명하게 활용하자는 대의에 모두가 동의할 수 있었기에 협의체 결성이 가능했다. 

시민단체도 시민단체지만, 한강유역환경청이나 고양시의 입장에서도 협의체의 원활한 결집은 반가운 일이었다. 소통의 창구가 일원화되며 효율적인 공조가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타협을 모르는 강성 환경운동가 역할을 자처했던 박 대표지만, 장항습지 람사르등재에 관해서만은 고양시의 일관된 기조에 후한 점수를 줬다. 고양시 행정부에서 과감한 행정적 의지를 가지고 등재를 추진한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항습지 보전을 위한 관리 시스템이나 예산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중장기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고양시도 보다 적극적이고 세부적인 매뉴얼을 만들도록 고양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강유역환경청이 장항습지의 관리권한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촘촘히 관리할 역량이 부족합니다. 고양시에 예산과 함께 관리권의 많은 부분을 위임했으면 합니다. 고양시 역시 경험과 역량이 축적된 시민활동가들이 참여하는, 보다 진보적인 방식의 관리 구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를 이끌며 장항습지의 생태교란종과 부유쓰레기를 제거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는 박평수 대표. 장항습지 람사르습지 등재로 인해 그의 시간표가 좀 더 바빠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