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건강을 위한 책읽기 -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
내 몸에 대한 새로운 시선, 일상과 삶을 바꾸다
[고양신문] 초록이 무르익은 나뭇잎, 바닥에 깔아놓은 넓은 돌 사이로 유연하게 빠져나온 풀들, 나무벤치에서 벗어진 칠, 심지어 고딕양식의 본당을 지탱하는 검붉은 벽돌 부스러기까지 모든 게 햇살에 바스라질 것 같은 날,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저는 ‘성당 다니는 여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 중계에 빠져 햇빛도 잘 들지 않는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보내는 주말에 염증을 느껴 선택한 것이었으니 오래 갈 운명은 아니었습니다.
여대생이 되면서 보잘 것 없는 신앙심은 더욱 쪼그라들었고 세례를 받던 날의 눈부신 햇살은 캠퍼스에서 빛나는 햇빛에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여학생이라는 타이틀 역시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에서 귀동냥한 지식만으로도 여학생이 아니라 학생으로, 여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스스로 타이들을 바꾸어 나갔거든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제가 선택하지 않은 타이틀이 하나씩 늘어갔습니다. 아내, 엄마, 옆집 이모 같은 것들이 말이죠. 그리고 오랫동안 새로운 타이틀을 얻지도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그런 걸까요? 제가 얻거나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것이 더 이상 없는 것, 이미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정말 그럴까요? 그럴 리가 없다고, 삶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 말고는 변화가 없던 때에 묵은 철학책을 펼쳐들고 다시 배움을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름만 희미하게 남아 있던 철학자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죠.
뜻밖에도 제게 새로운 타이틀을 준 책은 철학책이 아니었습니다. 과학기술통신부에서 인증하는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된 과학책이었죠. 이 책은 제목에서 선언합니다.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김혜성, 파라사이언스)우리 몸에는 체세포보다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으니 당연히 그들과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인가 보다 짐작했습니다. 실제로 저자는 미생물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가 권하듯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을 만큼 육체와 정신이 온전하고 사회적 관계가 준비되어 있는 상태”, 다시 말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상세한 실천방법까지 제안합니다.
하지만 짐작과 추측만으로는 절반의 사실만을 알 뿐이었습니다. 이 책이 제게 남긴 것은 건강해지기 위해 알아야 하는 지식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설득해 “나는 통생명체다!”라는 선언을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제 일상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음식을 바꾸고, 운동을 하고, 쉽게 먹고 바르던 약을 멀리하게 말이죠. 아이를 품고 있던 열 달 동안 그랬던 것처럼, 제 몸속에 있는 작은 녀석들을 돌보기 시작한 거죠.
그럼 전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될까요? 그건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건강해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고질적인 변비에서 벗어났고 정기적으로 찾아오던 두통도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바지 사이즈를 줄였다는 거죠. ‘통생명체’로 살아간다는 건 내 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고 ‘삶’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그렇듯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전지영 건강넷/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