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10년, 덕양중학교 마을과 손잡다
경기도교육청 공모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사업 시작
올봄, 화전 골목마다 덕양중학교 학생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경기도교육청이 공모한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사업의 시작이었다. 처음 골목을 돌아다닐 때 아이들은 좁은 동네 골목길을 걷는 이유를 몰랐고, 그냥 귀찮았고, 볼 것도 없었고, 더웠다. 사회시간, 체육시간, 과학시간에 때마다 학교 선생님, 교장 선생님 그리고 화전마을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돌았다. 돌면서 아이들은 학교가 있는 화전이라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낡고 추레한 모습 너머에 화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혁신학교 10년차인 화전동 덕양중학교(교장 이규철)와 인근에 위치한 서정초등학교(교장 구경순)가 올해부터 5년간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사업을 시작했다. 혁신학교 실천 경험과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도전을 희망하는 학교가 제안하는 과감한 교육과정을 교육청이 받아 들여 2021년부터 5년 동안 교육과정 편성・운영, 예산, 연구・행정 인력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4년 이상 혁신학교를 운영한 학교가 단독으로 제안하거나, 혁신학교 경력이 다른 여러 학교 혹은 학교와 마을 단위로 제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덕양중학교와 서정초등학교가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다.
서정초등학교는 마을 안전지도 만들기, 제로 웨이스트(비닐사용 줄이기), 성사천을 이용해 하루 60분 운동하기 프로젝트(릴레이 첼린지, 마일리지 클럽), 마을텃밭 가꾸기(마을 유휴지 가꾸기, 로컬푸드 교육, 도토리 잔치), 코로나 상황 대비 원격으로 진로교육 컨텐츠 함께 준비하기 등을 계획했다.
덕양중학교 이규철 교장은 “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삶과 연계된 교육과정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마을교육과정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교사가 교육과정에 집중하게 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며 선생님들과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TF팀을 구성하고 지속적인 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 공동체를 통한 만남’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고, 각 교과과정에서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2021년 덕양중학교 1학기 교과에는 평화봉사기행, 지도만들기, 두부만들기, 마을에 의자만들어 드리기, 게시판 만들기, 틈새꽃밭만들기 등의 활동이 시작됐다. 이 모든 과정은 선생님들과 아이들과 화전마을공동체가 삼위일체가 되어 이뤄낸 성과였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평화봉사기행 실시
일단 마을을 알아야 했다. 학교 특성상 약 2/3의 학생들이 외지에서 와서 그런지 마을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회시간, 체육시간, 과학시간 등을 이용해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왜 더운 날씨에 지저분하고 좁고 볼 것 없는 골목을 돌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20여 명의 혈기왕성한 학생들을 데리고 동네골목을 도는 일은 교과 선생님 한 분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화전주민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했다.
체육교과에서는 걷기프로그램과 연계해서 학교 주변 마을을 걸었다. 어느 벽화 앞에서 단체로 점핑하는 사진 찍어 올리기 등의 미션을 주었다. 사회시간에는 이 지역의 지도를 펼쳐놓고 아이들에게 구역을 정해주고 그 구역에 랜드마크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찾게 했다. 화전에 유일한 병원, 화전역, 성당 등을 찾아서 왜 이것이 지도에 들어가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게 했다.
과학시간에는 이 지역의 생태환경이 어떤지, 어떤 풀과 꽃이 자라고 있는 살피게 했고 주변에 틈새 땅이 어디에 있는지, 그 틈새에 어떤 꽃을 심으면 좋을지 고민하며 걷게 했다. 도덕시간에는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며 걷게 했다. 아이들 눈에 띤 것은 골목에 어르신들이 앉아 있는 평상, 의자가 무척 낡았다는 것과 쓰레기분리수거장의 문제점이었다. 아파트 지역과는 달리 관리가 안 되어 굉장히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그곳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고민했다.
그렇게 골목을 12회에 걸쳐 다니며 아이들은 마을에 노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뵙는 네 노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엉거주춤 쭈뼛거렸다. 그러다가 골목 갈 때마다 만나게 되니 지인이 되었다. 아이들은 선뜻 인사하고, 할머니들은 반가움에 아이스크림도 사주셨다. 이제 학생들과 마을주민들 간에 ‘관계’가 맺어졌다. 놀라운 변화였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의자, 평상 만들기
덕양중학교 학생들처럼 골목을 이 잡듯 돌아다니며 뭐가 필요한지 살폈다. 결론은 의자와 평상 그리고 마을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게시판 만들기였다.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도 파악했다.
이번에는 기술가정 선생님 차례다. 기술가정 선생님께서 의자와 평상과 게시판 설계를 했고 아이들과 함께 각 교과시간에 만들기 시작했다. 약 3주에 걸쳐 의자 12개, 평상 2개, 게시판3개를 만들어 지난 6월 2일 평화봉사의 날에 마을 곳곳에 옮겨놓았다. 트럭을 동원한 화전마을주민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날 한편에서는 미리 다니면서 보았던 틈새 땅에 메리골드 등의 꽃들을 심어 화단도 만들었다. 한 반에서 2~3곳씩 만들었다.
학생들이 만든 의자가 어찌나 좋아보였는지 분실했다가 찾기도 했다. 게시판을 설치할 때는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구청직원인줄 알고 민원을 넣기도 했다. 아이들은 지나다니며 게시판을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2학년들은 기술가정 선생님과 과학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두부를 만들었다. 이 시간에 덕양중학교 학생들은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았다. 두부만들기 수업을 위해 미리 콩을 불렸고 선생님들 각 가정에 있는 믹서기가 호출되었다. 믹서기에 간 콩물을 끓이며 간수를 넣고 응고시키면 두부가 되는 건 당연한 이론이다.
하지만 두부만들기의 ‘행간’을 알아야 한다. 끓는 두부물에 간수를 넣고 한 쪽 방향으로 천천히, 천천히 저어주어야 두부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런 삶의 지혜를 알려주시는 게 너무나 좋았다”며 “할머니들이 두부 만드는 걸 알려주시니 너무 감사했다. 할머니들이 전문가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들은 이 과정에서 한 명도 소외되는 일 없이 누구라도 어떤 역할이라도 할 수 있도록 역할분배 해주었고, 학생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다. 두부 만들기를 하며 동네 할머니들의 도움, 친구들과 협력했던 일이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덕양판 대동여지도 만들기
아이들은 마을을 다니면서 우리 마을은 이렇게 생겼구나, 이런 모습이구나, 이 곳이 랜드마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6월초부터 마을지도를 만들기 시작해서 7월초에 완성했다. 3개 반에 전지 6장씩을 나눠주고 한 장당 3~4명의 아이들이 맡아 그렸다. 아이들은 조별로 전지에 화전의 랜드마크, 생태환경, 살고 사람들을 그린 후 천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
환경을 생각해서 화학섬유가 아닌 광목천에 그리기로 하고, 화전마을학교 선생님들을 비롯해 마을주민들과 함께 바느질해서 가로 5.4미터 세로3.6미터의 커다란 천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 넓은 광목천안에 들어가 자기가 맡은 구역을 옮겨 그렸다. 마을이 잘 표현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했고 아이들 눈에 비친 마을의 모습을 그리도록 했다.
그리고 그 지도에 자신들의 케릭터를 그려 넣었다. 송훈섭 사회선생님은 “잘 그리는 아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 자신의 캐릭터를 그려 넣게 했더니 지도에 대한 애착이 더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4주 동안 밑그림을 그리고 밑그림을 헝겊지도에 옮기는 과정에서 화전마을학교 선생님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넓은 천에 지도를 그리는 일은 솔직히 막막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화전마을학교 그림 전문가가 계셔서 큰 도움을 주었다. 테이핑작업으로 큰도로와 소도로를 표시하고 색칠한 후에 그 외 공간에 아이들은 자신들이 맡은 부분의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아이들이 발로 뛰어서 만든 ‘덕양판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졌다. 아이들 가슴에 평생 남을 놀랍고 멋진 작품이었다.
이규철 교장은 “오랜 시간 하다보니 아이들이 힘들었고, 아이들 중에는 교과진도를 많이 못나간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마을주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했다”며 “각 교과 선생님들이 30회 이상 모여 회의하시며 협력하셨고 화전마을학교, 에코밴드, 리피스평화교육연구소, 시드스쿨 등 마을주민공동체가 덕양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해주셔서 이뤄낸 성과”라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또한 이규철 교장은 “덕양중학교가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사업을 통해 진정 원하는 것은 ‘삶과의 연결’”이라고 말한다. 배움이 교과서를 넘어서 일상의 삶과 연결되고, 그 현장이 나의 마을이었으면 좋겠고, 그럼으로써 자기다움과 자기 색을 찾는 성장을 이루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회복하며 아이들의 자존감이 향상되고 마을과 함께 소통하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궁극적 목적인 것이다.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덕양중학교가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사업을 통해 어떤 놀라운 활동을 할지, 어떤 경이로운 변화를 얻어낼지 몹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