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 서로 도우십시오

-양성희의 마음이야기-

2021-10-15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서로 도우십시오. 부디 다른 사람들을 도우십시오. … 우리는 인간입니다. 최선을 다해 서로 구해야 합니다.”

낯설었다. 어색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이 말은 생경한 감동을 주었다. 러시아에서 만든 SF재난영화 <인베이전 2020>에 나온 대사이다. 주인공인 러시아 장군이 최후에 국민들에게 외친 말이다. 외계인의 침공에 물난리가 난 지구에서 살아남으려고 건물의 윗층으로 도망치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도 재난상황인데 도우라는 말은 도통 듣기 힘들다. 러시아만의 군인 문화가 만들어낸 대사일까? 하지만 ‘도우라’는 말은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언어이다. 지금의 재난 상황에서 우리는 막아내는 방(防)이라는 방법과 항(抗)이라는 저항의 방법, 살(殺)이라는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접촉하면 걸리니까 말이다. 악수도 하지 말고 포옹은 더욱 위험하며 같이 밥을 먹는 것은 각오부터 해야 가능한 시대이다. 사람도 간헐적으로 만나고 웬만하면 집에만 머무르고 가족끼리도 거리두기하는 게 좋다는 시대이다. 바이러스 옮으면 어떻게 해!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세상에서는 공포심이 오히려 힘을 얻게 해주고, 의심과 강박증이 생존에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상담사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말해 정신질환의 요인이 될 만한 부분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박적인 성향의 국민임에도 방역수칙을 어기는 이는 있기 마련이다. 정부의 통제가 시작된다. 금기를 위반한 일부의 국민에 대해 망신을 주며 경각심을 각인시킨다. 심지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수칙을 어긴 사람을 정부에 신고하라고까지 한다. 서로를 감시하는 세상이 됐다. 무언가 비인간적인 정책이지만 일단 목숨은 지키고 봐야 하기에 개인의 정신건강 따위는 보듬어줄 겨를이 없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어려우니 한쪽은 포기한 셈이다. 1%가 안 되는 사망률을 기록하는 전염병에 우리는 인성을 버렸다.
 
근자에 안 본 이가 없을 정도로 인기인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적으로 억 단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극한으로 치달은 이기심과 아직 양심이 남아 있는 이타심의 인간 드라마였다. 돈 냄새가 사람 냄새를 삼켜버린 금융계 증권맨 218번과 늙은 어미에 빌붙어 사는 도박중독자 456번이 최후의 승패를 겨루었다.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 숫자였던 그들이 승패를 겨루는 모습은 자본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잔인함의 은유다.
 
사람 사는 세상은 ‘콩 한쪽도 나눠 먹고 서로 돕고 사는 거’라던 말은 박물관에 박제되었다. 그러고 보니 소싯적 사회 시간에 조선시대 미풍양속인 품앗이를 배울 때 들었던 말이다. 어차피 현대사회는 나 혼자 사는 세상이고 고독사도 점점 늘고 있다. 각자도생하는 시대라고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었다.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여대던 오징어 게임의 주최 측 직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정’을 외쳤다. 전세계가 불공정에 분노하는 때지만 뉴스에는 툭하면 고위관료의 특혜 의혹이 등장한다. 그에 따른 천문학적인 금전 이득은 국민들을 절망하게 만든다. 기득권은 장벽을 만들고 자격 같은 걸 두어서라도 제한선을 긋는다. 나누고 돕는 삶은 세금 낸 걸로 의무를 벗는 것인가.
 
상담 일선에서 만나는 사람의 심리 기저에는 의지와 의존이 있다. 남성도 여성이 필요하고 여성도 남성이 필요하다. 죽고 싶을 만큼 무기력했던 사람이 남을 도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다. 돕는 건 전우애를 가르치는 군대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피폐해진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회복력이다. 생기와 활력을 충전해주는 명약이 필요하다. 불안증을 없애줄 포근하고 따뜻한 약이 필요하다. 코로나 치료제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명품으로 등장했으나 우리를 진정으로 살리는 명약은 그 약이 아니다. 돈이 나에게 활기와 안식을 줄 거라는 신기루는 잠시라도 접어놓으라.
 
반려견을 보살피며 옥시토신이 나오는 경험을 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포옹하고 대화하고 돌봐준 그 행동이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게다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타심이 동물에게서 나올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바이러스를 주는 것도 타인이고 상처를 주는 것도 타인이지만 나를 회복시켜줄 영험한 약은 그 타인과 교류를 해야 나온다.

“이제 기쁨을 갖기 위해 열정을 갖기 위해 사람을 도우십시오. 낯선 이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