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집, 어떤 도시를 원하나요?
제1기 고양시민녹색건축교실 개강
고양지역건축사회 주최, 고양시·고양신문 후원
‘자연을 품은 집, 숲을 담은 도시’ 주제
김광현 서울대 명예교수 등 릴레이 강연
녹색공간 통한 사람과 지구의 회복 모색
[고양신문]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집과 도시를 함께 그려나가기 위한 ‘제1기 고양시민녹색건축교실’이 시작됐다. 고양지역건축사회(회장 김영수)가 주최하고 고양시와 고양신문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강좌는 ‘자연을 품은 집, 숲을 담은 도시’라는 주제로 원당농협 원당역지점 강의실에서 4주간 진행된다.
강좌를 주최한 고양지역건축사회는 135명의 전문 건축사들이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모임이다. 11일 열린 개강식에서 김영수 회장은 ”급격한 산업화와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주거 문화가 확산되며 건축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녹색건축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강좌를 연 취지를 밝혔다.
자리를 함께 한 이춘표 고양시 제2부시장은 “저탄소 녹색건축을 실현하는 것이 고양시의 미래를 위한 첫 번째 과제”라며 “고양시의 다양한 도시 문제를 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인사를 전했다.
개강식에 이어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가 ‘사람은 왜 집을 짓는가’라는 주제로 첫 강의를 진행했다. 건축분야 명저로 평가받는 『건축강의』,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의 저자이기도 한 김광현 교수는 강의를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선과 철학을 펼쳤다. 1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방대한 분량의 사진과 텍스트 자료와 함께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김 교수의 열강을 뜨거운 관심을 갖고 경청했다.
이어지는 강의는 ▲김태만 해안종합건축 대표 ‘자연이 성장하는 도시-생태도시 구상’(11월 18일) ▲박은영 중부대 환경조경과 교수 ‘정원의 기술-집안의 정원부터 마을정원까지’(11월 25일)가 예정돼 있고, 다음달 4일에는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고양시 덕양구 풍동 소재)을 방문해 녹색건축 현장탐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강의 기간 동안 고양지역건축사회를 통해 집과 정원에 대한 개별 상담을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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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공동언어다"
고양시민녹색건축교실 (1강) 사람은 왜 집을 짓는가
-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강연 주요 내용 요약]
요즘 건축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 특히 TV나 유튜브 등을 보면 건축을 주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출연자들이 인기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건축이 인문학적 대화의 소재로만 다뤄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건축에는 고유의 진정성이 있다. 건축을 단지 내 집의 개념으로만 접근하면 곤란하다. 집은 내 몸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물리적 존재다. 우리의 삶은 집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건축을 배우는 것은 사는 바를 배우는 것과 같다.
나는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에서 “건축은 우리의 마지막 공동언어”라고 정의했다. 회화, 조각, 음악 등의 예술장르가 모두 작가 개인의 언어로 바뀌었지만, 건축은 여전히 공동의 언어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막연히 건축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오히려 건축이 가져오는 공공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로 관점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건축가로 태어난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면서 왜 거대한 건축물을 함께 만들었을까. 아이들은 왜 집모양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까.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집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은 건축가다.
미술사의 가장 첫 장에 등장하는 라스코 동굴 벽화도 건축적 측면에서 보면 전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지상으로 올라온 고대인의 거대 건축물인 스톤헨지 역시 공통 세계(커먼 월드)를 구축하려는 인간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어릴 적 불렀던 ‘부엉새’라는 동요를 보자. 춥고 어둡고 두려운 집 밖의 세계와 할머니와 군밤과 이야기가 있는 집 안의 세계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자로 집을 나타내는 글자는 우(宇)와 주(宙)가 있는데, 앞의 것이 공간적 집을 말한다면 뒤의 것은 시간적 의미를 포함하는 집이다. 시공간이 합쳐져 우주(宇宙)가 되는 것이다.
안전이 보장되는 ‘집’에서 바깥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은 ‘놀라움이라는 감각(Sense of wonder)’를 느끼게 된다.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 세상이 놀라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나 유치원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 건물이 아이들에게 ‘놀라움의 감각’을 깨워 주는가?
주택, 주거, 거주의 차이
집을 물리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물리적 구축물을 ‘주택’이라고 한다면, 공간에 시간이 더해진 개념은 ‘주거’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에 ‘살아가는 방식’을 더하면 ‘거주’가 된다. 집은 이 세 가지 의미를 모두 아우른다. 그러므로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지을 것인가’와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라는 두 가지 물음이 합쳐져야 한다. 그러므로 집은 건축가가 설계하지만, 살아가는 이가 완성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토레 드 다비드’라는 미완성 건물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고층빌딩을 짓는 도중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공사가 중단된 건물에 수백가구의 빈민들이 모여들어 살아가는 곳이다. 한마디로 주택은 없지만, 주거는 있는 공간인 것이다.
정체성과 연결되는 ‘나의 집’
나에게 깊은 영감을 준 건축가 중 한 명이 루이스 칸이다. 그가 지은 집들은 세상이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늘 새롭게 보여주며, 자연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그럴 때 비로소 집은 곧 나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것이다.
건축은 일상과 동떨어진 예술세계가 아니다. 식당은 단순히 ‘밥 먹는 곳’이 아니라 ‘맛있는 식사를 기다리는 곳’이 돼야 한다. 이처럼 건축은 끊임없이 그 안에 머무는 이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주거정책은 ‘주택매매정책’에 머물고 있다. 주거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는 게 아니라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 모두의 집을 꿈꾸며
건축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떠올리는 장면들이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 마히가 호프라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아이들이 물을 길어오는 노동 때문에 학교에 못 오곤 하는 마을이었다. 이곳에 국제 비영리기구에서 농구장에 지붕을 씌우는 '빗물커튼' 사업을 지원했더니,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농구코트가 마을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역할을 했고, 무엇보다도 지붕에서 모아진 빗물을 자외선 처리해서 저수조에 저장하자 아이들의 물 떠오는 노동이 줄어들었다. 비가 내리는 날 아이들이 환호하는 사진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좋은 건축이 한 공동체의 삶을 바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말리의 젠네 모스크다. 흙으로 지어진 이 모스크는 매년 진흙을 덧발라주며 보수를 해야 하는데, 인근 주민 수천명이 무려 4개월 전부터 이 작업을 준비하고, 한날 한시에 모두가 동참한다고 한다. 직접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건축물은 공동체 모두의 것이 된다. 젠네 모스크 보수작업에 참여하는 이들의 자부심 넘치는 모습을 보며 건축의 진실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