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뚝 떨어진 고양이
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지난 초여름, 농장의 야외테이블에서 여럿이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바투 다가와서 먹이를 달라고 야옹거리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까, 녀석은 일말의 경계심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다리에 몸을 비벼가며 밥 달라고 쉴 새 없이 야옹거렸다. 야생의 어린 고양이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것도 신기한 노릇이지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싶은 측은지심에 우리는 녀석에게 양껏 고기를 내어주었다.
그 다음날부터 녀석은 어딘가 숨어 있다가 사람만 나타나면 달려 나와서 꼬리로 사람의 다리를 휘감아가며 먹이를 달라고 야옹거렸다. 실컷 배를 불린 녀석은 사람들 곁에서 한껏 재롱을 부리기도 하고, 느긋하게 낮잠을 자기도 하다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면 한껏 주변을 경계하며 은밀한 곳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그런 일이 매일 반복되면서 농장 회원들은 내남없이 녀석의 간식을 챙겨오기 시작했고, 녀석은 저것이 개일까 고양이일까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가며 사람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어머나, 감탄을 연발했고 녀석은 어느새 자유농장의 마스코트로 자리를 잡았고 ‘자유’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동물 키우는 걸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 모든 과정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내 집에 찾아온 생명을 어쩌랴 하는 마음에 아침저녁으로 밥과 물을 챙겨주면서도 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쉴 새 없이 야옹거리는 녀석이 내게는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늦여름, 녀석은 덜컥 새끼를 뱄고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왔다. 농장 회원들은 그런 녀석을 더욱 살뜰히 챙겼고, 고양이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 나 역시도 에고, 저 어린 것이 새끼를 가지다니 하는 안쓰러운 마음에 먹는 걸 더 잘 챙기려고 내심 마음을 쓰긴 했다.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아는 이들은 녀석이 십일월 초쯤 새끼를 낳을 것 같다며 어미와 새끼고양이들의 겨우살이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나는 고심 끝에 녀석이 안전하게 새끼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집처럼 꾸민 하우스 안에 녀석의 집을 장만해주었고, 하우스 하단에는 고양이가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고양이전용 문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하필이면 내가 단풍구경을 하러 동해로 여행을 떠난 밤에 우리 농장과 이웃 농가 경계에 있는 으슥한 곳에 숨어서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날이 환히 밝은 다음 날 새끼 한 마리를 야외 테이블 밑에 물어다 놓고서 도와달라고 쉬지 않고 울어대었다.
내가 농장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는데 다행히 이웃 농가에서 새끼들을 거두어서 하우스 안에 장만해둔 고양이집에 넣어준 덕분에 새끼고양이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마리는 죽은 채로 발견되어서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두 달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젖을 땐 새끼들은 슝슝 날아다니고 몸피가 부쩍 커진 어미 고양이 자유는 새끼들 곁을 의젓하게 지키고 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이 더 맘껏 뛰놀 수 있게 창고 안을 정리해서 그곳에 새로 집을 만들어 이사를 시켰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녀석들을 챙기는 일이 조금은 성가시고 귀찮다. 하지만 그 일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가심 속에 조금씩 잔정이 쌓이고, 이렇게 쌓인 인연이 새로운 삶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리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