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거주춤한 자의 글쓰기

2021-12-24     김훈 소설가

<제10회 고양행주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소감>

[사진제공=고양행주문학상]

[고양신문] 나의 소설은 대체로 마무리가 선명하지 못하다. 이야기의 끝에 조일 힘이 빠져서 결말을 깔끔하게 매조지하지 못한다. 이쯤에서 그만 쓰자, 더 쓰면 더 망가진다, 수다 떨지 말고 주접 떨지 말자…… 연필을 던지자…… 하면서도 무언가 미진해서 몇 줄 더 쓰게 되는데 그래봐야 결말은 허당이다. 이른바 그 결말이라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돌려세우는 전환이나 넓은 시야를 여는 전망이나 아름다운 화합을 제시하지 못하고 나의 이야기는 늘 지리멸렬이다. 

끌어다 쓰던 단어들이 나의 고삐를 벗어나서 부리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생애를 통과해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 겉돌고 달아난다. 크고 웃자란 말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쭉정이로 시든다. 말들은 말을 듣지 않거나 말라서 바스라진다. 개념어에 해당하는 실체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통스러운 의문이 떠오른다.

나는 글과 삶 앞에서 늘 엉거주춤하고 있다. 가건물에 세 들어 있는 사람처럼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 못한다. 머뭇거리고 서성거리고 두리번거린다. 

나는 글을 퍽퍽 내지르거나 밀고 나가지 못하고, 힘쓰기를 저어한다. 

나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무수한 개별성과 구체성 앞에서 쩔쩔맨다. 그것들을 온전히 살려서 문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문장들을 벽돌처럼 쌓아서 이야기를 엮어내는 일은 바라보기에도 어마어마하다. 

저녁 7시 무렵에 일산 라페스타 거리 마을버스 정류장 앞 식당에서 하루의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3천 5백 원이나 4천 원짜리 밥을 먹고 있다. 날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혼자서 밥을 먹는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은 저마다의 생명으로 살아 있는 구체적 개인의 것이다. 그러니, 사람과 사물을 주어로 삼아서 한 줄의 서술문을 쓰는 일은 진땀난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계속 지우개로 뭉갠다. 이 엉거주춤은 졸렬한 것일 테지만, 나는 작지만 확실한 것들을 엮어서 날마다 조금씩 쓰려 한다. 

나는 25년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 아래 동네에서 살고 있다. 내 글의 거의 대부분은 여기서 살면서 썼다. 25년 전에 일산은 허허벌판이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 주택은 나의 집을 포함해서 2채뿐이었다. 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에서 나는 연을 날리며 놀았다. 25년 동안에 고양은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 호수공원의 나무들도 굵어져서 그늘을 드리운다. 나는 정발산과 호수공원에 의지해서 살았다. 

고양문인협회가 주는 상을 받게 되니까 일산에서 글쓰며 살던 날들이 반갑고도 쓰라리게 마음에 떠오른다. 호수공원의 나무가 자라듯이 날마다 조금씩 나갈 수밖에 없다. 

고양은 도시계획에 따라서 건설된 신도시이다.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짧은 기간 동안에 대도시를 이루었다. 고양은 6백 년이 넘은 동네지만 지금의 고양 사람들은 향토의식이 빈약하다. 내 본적지는 서울이지만 이번에 상을 받으면서 나는 고양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다. 그래서 고양은 고양 주민들의 고향이다. 나의 엉거주춤한 글쓰기는 타향 위에 고향을 세우려는 노력이다. 

상을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다. 날마다 조금씩 써서 보답하겠다.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는 김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