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언론이 만드는 집단 히스테리
[고양신문] 1894년 9월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 정보국은 독일대사관의 무관에게 보내는 한 장의 편지를 입수했다. 기밀문서에 해당하는 한 장의 명세서였다. 정보국은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지목했다. 유일한 증거인 명세서와 드레퓌스의 필적이 달랐으나 재판부는 그가 일부러 남의 필적으로 가장했다는 희한한 논리를 내세웠다. 드레퓌스는 반역죄로 무기 징역 선고와 함께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섬’으로 유배된다. 그는 알자스 태생의 유대인이었다.
2년 후 참모본부 정보국의 피카르 중령은 우연히 명세서의 필적이 에스테라지 소령의 필체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재심을 요구했다. 참모본부는 이를 거부하고 사건을 묻어버리려 했다. 피카르 중령은 좌천까지 당하면서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진짜 스파이 에스테라지는 체포되었다가 은밀히 영국으로 석방되었다.
군부와 가톨릭교회, 보수우익 언론과 정치인들이 일제히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면서 드레퓌스를 탈탈 털었다. 프랑스는 이들이 중심이 된 재심 반대파(드레퓌스 유죄파)와 양심적 지식인과 법률가들, 공화주의자와 일부 진보적 정치인들, 소수의 신문들이 중심이 된 재심 요구파(드레퓌스 무죄파)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1898년 1월 작가 에밀 졸라가 ‘로로르(L’Aurore, 여명)’라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논쟁에 불을 질렀다. 그는 아무런 근거 없이 드레퓌스를 유죄로 몰아가고 증거가 명확한 스파이 에스테라지를 무죄 석방한 군사법정을 고발하면서 드레퓌스에 대한 재심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사회는 완전히 둘로 나뉘고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유대인에 대한 테러와 약탈, 폭동까지 일어났다. 보수우익 언론은 미친 듯이 반드레퓌스 기사를 쏟아냈고 프랑스 사회는 집단히스테리 상태에 빠졌다. 짧은 지면 탓에 이후의 과정은 생략한다.
120여 년 전의 드레퓌스 사건과 반유대주의 선동에 앞장섰던 당시 언론의 행태, 온 나라가 둘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던 프랑스 사회는 2년 전 한국 사회를 두 동강이 냈던 조국 사태를 연상케 한다. 진짜 스파이가 누군지 알면서도 끝까지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몰았던 프랑스 군사법정과 2019년 8월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자 조국 장관 일가족과 동생, 어머니 등 온 가족을 전방위로 수사하면서 100회에 이르는 압수수색을 자행했던 대한민국 검찰, 누가 더 악랄한가. 이에 더하여 검찰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쓰는 검찰발 기사들이 지면을 도배하면서 조국 일가에 대한 조리돌림과 인권침해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11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에서 딸의 중학교 일기장까지 압수하는 비상식적 수사, 폭주하는 검찰의 행태에 분노와 두려움을 느낀 시민들은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 백만 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지극히 편파적인 한국 언론의 행태는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 시민들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조국 관련 기사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2019년 8월부터 그해 연말까지 ‘조국 기사량’이 백만 건에 가까웠다는 증언은 한국 언론의 광기를 증명한다.
권력형 비리로 몰아갔던 검찰은 그들이 주장하던 사모펀드는 기소도 못했고, 겨우 고등학생의 표창장 위조라는 결과밖에 낳지 못했다. 아직도 진행중이니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검찰 권력을 총동원해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낸 결과치고는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지금 그때의 검찰총장 부인의 허위 경력이 문제되고 있다. 십수 년에 걸쳐 수십 가지 허위 경력으로 대학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주가조작 의혹, 장모의 부동산 특혜 및 사기 의혹, 가족과 측근의 비리를 감싸기 위한 본인의 여러 가지 불법 의혹 등 조국 가족의 표창장 문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중한 범죄 의혹이 있지만 언론보도는 이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적다. 한국 언론은 왜 이렇게 선택적으로 작용할까.
진짜 스파이가 누군지 알면서도 드레퓌스를 유죄로 몰아간 프랑스의 군사법정과 보수 언론들, 조국 가족의 온갖 혐의를 언론에 흘리고 이를 받아쓴 한국의 검찰과 언론, 드레퓌스는 유대인이고 조국 장관은 검찰개혁주의자라는 것이 그들의 원죄였다.
진실을 알리기보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