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생존’이 아닌 ‘경험’의 시대··· 삶의 질까지 높여주는 치료 필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암센터 공동 기획연재 암, 이겨낼 수 있다 ⑭ - 암평생건강클리닉
암 생존율 70% 이상인 시대
통증·생활습관 등 관리 중요
정서적 안정·일상복귀도 도와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 중요”
기획연재 순서
①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암센터 소개
② 유방암
③ 갑상선암
④ 폐암
⑤ 부인암
⑥ 대장암
⑦ 간암
⑧ 췌장암·담도암
⑨ 비뇨기암(전립선·방광·신장암)
⑩ 두경부암
⑪ 뇌종양
⑫ 위암
⑬ 혈액암
⑭ 암평생건강클리닉
※ 연재 순서와 내용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고양신문]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에 부는 달콤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2019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배우 김혜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수상소감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며 감동을 전했다. 예전엔 암으로 진단받으면 마치 예비 사망선고를 받듯 두려워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암 진단과 치료가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돼 매일 또 매 순간 ‘오늘을 살아’가며 ‘눈이 부시게’ 새로운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2019년 국가암등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은 70.7%다. 췌장암(13,9%)이나 담낭 및 기타 담도암(28.5%)처럼 여전히 30% 미만의 생존율을 보이는 암도 있지만, 갑상선(100%), 유방암(93.6%), 전립선암(94.4%)은 모두 90% 이상의 생존율을 나타내며 말 그대로 암이 ‘생존’이 아니라 ‘경험’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암 환자가 암 치료과정 중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도움을 제공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암평생건강클리닉의 박영민, 오시내 교수를 만나 암 ‘경험’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들었다.
암평생건강클리닉의 문을 열게 된 계기는.
박영민 최근 암 환자의 평균 생존율이 70%로 높아졌고, 2020년 기준 암으로 치료받는 중이거나 완치된 사람은 20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됐습니다. 많은 환자가 오랜 기간 암과 싸우며 살고 있죠. 주로 암의 1차 적인 치료 자체에만 집중했던 예전과 달리 암 치료과정 중 발생하는 증상과 동반질환들을 관리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일산병원도 지난해 7월 암평생건강클리닉의 문을 열게 됐습니다. 각 치료과 전문의들도 치료과정과 학회활동 등을 통해 이러한 클리닉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던 터였다고들 하더군요.
암평생건강클리닉의 역할과 구성은.
박영민 암 치료를 하는 각 해당 과와 유기적으로 협진하면서 암 치료 중 또는 치료를 마친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이나 만성질환을 함께 관리합니다. 이를 통해 좀 더 수월하게 암 치료를 유지하고, 암 치료 후에도 지속해서 건강관리를 돕는 것이 주된 역할이죠. 지금은 저를 비롯해 박성배·오시내 교수까지 가정의학과 전문의 세 명이 진료하고 있어요. 문을 연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일산병원 암센터 환자는 물론이고 다른 병원에서 검진 후 추적관리가 잘 안 됐던 환자까지 우리 클리닉을 찾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주위에 실제로 코로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도 있는데, 암 환자들은 합병증에 걸리기도 더 쉽고 우울증 등 심신의 후유증이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오시내 암 치료과정 중에는 실제로 코로나19와는 비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암을 치료하면서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과 같은 합병증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만성질환 관리가 중요합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암 자체나 암 치료과정 중 통증, 피로감, 갱년기 증상,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심리적 증상은 그 강도가 훨씬 크게 나타나죠. 또 지속해서 원발암 재발과 이차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생활습관에 대한 관리, 원발암 추적관찰 중 소홀하기 쉬운 이차 암에 대한 검진,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건강 문제 역시 너무나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동안은 약간 간과했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 이러한 부분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암 환자의 생존율도 높아지면서 대형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클리닉을 통해 암 진단 때부터 바로 환자와 가족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암평생건강클리닉의 치료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하면.
오시내 처음 방문하면 설문지를 작성한 후 기초상담을 진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병력, 가족력, 생활습관, 건강검진 내역, 불편한 증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건강 문제를 관리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치료 후유증으로 인한 피로, 통증 등 각종 증상에 대한 적절한 약물치료를 시행하고, 환자의 불안, 우울, 스트레스 정도를 가늠하는 검사를 통해 정신적인 문제를 찾아내 적절한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합니다. 필요한 경우 다른 과와 연계해 치료를 도와드립니다.
또 기존 암에 대한 재발 여부 외에 새로운 암이 발생하는지도 종합적으로 검사합니다. 기존에 건강검진을 받은 분들은 빠졌거나 추가해야 할 검사가 있는지 점검합니다. 환자의 치료 이력을 바탕으로 생길 수 있는 각종 합병증을 점검하고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발생하는지도 검사합니다. 암의 재발이나 이차 암 예방을 위해 금연, 영양 및 체중관리 등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심리적 안정까지 유지해 더욱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실제 사례를 들면 치료과정 이해가 훨씬 쉬울 듯한데.
박영민 대장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던 중 신경통증이 너무 심해 종양내과에서 의뢰한 분이 있었어요. 수술받고 항암치료도 하면서 다행히 암이 진행되지 않고 치료되고 있었지만, 치료과정에서 생긴 신경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크다고 호소했습니다. 암평생건강클리닉 진료 후 약물치료를 진행했고, 증상이 완화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편안함을 느끼며 치료도 잘 받고 있습니다. 암평생건강클리닉에서는 외래 진료와 달리 충분한 진료시간과 상담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심리적 만족도 역시 높아 점점 환자들이 늘어 나는 추세입니다.
오시내 유방암 치료환자는 재발을 줄이기 위해 보통 5년에서 10년 동안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환자가 오셨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사 몰래 항호르몬제 복용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적절한 약을 처방해서 복용했더니 그 갱년기 증상이 완화돼서 한결 편해졌고, 유방암 치료도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다며 고마워하셨습니다. 예전에는 환자와 의료진이 암 치료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이러한 증상을 간과했었는데, 이러한 사례를 보면 이제 환자들이 암 치료과정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질 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암 환자의 평생 건강을 돕는 조력자로서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조언한다면.
오시내 금연·금주하기, 주 3회 이상 하루 30분 땀날 정도로 운동하기,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고 균형 잡힌 식사하기, 자신의 체격에 맞는 건강 체중 유지하기, 암 조기 검진 지침에 따라 빠짐없이 검진받기 등 암 예방을 위한 수칙은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실상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의 건강과 삶을 위해 필요한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고, 늘 내 주위에 있어서 오히려 그 소중함을 덜 느끼게 되는 가족, 친구, 동료들과 평소에 의식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박영민 저는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잠시 문을 닫았지만, 그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의 마지막에 있는 암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암은 어떤 분에게는 완치라는 좋은 결과를 통해 인생의 큰 ‘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분에게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겪게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변함없는 사실은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평안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얼마나 많이 사랑했고, 또 누군가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존재였나 라고 느끼는 것임을 많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그 사람에게 지금 바로 또 늘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와도 후회 혹은 회한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